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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쫀쿠의 경제학

고진영 기자  2026-02-03 07:55:17
두쫀쿠는 왜 비쌀까. 재료 공급의 비탄력성 때문이다. 피스타치오는 묘목이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수년씩 시간이 걸린다. 풍작과 흉작이 들쑥날쑥 갈리는 변덕 심한 작물이다. 원래도 귀한 몸인데 두바이 디저트 붐까지 왔으니 수요 폭발을 생산이 따라잡지 못했다.

이 불일치를 해소할 유일한 변수가 가격이다. 1년 새 피스타치오값이 80% 넘게 뛰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쿠키 하나가 8000원씩 하는 현상은, 가게 주인의 폭리가 아니라 집 나간 균형을 찾는 시장의 신호란 이야기다.

반도체 초호황에도 비슷한 원리가 흐르고 있다. AI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급류가 메모리칩 부족에 부딪혀 더뎌졌다. 팔고 싶어도 못 파는 두쫀쿠처럼. 폭등 중인 반도체기업들의 가치는 기술 그 자체보다도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만들어 줄 공급능력에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수급이 과잉과 부족을 반복하는 싸이클산업이다. 그간 호황기엔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침체기는 감산으로 버텼다. 증설이 장기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후행적으로나마 투자를 조절해 나름의 효율성을 확보해왔다.

하지만 AI시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위상은 전통적 싸이클과 다른 궤적을 보이고 있다. 과거 메모리산업이 PC나 스마트폰 판매량에 흔들린 것과 달리 빅테크들이 사활을 건 AI 인프라 전쟁은 수요의 기반 자체를 강화시켰다.

반도체기업들의 재무전략도 근본부터 바뀌고 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만들어 재고를 최소화한다는 ‘Just-in-Time(적시 생산)’의 금과옥조는 옛말이다. 이제 ‘Just-in-Case(비축분 확보)’를 새 바이블 삼아야 한다. 효율적 공급망보다 끊기지 않는 공급망이 우선인 시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례없는 투자 경쟁에 나선 것도 그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 올해 SK하이닉스는 30조원대 중반까지 설비투자를 늘리고 삼성전자는 DS부문 설비투자를 작년(41조원)보다 확대한다. 미국 마이크론은 2000억달러(29조원)를 쏟아붓기로 했다. 생존을 건 수율과 생산능력 싸움이다.

유행은 언젠가 잦아든다. 피스타치오 출하가 원활해지면 가격은 내리고 줄 서기는 사라질 수 있다. AI 공급망의 체증 역시 결국은 해소될 테다. 하지만 재고가 그저 비용인 반면 결핍은 곧 경쟁 퇴출이다. 병목이 뚫렸을 때 공급밸브를 쥔 패자(霸者)가 되기 위해선, 뒷 일을 걱정해 몸 사릴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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