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희 회장 체제에 들어서면서 KB금융의 소비자보호 기조는 단순한 '민원 관리' 수준을 넘어 그룹 경영의 핵심 '어젠다'로 자리잡았다. 특히 2024~2025년은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와 금융권 내부통제 문제가 겹치면서 금융사들의 소비자보호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시기였다. 양 회장은 소비자보호 철학을 재정립하는 동시에 조직과 평가 체계, 상품 관리 프로세스 전반을 손질했다.
◇절차보다 '결과'…원칙 중심으로 전환 지난해 9월 KB금융은 소비자보호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영국 사례를 참고해 '소비자보호 가치체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근본적 변화를 고민해온 결과다. 기존의 규제 중심에서 벗어나 소비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제공하는 '원칙 중심' 체계로 전환한 것이 핵심이다.
특히 KB금융이 강조한 건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예방이다. 상품 판매 이후 민원이 발생하면 처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상품의 기획부터 판매, 사후관리까지 모든 과정에서 소비자보호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상품·서비스 관리 프로세스를 마련했다.
KB금융의 소비자보호 가치체계는 영국 금융감독청(FCA)의 '소비자 의무'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2023년부터 시행된 영국 FCA의 소비자 의무는 금융사의 소비자보호를 규제 중심 접근에서 실질적 보호로 전환한 우수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도입 이후 은행, 보험, 카드 등 업권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다수의 은행과 보험사가 상품 및 서비스의 취약점과 위험을 과거보다 잘 공개하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이밖에 KB금융은 계열사 실태평가 종합관리, 내부통제 현장점검 등 지주의 소비자보호 총괄기능을 강화하고, 소비자 중심의 성과평가지표(KPI)도 설계했다. CCO(최고소비자보호책임자)에게 소비자보호 핵심사항에 대한 배타적 합의권과 개선요구권을 부여하는 등 CCO의 권한도 대폭 강화했다.
이에 따라 CCO는 핵심 소비자보호 사안에 대해 영업 부서와 대등한 위치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필요할 경우 상품 설계·판매·사후관리 과정에 제동을 걸 권한 역시 갖게 됐다.
◇소비자보호 품질지수 도입…이사회 내 위원회도 속속 설치 KB금융은 최근 '소비자보호 품질지수(CPQI, Consumer Protection Quality Index)'도 새롭게 만들었다. 상품 판매 쏠림이나 민원 급증 등 이상징후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소비자보호 품질지수는 △상품 판매 전 △상품 판매 시 △상품 판매 후 △기타 관리지표로 구성됐다. 위험수준에 따라 정상(Green)-관찰(Yellow)-위험(Red) 3단계의 조기경보 시각화 체계를 통해 소비자보호를 위한 선제적인 대응 및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KB금융 계열사들은 이사회에 소비자보호위원회도 잇달아 설치하고 있다. 현재까지 KB국민은행과 KB라이프, KB국민카드 등이 설치를 마쳤다. 상반기 안에 정보보호 자율공시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2027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인 정보보호산업법 시행령 개정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정보보호 공시는 기업의 정보보호 투자, 인력, 인증 및 운영 현황 등을 외부에 공개하는 제도로, 현재 금융사는 의무 공시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KB금융은 이번 자율공시를 통해 그룹 차원의 정보보호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보보호를 기업 경영의 핵심 요소로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같은 맥락에서 KB금융은 지난해 연말 인사를 통해 지주 정보보호부를 기존 IT부문에서 준법감시인 산하로 이동시켰다. 소비자 정보보호를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 다루겠다는 의미다. 정보보호 조직 안에 사이버보안센터도 신설했다. 소비자가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한 금융서비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