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붐을 타고 반도체 시장이 역사적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반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업체들의 체감 온도는 엇갈리고 있다. HBM 투자가 확대되면서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고객사 투자 지연과 재고조정, 중국향 매출 둔화 등 복합적인 영향에 기업별로 극과 극의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더벨은 국내외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을 분석해 반도체 생태계의 현황과 미래를 점검해봤다.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나라다. 한국과 대만보다도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매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안정적인 거래 관리가 중요하지만 쉽지 않다.
국내 기업은 독자적인 기술력을 갖춘 곳이 많아 미중갈등이 양날의 검이다. 중국이 수입 규제와 함께 반도체 밸류체인의 내재화를 추진 중인 만큼 향후 매출 전망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부품이나 기술이 들어간 글로벌 반도체 소부장 기업에는 이미 제한을 두고 있어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글로벌 소부장 기업들의 가이던스와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중국 매출 노출도를 보면 중국발 변수에 따른 변화도 점쳐볼 수 있다. 중국 메모리 투자 수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 팹 지원 등 국내 기업들의 중국향 매출이 늘어난 만큼 수요와 규제 리스크를 함께 살펴볼 때다.
◇글로벌 장비사, 역대급 호황에도 중국 반영한 가이던스
글로벌 장비사들은 AI 투자 확대를 근거로 견조한 실적과 전망을 제시했다. 램리서치는 다음 분기 매출 증가를 예고했고 ASML은 2026년 연간 매출 전망을 상향했다.
램리서치는 6월 분기 매출 전망을 66억달러 안팎으로 높게 제시했다. 시장 컨센서스는 60억4000만달러로 예상치보다도 웃도는 숫자를 내놓은 셈이다. 전년 동기 매출 51억7000만달러와 비교하면 약 28% 증가한 수치다. 직전 분기 매출액인 58억4000만달러와 비교해도 약 13% 높다.
ASML은 2026년 연간 매출 전망을 360억~400억유로로 제시했다. 매출총이익률 전망이 51~53% 수준으로 높다. KLA와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도 선단공정과 메모리 투자 확대를 실적 증가 요인으로 설명했다.
출처=ASML 2026년 1분기 보고서
글로벌 소부장 기업들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으면서도 중국을 언급했다. 램리서치와 도쿄일렉트론,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의 매출액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30% 수준이다. 핵심적인 매출처인 만큼 수출 통제에 따른 매출 민감도도 높다.
ASML은 연간 가이던스에 수출통제 논의의 잠재적 결과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KLA와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도 중국 고객 대상 장비 판매와 고객 지원이 수출허가 여부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발 변수는 단기적인 매출 하락 수준이 아니라고 봤다. 투자 사이클이 달라지기 때문에 장비 출하와 매출 인식 지연, 장기적인 매출 하락과 포트폴리오 변화 등의 문제가 수반된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예가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는 4월26일 종료 분기 매출 79억1000만달러 중 중국 매출이 20억8700만달러로 27%를 차지했다고 공시했다. 회사는 같은 분기 중국 고객 선적 및 수출통제 준수 관련 BIS 조사 해결을 위해 2억5300만달러를 지급했다. 중국 매출이 크면 규제 비용이 실적에 직접 반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소부장기업도 중국 매출 기여도 높아
국내 장비사의 경우 중국 매출 기여도가 천차만별이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투자 확대 속에도 중국 비중이 유의미한 기업이 있는가하면 단기적이더라도 중국의 비중이 축소된 곳도 있었다.
원익IPS는 중국향 매출액이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1분기 반도체 매출 1459억원 가운데 중화권 고객사 매출이 약 15%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됐다. 약 219억원으로 전체 매출 1649억원의 13% 수준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합하면 28.2%를 차지한다. 중국 디램 업체향 장비가 국내 메모리 고객사와 함께 1분기 매출에 기여했다.
피에스케이는 중국향 매출이 시장 예상치를 웃돌며 수익성 개선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매출액이나 비중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노출 규모는 확인되지 않지만 증권가 전망보다 중국향 매출이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주성엔지니어링은 향후 수주 가능성이 거론된다. 중국 CXMT가 신규 팹(fab) 투자와 관련해 장비 발주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기존 거래 관계를 보유한 주성엔지니어링의 수주 가능성이 제시됐다.
출처=테스 2026년 1분기 보고서
반면 내수로도 충분한 실적을 올린 기업도 있다. 테스의 중국 매출은 42억8000만원으로 전체 매출의 4.4%에 그쳤다. 전년 동기 117억9000만원보다 63.7% 감소했다. 1분기 장비 수출은 없었고 중국 매출도 부품·서비스 등 기타 매출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론된다. 중국 로컬 고객의 설비투자 수혜보다는 기존 고객사 팹에 대한 사후지원 성격이 강했다. 다만 1분기 매출에 국한한 것이어서 연간 매출 내 비중은 달라질 수 있다.
◇규제 영향은 회사별 차등…매출 성격이 관건
매출 기여도와 함께 포트폴리오도 다른 만큼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도 일률적이지 않다. 중국 로컬 기업에 직접 납품 매출이 있는 기업과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등 국내 고객사의 중국 팹을 지원하는 기업은 각각 규제 민감도가 다르다. 장비 매출인지, 부품·서비스 실적인지에 따른다. 또 중국 로컬 고객향인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 법인 C/S인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국내 고객사의 중국 팹 지원이 주일 경우 영향이 제한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애프터서비스 수요가 반영된다. 이 경우 중국 매출이 있더라도 국내 고객사와 유관한 실적으로 구분지어야 한다.
반대로 피에스케이와 원익IPS처럼 직접적인 중국 고객사 또는 중국 디램 투자 기여가 확인되는 기업은 중국 수요 변화에 더 민감하다. 주성엔지니어링처럼 CXMT 투자와 연결되는 수주 기대가 있는 기업도 중국 설비투자 사이클을 봐야 한다. 중국향 매출이 늘어날수록 수요 회복의 수혜와 함께 수출 통제의 리스크도 커지는 셈이다.
국내 기업의 공급망을 점검할 때도 글로벌 기업들의 가이던스를 참고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장비에 미국산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포함되거나 최종 고객·최종 용도가 미국 규제 대상이면 허가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의 장비 국산화도 중장기 변수다. 단기적으로 중국 투자는 국내 소부장 기업에 수주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내 국산 장비 채택이 확대되면 한국·미국·일본 장비사의 점유율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단기 수요와 중장기 경쟁 리스크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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