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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때보다 더 쌓였지만…삼성전자 재고 71조의 '반전'

반년 새 19조 가까이 증가…DS 재공품·DX 원재료가 주도, 현금 회수 속도 관건

김지효 기자  2026-09-09 08:05:53
오늘은 반년 만에 재고가 19조원 가까이 늘어난 삼성전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올해 6월 말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71조4000억원입니다. 반도체 불황이 한창이던 2022~2023년에도 재고가 52조원 수준이었는데 이보다 훨씬 많이 쌓였습니다.

재고만 보면 당시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재고 증가의 성격은 2022년과 다릅니다. 당시에는 완제품과 메모리가 예상만큼 팔리지 않으면서 재고가 쌓였다면 지금은 반도체 가격이 오르고 AI 서버를 중심으로 고부가 메모리 수요도 강한 상황입니다.

재고 총액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제품이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이는 것과 생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재공품이나 원재료가 증가하는 것은 의미가 다릅니다. 삼성전자의 사업부별 재고를 보면 이런 차이가 보다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DS부문 늘어난 재고 80% 이상이 재공품

먼저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입니다. DS 재고는 올 상반기 9조원 넘게 늘었습니다. 이 가운데 7조6000억원이 재공품입니다. 전체 재고 증가액의 80% 이상이 아직 생산 공정에 들어가 있는 물량인 셈입니다.

반도체는 웨이퍼를 투입한 뒤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특히 HBM은 일반 D램보다 후공정도 복잡합니다. 생산량을 늘리면 완제품보다 재공품이 먼저 증가하게 됩니다.

최근 HBM과 D램 등 메모리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생산 확대에 따른 물량 증가가 DS 재공품에 상당 부분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거 불황기에 판매 부진으로 완제품과 메모리가 쌓였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다만 7조6000억원의 증가분을 모두 생산량 증가로 볼 수는 없습니다. 재고의 장부가액에는 생산량뿐 아니라 제조원가 변화도 함께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특별성과급도 재공품 원가에 반영

여기서 삼성전자의 급여비를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급여비는 25조5000억원입니다. 전년 동기보다 약 17조원 늘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DS부문에 지급할 특별경영성과급과 관련해 약 17조6000억원의 충당금이 반영된 영향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재고를 얘기하다 갑자기 성과급이 등장하는 이유는 회계 처리에 있습니다. 제품과 재공품의 제조원가에는 재료비뿐 아니라 노무비도 포함됩니다. 생산에 투입된 인건비 가운데 아직 판매되지 않은 제품에 해당하는 부분은 비용으로 바로 처리되지 않고 재고자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즉 성과급이라는 인건비 일부도 제조원가를 거쳐 재공품 원가에 녹아든 셈입니다.

이번 DS 재공품 증가에는 HBM과 D램 생산 확대에 따른 물량 효과와 특별성과급을 비롯한 제조원가 상승에 따른 단가 효과가 동시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고가 늘어난 만큼 실제 반도체 물량 자체가 증가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DX부문, 메모리 가격 상승도 재고에 영향

스마트폰과 TV, 가전을 담당하는 DX부문의 재고는 성격이 또 다릅니다. 올 상반기 DX부문에서 늘어난 재고의 약 73%가 원재료였습니다. 원재료 증가액만 6조4000억원입니다. 완제품이 안 팔려 쌓인 것이 아니라 제품 생산에 앞서 필요한 부품이 늘어난 겁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카메라 모듈, TV·모니터용 패널, 메모리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메모리는 같은 삼성전자 안에서도 입장이 엇갈립니다. DS에는 메모리 가격 상승이 판매단가를 끌어올리는 호재지만 DX에는 메모리가 원재료입니다. 가격이 오를수록 구매비용도 높아집니다. 신제품 생산에 앞서 부품을 미리 확보하거나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해 안전재고를 늘린 영향도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DX 역시 완제품이 아니라 원재료가 재고 증가를 주도했다는 점입니다. 2022년 불황기와 지금의 재고 증가를 다르게 봐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CAPEX만 보면 안 된다…운전자본에도 현금 묶여

재고의 성격만 보면 지금까지는 비교적 긍정적인 이야기입니다. DS는 생산량을 늘리고 있고 DX는 앞으로 사용할 부품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무적으로는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재고가 좋은 재고인지 나쁜 재고인지와 별개로 재고에는 현금이 들어갑니다.

원재료를 사고 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한 뒤 생산하는 순간 현금은 먼저 빠져나갑니다. 제품을 팔아 대금을 받기 전까지 그 돈은 재고나 매출채권 형태로 묶입니다. 삼성전자의 올 상반기 자본적지출(CAPEX)은 약 33조원입니다. 이와 별도로 재고 증가 역시 현금흐름에 상당한 부담을 줬습니다.

반도체 회사의 투자 부담을 볼 때 CAPEX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공장을 짓는 데 돈이 들고, 다시 그 공장에 웨이퍼를 넣고 사람을 투입해 제품을 생산하고 고객에게 보내기까지 운전자본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매출이 빠르게 늘면 받을 돈인 매출채권도 증가하고 생산을 늘리면 재고도 늘어납니다. 회사의 사업은 잘되는데 현금은 생각보다 늦게 들어오는 이른바 '호황형 운전자본 딜레마'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재고 71.4조보다 중요한 건 '회수 속도'

앞으로 봐야 할 것은 재고가 더 늘어나는지 여부만은 아닙니다. 재고가 실제 매출과 현금으로 얼마나 빨리 바뀌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현금전환주기(CCC)입니다. 회사가 원재료를 사고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뒤 실제 현금을 회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재고가 많더라도 빨리 팔리고 대금을 빠르게 회수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호황을 예상해 재고를 늘렸는데 판매가 예상보다 늦어진다면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삼성전자의 CCC는 2022년 112.9일에서 반도체 불황이 깊었던 2023년 133.8일까지 늘었습니다. 이후 2024년 127일, 2025년 123.1일로 낮아졌고 올 상반기는 약 125.2일입니다. 아직 2023년 불황기 수준까지 악화된 것은 아닙니다.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71조4000억원 재고는 불황형보다는 성장형 재고의 특징이 강한 셈입니다. 다만 DS 재고에는 생산량 증가뿐 아니라 특별성과급을 비롯한 높아진 제조원가도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71조4000억원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이 재고가 실제 매출과 현금으로 얼마나 빠르게 돌아오느냐입니다. 반년 새 19조원 가까이 늘어난 재고가 성장의 연료가 될지, 다시 부담으로 돌아올지는 하반기 삼성전자의 재고 회전과 현금흐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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