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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Match Up구글 vs 네이버

검색엔진 발판 '빅테크기업' 반열

[태동]①'M&A기조' 이행 공통점, '모바일' 전환기 적응 비결

박동우 기자  2023-02-07 08:00:00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21세기 인류의 생활 중심에 자리잡은 건 '인터넷'이다. 사람들이 웹 브라우저에 접속해 만나는 첫 화면은 온라인 포털이다. 구글과 네이버는 국내외 '검색엔진'의 대명사로 통한다.

구글이 글로벌 1위 검색엔진 사업자라면 네이버는 한국 시장을 호령하는 포털 업체다. 당연히 구글의 덩치가 네이버를 압도한다. 연결기준 자산 규모는 13배, 매출은 43배 넘게 격차가 난다. 시가총액 역시 구글(알파벳)이 900조원에 육박하는데, 7조원대인 네이버의 115배 수준이다.

두 회사의 20여년 역사 발자취를 따라가면 공통점이 드러난다. 성장에 탄력을 주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 인수·합병(M&A) 기조를 이행해왔다. 개인용 컴퓨터(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시장 전환기에 적응해 '빅테크(Big-tech) 기업' 반열에 오른 비결이다.


◇구글 '무료 서비스' 입지 확대, 지주사 '알파벳'으로 진화

구글의 시작은 '인터넷' 열풍이 휘몰아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973년생 동갑내기이자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이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검색엔진을 선보였다. 두 창업자의 첫 사무 공간은 초라했다. 인텔에 몸담았던 친구인 수전 워치츠키(현재 유튜브 CEO)가 살던 집 차고를 빌렸다.


2001년에 에릭 슈미트 전 선마이크로시스템즈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하면서 구글은 성장 가도에 접어들었다. 검색어 광고 상품 '애드워즈(AdWords)'와 배너 광고 '애드센스(AdSense)'를 출시했는데, 탄탄한 수익원으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이용자를 자사 포털로 확고하게 끌어들이는 '록인(lock-in)' 전략도 구사했다. 2004년에 1GB 용량을 제공하는 전자우편 '지메일(Gmail)'을 론칭하는 등 주요 서비스를 무료로 개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PC를 넘어 스마트폰의 보급 진전을 예측하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2005년에 5000만달러(622억원)를 들여 벤처기업 '안드로이드(Android)'를 인수한 건 '신의 한 수'였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OS를 개발한 뒤 주요 기업에 무료로 제공했다. 승부수는 적중했다. 출시한 지 5년도 안돼 세계 모바일 OS 시장에서 구글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이 70%를 넘긴 사례가 방증한다.


2006년에는 16억5000만달러(2조500억원)를 투입해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운영사 '유튜브(Youtube)'도 사들였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는 게 용이한 특징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모바일 비디오 광고 시장을 선점하려는 취지가 반영됐다.

계열사가 늘어나는 만큼, 체계적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2015년에 지주사 '알파벳(Alphabet)' 설립을 골자로 한 조직 개편을 단행한 배경이다. 알파벳은 구글을 필두로 △칼리코(바이오) △파이버(광대역 인터넷 서비스) △네스트(스마트홈) △구글벤처스(투자사) 등 여러 자회사들을 거느렸다.

사업 영역은 무한히 확장 중이다. 2016년 자율주행 기술 연구에 방점을 찍은 조직을 분사해 '웨이모(Waymo)'를 설립했다. 2022년에는 사이버 보안 솔루션에 잔뼈가 굵은 '맨디언트(Mandiant)'의 자회사 편입에 54억달러(6조7400억원)를 쓰는 등 M&A를 매개로 사세를 넓히는 기조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네이버 초기 '한게임'과 시너지, 지금은 '상거래·콘텐츠' 진격

네이버 역시 구글과 비슷한 시기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해진 창업자(사진)는 1997년 삼성SDS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동료 직원 3명과 힘을 합쳐 사내벤처 '웹글라이더'를 만들었다. 1998년 1월에 국내 웹페이지 150만건을 축적해 검색 엔진을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야후코리아 △다음 △라이코스 등 3대 운영사가 검색엔진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다. 네이버로서는 시장 판도를 깰 묘수가 필요했다. 이해진 창업자는 돌파구로 M&A를 눈여겨봤다.

처음에는 무료 인터넷전화 사업을 전개하던 새롬기술과 합병을 모색했으나, 당시 새롬기술 주가가 버블 끝에 폭락하면서 무산됐다. 네이버는 눈길을 돌려 한게임과 M&A하는 결정을 내렸고, 통합 법인 'NHN'이 출범했다.

한게임이라는 든든한 '캐시카우'를 품에 안은 덕분에 네이버는 온라인 포털의 차별화에 힘쓸 여력을 얻었다. 중장기적으로 검색과 연계한 광고 사업에서 짭짤한 수익을 형성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2000년 8월 △웹페이지 △뉴스 기사 △사진 △백과사전 정보 등을 단일 화면에서 열람할 수 있는 통합검색 기능을 선보였다. 2002년 10월에는 이용자들끼리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지식인' 서비스를 열었다. 노력에 힘입어 2004년 이래 네이버는 국내 검색엔진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도약했다.

포털의 성장세와 맞물려 기업공개(IPO)도 순조로웠다. 2002년 하반기 코스닥에 입성했고, 2004년에는 코스닥 업체 가운데 시가총액이 가장 많은 기업으로 부상했다. 2008년에는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했다.


2010년대 '모바일'이 IT업계의 화두로 떠오르자, 네이버도 분주하게 대응했다. 2012년 메신저 '라인(LINE)'을 출시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라인은 일본과 동남아 권역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었고, 세계 누적 가입자 7억명이 넘는 앱으로 도약했다.

시장 트렌드의 변화와 맞물려 네이버와 한게임도 갈라섰다. 2000년 이래 통합 법인으로 존재하던 NHN은 2013년에 포털 사업 중심의 네이버, 게임 사업을 수행하는 NHN엔터테인먼트로 인적 분할됐다. 검색 엔진과 게임의 시너지 효과가 옅어졌다는 판단과, 양대 사업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촉진해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네이버는 '전자상거래(커머스)'와 '콘텐츠'를 쌍두마차로 앞세워 전진하고 있다. 오픈마켓 '스마트스토어'를 열고, 간편결제 서비스인 네이버페이도 연계해 수수료를 거둬들이는 모델을 구축했다. 웹툰, 카메라 앱 '스노우',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등의 사업도 순항 중이다.

최근 들어 내수 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해외로 발을 넓히고 있다. 구글의 사세 확장 비결인 M&A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2021년 상반기에는 세계 최대 웹소설 연재 플랫폼 운영사 '왓패드' 경영권을 확보했다. 투입한 자금은 6억달러(6500억원)였다.

지난해에는 북미 권역의 중고 의류 거래 플랫폼 업체 '포쉬마크'를 인수키로 결정했다. 지분 인수에 쓸 금액은 16억달러(2조3441억원)로, 창사 이래 수행한 M&A 사례 중 단연 많은 실탄을 들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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