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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나이 25살

허인혜 기자  2026-01-02 08:03:29
연말연초가 되면 숫자의 의미를 새삼 떠올린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같은 하루인데 숫자의 차이로 해가 갈린다. 2000년이 되면 세상이 셧다운된다고 떨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세기의 4분의 1이 지났다. 그 사이 붉은악마 티를 입고 소리를 질렀던 초딩은 서른보다 마흔에 가까운 직장인이 되어 이 글을 쓴다.

가수들도 음반에 나이를 강조하곤 한다. 갓 성인이 된 스무살, 이제는 좀 어른이 된 서른살. 좀 독특한 시선의 노래도 있었다. 가수 송지은이 냈던 '예쁜 나이 25살'. 노래의 요는 스스로 어린 티를 벗어난 나이가 됐고 세상도 알 것만 같다는 선언이다. 나이에 비추면 귀여운 이야기지만 사실 대학 졸업반즈음이니 그때부터는 성인 취급을 해야하고 책임도 져야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에도 스물다섯이 있다. 사외이사의 법제화를 포괄하는 증권거래법 개정 법률이 2000년 시행됐다. 계기는 외환위기다. 내부의 감시 기능만으로는 부족해 국가적 경제 위기가 초래됐으니 외부의 견제자를 의무화한다는 취지다. 지금은 당연하게 자리를 잡은 제도가 이때 태동했다.

지난 25년 동안 사외이사는 한국 자본시장의 표준 옵션이 됐다. 당연해졌기에 존재 여부는 질의의 핵심이 아니다. 시장은 이제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스물다섯은 갓 학교 밖으로 나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남이 준 성적표가 아니라 자신이 기록한 일지를 보는 나이가 아닐까. 사외이사 제도도 이제 기록을 내놓을 때가 됐다.

그래서 25주년은 축하가 아니라 검증의 시간이어야 한다. 성년은 존재감이 아니라 효능감이다. 이사회가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았는지, 안건을 되돌리고 자료를 다시 요구한 흔적이 남아 있는지. 질문이 많아질수록 재선임에서 제외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더보드가 그런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사람은 한 해의 마지막 날 자신을 되돌아본다. 기업은 보고서로 스스로를 재평가한다. 틀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이 아닐까. 내가 나를 제대로 운영하고 있나. 사외이사는 그 질문을 기업 대신 던지는 존재다. 그러니 사외이사 제도의 성패는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측정된다. 이사회는 기업에게 불편한 존재가 돼야 한다.

2026년의 첫날은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작될 것이다. 제도도 어제보다 한칸 더 단단해지며 차근히 자란다. 25년을 지나온 사외이사가 2026년에는 정말 이사회의 중심에 서길 바란다. 사외에 선 사람이 아니라 기업의 양심에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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