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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해운, 장기계약으로 완성한 '수확의 시간'

②매출 53%는 장기계약…유류할증료 조항, 최소물량 보장으로 수익성 방어

고진영 기자  2026-01-08 15:59:18
해운업은 대표적인 경기 민감 산업이다. 운임지수가 꺾이거나 유가가 급등하면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는다. 하지만 대한해운의 최근 성적은 사뭇 다른 궤적을 보이고 있다. 시황 변동에 노출되는 스팟(Spot) 영업 대신, 우량 화주와 길게 운임을 약정하는 장기계약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결과다.

2023년까지 이어진 대규모 신조 선박 투자가 마무리되면서 잉여현금도 플러스(+)로 돌아섰다. 장기계약이라는 방파제를 세우고 투자의 과실을 거두어들이는 안정적인 현금 수확기를 구가하고 있다.

2025년 9월 말 기준 대한해운은 총 37건의 장기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연속항해용선계약(CVC)과 화물장기운송계약(COA), 정기대선(TC아웃) 등을 포함한 기준이다. 6년 반 수준의 평균 잔존계약 기간을 확보해뒀다. 적어도 이 기간 동안은 해운 시황이 아무리 악화되더라도 최소한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계약 상대방을 보면 안정성은 더 두드러진다. 포스코(POSCO)와 한국가스공사(KOGAS)가 가장 중요한 거래처고 이밖에 현대글로비스, 브라질 광산기업 발레(Vale), 글로벌 에너지기업 쉘(Shell) 등 우량한 화주들과 계약을 체결 중이다. 계약 불이행 리스크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회사의 실적이 외부 변수보다 내부의 탄탄한 계약 구조로 지탱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애초 대한해운은 부정기선 사업을 중심으로 승승장구했던 곳이다. 부정기선은 화주의 수요가 있을 때 일시적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을 뜻한다. 시장이 좋을 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수요가 불규칙해 위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대한해운 역시 미국발 금융위기로 화주가 끊기고 운임료가 급락하면서 2011년 법정관리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3년 SM그룹 편입 이후론 포트폴리오 재편을 진행해왔다. 그룹 편입 직후부터 화주와 장기운임을 약속하는 전용선 사업 확보에 주력했다. 대한해운이 꾸준히 15% 이상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장기계약 조건에 담긴 수익 방어 때문이다. 현재 매출에서 장기계약 비중은 53.4%에 이른다.

통상 해운사의 이익을 해치는 요인으로는 통상 연료비 상승과 물동량 감소가 꼽힌다. 각각 비용 증가와 운임 하락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해운의 장기계약은 원가보상 방식이기 때문에 이런 리스크가 생겨도 화주에게 보전받는다.

대표적으로 유류할증료 조항이 있다. 선박 운항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연료비가 변동할 경우, 이 유가 상승분을 운임에 반영해주는 구조다. 덕분에 유가가 급등해도 마진율은 훼손되지 않는다. 또 ‘최소 물량 보장’ 조항으로 화주가 약정된 물량을 채우지 못해도 기본 운임을 수취할 수 있도록 해 매출 변동성을 최소화했다. 회사 측은 “사선의 상당부분이 원가보상 방식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유가 변동은 운임수익에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5년 9월 말 대한해운의 연결 매출액은 9807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3425억원) 대비 27% 감소했다. 선박을 팔아 차입금을 갚은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15.9%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두 자릿수 수익성을 방어했다. 매출 외형은 줄었지만 이익의 질은 지켜냈다는 의미다.

재무적 관점에서 최근 가장 유의미한 변화는 현금흐름의 성격이 투자 단계에서 회수 단계로 진입했다는 부분에 있다. 해운업은 장기계약 수주를 위해 초기에 대규모 선박 건조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자본 집약적 특성을 가진다.

대한해운 역시 2022년과 2023년, 쉘(Shell)과의 대규모 LNG 운송계약 이행을 위해 신조선 건조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보다 미래를 위해 투입된 현금이 더 많았던 시기다. 실제로 2022년과 2023년 대한해운의 잉여현금흐름은 각각 2158억원, 1502억원 규모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장부상 이익은 나지만 실제 현금은 줄어드는 구간이었다.


그러다 2023년 하반기 마지막 신조선 인도가 완료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대규모 투자가 멈추면서 2024년 잉여현금은 3700억원의 흑자로 전환했고 2025년 3분기 누적 기준으로도 1095억원을 기록, 순유입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연 5000억원대까지 치솟았던 자본적지출 규모(CAPEX)도 2024년 488억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과거 투자했던 선박들이 바다를 누벼 벌어오는 현금이 회사에 다시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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