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호황의 파도가 높을수록 썰물이 거세다. 최근 글로벌 신조선가가 주춤하면서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화엔진에선 전방산업과 다른 흐름이 관찰된다.
선가와 엔진 수주단가 사이에 생기는 시차 효과, 이중연료(Dual Fuel, DF) 엔진에 대한 중국발 수주 증가가 맞물리면서 실적 고점이 길어지고 있다.
2025년 3분기 한화엔진의 분기 매출은 2973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23.3% 감소했다. 이 기간 엔진 출하대수가 35대에서 31대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외형 성장이 둔화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1분기 인도가 이연된 엔진이 2분기에 출하되면서 기저 효과가 생긴 영향이 컸다.
수익성 지표를 보면 오히려 분기 영업이익률이 8.9%로 전분기(8.7%)보다 개선됐다. 제조업에서 매출이 줄면 고정비 부담으로 이익률이 떨어지는 게 보통인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매출 축소에도 수익성이 올라간 이유는 가격상승 효과가 물량감소의 타격을 압도한 덕분으로 해석된다. 한화엔진이 3분기에 인도한 엔진들은 2023년 선가와 엔진가가 가파르게 오르던 시기에 수주한 물량들이다. 저가 수주 물량을 털고, 마진율 높은 고가 수주분이 본격적으로 매출로 인식되면서 원가율이 개선됐다.
실제로 2024년 3분기 91%였던 한화엔진의 매출원가율은 1년 만에 86.6%로 4.4%p나 낮아졌다. 매출 외형은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이익의 질은 크게 올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수익성 개선 폭이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에 수주한 초고가 엔진이 작년 4분기부터 납품을 시작했고, 올해 1분기엔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2023년 4분기 이후 분기당 30대 이상 출하하는 중”이라며 “납품대수와 평균판매단가 모두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선가 하락에도 불구 한화엔진의 높은 수익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 밸류체인에서 엔진은 선박 가격의 10~15%를 차지하는 핵심 기자재로 꼽힌다. 주목할 점은 선박 계약과 엔진 발주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시차에 있다.
선가의 변동은 엔진 가격에 바로 반영되지 않는다. 선가는 조선사와 선주가 선박 건조계약을 체결할 때 결정되는데, 엔진의 경우 선형 최적화와 상세 설계를 확정하고 실제 제조사에 발주를 내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락슨(Clarkson) 신조선가는 2024년 10월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화엔진의 수주단가는 이보다 9개월 이상 늦은 작년 상반기까지 고점을 유지했다. 인도 시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2027년까지는 단가 하락이 실적에 반영되지 않을 전망이다.
회사 관계자는 “조선 수주와 엔진 수주가 다른 시점에 이뤄지고, 선박 엔진은 면허 생산이기 때문에 엔진 면허를 가지고 있는 업체 수가 적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연료(Dual Fuel, DF) 엔진의 높은 비중도 눈에 띈다. 현재 한화엔진 수주잔고의 87%는 DF엔진이 차지하고 있다. 선박유와 LNG, 메탄올 등의 연료를 번갈아 쓸 수 있는 친환경 엔진이다. 전통적인 디젤 엔진보다 가격이 15~20% 이상 비싼 데다 기술 장벽이 높아 마진율이 좋다.
환경 규제가 강화될수록 한화엔진의 곳간은 더 알차게 채워지는 구조다. 공인된 조사 결과는 없지만 DF엔진을 비롯한 저속엔진은 시장에선 한화엔진과 HD현대중공업이 전 세계에서 50% 이상을 점유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중국 조선사들의 컨테이너선 수주가 증가하고 있는 점 역시 한화엔진에 좋은 소식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견제로 중국 컨테이너선은 지난해 초부터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무역보복 조치를 일부 유예한 이후 중국의 컨테이너선 수주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한화엔진이 가장 DF엔진 수주를 많이했던 분야는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인데, 이 선박에 주로 DF엔진이 적용되기 때문”이라며 “친환경 엔진을 적용하는 트렌드가 컨테이너선에도 옮겨가고 있어 DF엔진에 특화된 한화엔진엔 잘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엔진은 지난해 3분기까지 1조7660억원어치를 수주했다. 9개월 만에 2024년 연간 수주를 웃도는 성적을 냈다. 또 4분기에 약 3500억원 규모를 추가로 따왔으니 2025년 연간 수주는 최소 2조원을 넘길 것으로 짐작된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