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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그룹 3세 승계 딜레마

김형락 기자  2026-03-25 10:29:04

편집자주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류찬우 창업주, 불모지에서 이룩한 동전·총알 왕국

2.1. 풍산 류 씨 선비 집안 장손

2.2. 풍산, 글로벌 구리 가공 업체 반열에

2.3. 탄약 제조 국산화한 방산업 대부

3. 차남 류진 회장이 꿰찬 풍산 왕좌

3.1. 장남 류청 전 사장, 박정희 전 대통령가와 맺었던 혼맥

3.2. 류진 회장, 입사 17년만에 풍산 대주주 등극

3.3. 풍산, 외형 책임지는 신동…알짜는 방산

3.4. 류진 회장, 민간 외교관으로 활약한 '미국통'

3.5. 은둔의 경영자에서 한경협 회장으로

4. 3세 경영에도 창업 정신 이어질까

4.1. 미국 국적 취득한 로이스 류(Royce Ryu)

4.2. 3세 경영 승계 대비한 탄약 사업 매각 시나리오

4.3. 지배력 승계 본격화는 아직

1. 개요접기



최초 문서 작성: 2026년 3월 25일

풍산그룹은 3세 경영 승계를 준비하면서 캐시카우인 방산 부문을 가져갈지, 내려놓을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룹 3세 경영인에게 방산 부문 경영권을 승계하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2026년 3월 탄약 사업 매각설이 불거진 이유이기도 하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 장남인 류성곤(미국명 로이스 류) PMX 인더스트리(미국 동 관련 제품 제조·판매 법인) 수석 부사장은 미국 국적자다. 관련 법에 따라 외국인이 국내 방산 기업 경영권을 취득하려면 산업통상부 장관 승인 등을 받아야 한다. 병역 기피 의혹 등 민감한 이슈들도 얽혀 있다.

풍산은 고(故) 류찬우 창업주가 일군 신동(구리 가공)·방산 기업이다. 류 창업주는 선조인 서애 류성룡 선생께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겠다는 신념을 실천한 경영인이다. 임진왜란 뒤 징비록을 저술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서애 선생의 뜻을 가슴에 새기고 동 제품 생산을 넘어 탄약 자급화에 힘썼다.

류 부사장은 2세 경영 주자인 류진 회장 뒤를 이을 풍산그룹 3세 경영인으로 거론된다. 류 부사장에겐 선대 회장인 류 창업주 경영 철학에 녹아 있는 서애 정신을 계승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류 부사장이 경영 수업을 거쳐 풍산그룹 왕좌에 오를 때 사업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 만약 탄약 제조 사업을 매각한다면 승계를 위해 수익 구조와 정체성을 흔드는 결정을 내린다는 비판을 잠재울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 문서는 풍산그룹 창업과 3세 경영 승계 준비 과정 등을 상세히 정리했다.

2. 류찬우 창업주, 불모지에서 이룩한 동전·총알 왕국접기



2.1. 풍산 류 씨 선비 집안 장손접기



류찬우 창업주는 1923년 경상북도 청송군 덕천마을에서 선비 집안 장손으로 태어났다. 2남 2녀 중 장남이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선생의 12대손이다.

집안 가풍과 '선조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가치관이 기업 운영에도 녹아들었다. 풍산이라는 상호도 풍산 류(柳) 씨인 류 창업주의 본관을 따서 지었다.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출처: 풍산 홈페이지)

2.2. 풍산, 글로벌 구리 가공 업체 반열에접기



류 창업주는 1968년 풍산 모태인 풍산금속공업을 세웠다. 일본에서 모은 돈 1000만달러를 전부 투자했다. 류 창업주는 대구공립직업학교(현 대구공업고등학교)를 나온 뒤 해방 직후 서울 반도호텔에 오퍼상(무역중개상)을 차렸다. 1959년 일본으로 건너가 베트남 전쟁 특수 등을 타고 큰 돈을 벌었다.

류 창업주는 국내 비철금속 산업 태동기에 구리에서 사업 기회를 봤다. 동과 동합금 소재는 모든 산업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질 좋은 소재를 저렴하게 공급받지 못하면 산업 발전을 이룰 수 없으므로 누군가는 꼭 해야하는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풍산은 1969년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동에 국내 최초 현대식 신동 공장인 부평 공장(연산 4만t 규모)을 준공하면서 사업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류 창업주는 풍산을 30년만에 세계 3대 신동기업으로 키웠다. 지금도 풍산은 생산 능력 기준 국내 1위, 세계 3위 동 가공 기업이다. 소전(무늬만 안 찍은 상태의 동전 재료), 리드프레임(Leadframe) 소재(반도체 칩을 고정하는 기판) 등에서 독보적인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소전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1위다. 전 세계 동전 절반 가량을 풍산이 만든다. 1970년 한국조폐공사가 풍산을 소전 생산 업체로 지정하면서 시작한 사업이다. 류 창업주는 국내 주화용 소전을 납품하면서 수출 물량을 늘려 풍산을 '동전 왕국'으로 만들었다.
풍산 소전 사업(출처: 풍산 홈페이지)

2.3. 탄약 제조 국산화한 방산업 대부접기



류 창업주는 탄약 국산화로 자주 국방 토대를 마련한 방위 산업 대부로 통한다. 1972년 정부는 풍산을 탄약 제조 업체로 선정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리 가공 기업인 풍산에 소총탄과 포탄 등 탄약 개발을 맡겼다. 풍산은 1973년 경상북도 경주시에 종합 탄약 공장인 안강 공장을 준공해 방위 산업에 진출했다. 1975년 필리핀과 미국에 탄약을 수출하면서 방산 수출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풍산이 세계적 탄약 전문 메이커로 거듭나면서 '총알 왕국'이라는 수식어까지 따라왔다. 풍산은 소구경에서 대구경에 이르는 각종 군용 탄약과 스포츠용 탄약, 추진 화약·탄약 부분품 등을 생산한다. 한국 국방부가 사용하는 탄약에 독점적 공급권을 가지고 있다. 전량 군납이라는 특성상 적정 마진을 보장받는다. 북미 지역에 군용탄, 스포츠탄 등도 수출하고 있다.
풍산 탄약 사업(출처: 풍산 홈페이지)

3. 차남 류진 회장이 꿰찬 풍산 왕좌접기



3.1. 장남 류청 전 사장, 박정희 전 대통령가와 맺었던 혼맥접기



류 창업주는 슬하에 2남 2녀를 뒀다. 현재 풍산그룹은 이끄는 류진 회장은 류 창업주의 막내 아들이다. 유교적 가풍이 강한 집안에서 차남이 경영권을 승계했다. 류 창업주의 장남은 류청 전 PMX 인더스트리 사장이다. 류 창업주는 류진 회장에게 국내 사업, 류청 전 사장에게는 해외 사업을 맡기며 2세 경영 수업에 들어갔다.

류청 전 사장은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 차녀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인 박서영(현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이혼해 혼인 기간은 짧았다. 류청 전 사장은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뗐다. 2009년부터 지주사 풍산홀딩스 지분을 팔기 시작해 2012년에는 보유 지분 전부 정리했다. 류청 전 사장은 미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2. 류진 회장, 입사 17년만에 풍산 대주주 등극접기



류진 회장은 부사장 시절인 1996년 풍산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1982년 풍산에 입사한지 14년만이다. 1997년 사장, 2000년 회장에 취임하며 그룹 장악력을 높였다. 1999년 류 창업주 지분을 장내매수해 풍산 최대주주에 등극했다.

류진 회장은 1958년 경상북도 안동시 하회마을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국제학교를 다녔다. 1983년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도 수료했다. 류진 회장은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 프랑스어 등 3개 국어를 구사한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출처: 풍산 홈페이지)

3.3. 풍산, 외형 책임지는 신동…알짜는 방산접기



류진 회장은 부친이 닦은 기틀 위에서 풍산을 경영했다. 신동 부문은 규모의 경제에 따른 원가 경쟁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사 매출 70%(2025년 연결 기준 매출 3조7280억원)를 책임지고 있다. 방산 부문은 법인세비용 차감 전 순이익 90%가량(2025년 2108억원)을 차지하는 캐시카우다. 방산 부문이 경기 변동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동 부문 수익성을 보완하는 사업 구조다.

2008년에는 류진 회장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주도했다. 풍산홀딩스는 풍산 지분 3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풍산홀딩스는 풍산을 관계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류진 회장 일가는 풍산홀딩스 지분 48.75%를 보유한 지배주주다.
풍산 매출 추이(출처: 풍산 IR 자료)

3.4. 류진 회장, 민간 외교관으로 활약한 '미국통'접기



류진 회장은 국내에서 보수,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민간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풍산이 방위 산업을 영위하고 있어 류 창업주 시절부터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폭 넓은 인맥을 쌓았다.

류진 회장은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에는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국내 초청을 주도했다. 2008년에는 이명박 정부 방미단에 합류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지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에는 한국 재계와 미국 하원 의원단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대외특사단에 들어간 기업인은 류진 회장이 유일했다. 2019년 방한한 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 청와대 회담에도 류진 회장이 배석했다. 2023년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 경제사절단에 합류해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 만찬에 참석했다.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는 국내 4대 경제단체장 중 류진 회장만 참석했다.

부시 전 대통령 일가와는 돈독한 사이다. 풍산그룹 초청으로 2005년에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2009년에는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이 안동을 찾았다.

두 가문 사이 교류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 방한했을 때 시작됐다. 당시 방위산업진흥회 회장이었던 류 창업주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만찬 자리에서 미국 법인 설립식 행사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1992년 풍산의 미국 아이오와주 공장 준공식에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아내 바버라 여사가 참석했다.

부모 세대 친분은 아들 세대로 이어졌다. 류진 회장은 2018년 바버라 부시 여사 장례식에 참석했다. 2019년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 참석차 방한한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은 류진 회장을 ‘소중한 벗’이라 칭했다.

3.5. 은둔의 경영자에서 한경협 회장으로접기



류진 회장은 2023년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했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류진 회장은 경제단체장을 맡아 대외 활동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로 훼손된 한경협 위상을 회복해야 하는 무거운 자리였다. 류진 회장은 한경협에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4대그룹(삼성·현대차·SK·LG) 복귀를 이끌었다.

4. 3세 경영에도 창업 정신 이어질까접기



4.1. 미국 국적 취득한 로이스 류(Royce Ryu)접기



류진 회장은 노신영 전 국무총리 차녀 노혜경(미국명 헬렌 노) 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성곤)·1녀(성왜)를 뒀다. 두 자녀 모두 풍산그룹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다. 장남인 류성곤 씨는 PMX 인더스트리에서 수석 부사장직을, 풍산 아메리카(미국 동 관련 제품·기계 설비 중개 법인)에서 스페셜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다. 장녀 류성왜 씨는 풍산 미국 법인 자회사인 PMC 애뮤니션(미국 스포츠탄 관련 제품 판매 법인)에서 비즈니스 관리 부서 이사로 재직 중이다.
류성곤 PMX 인더스트리 수석 부사장(출처: 류성곤 부사장 SNS)

풍산홀딩스는 2014년 노 씨와 류 부사장 국적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고 공시했다. 당시 1993년생인 류 부사장이 입대할 나이여서 병역 기피 논란이 일었다. 재계에서는 류 부사장이 병역이 면제되는 2030년(만 37세) 이후 한국 국적을 회복한 뒤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류 부사장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철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가 됐다. 미국 로펌 밀뱅크에서 일했고,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서도 근무했다.

4.2. 3세 경영 승계 대비한 탄약 사업 매각 시나리오접기



풍산은 2026년 3월 불거진 탄약 사업 매각설에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구조 개편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 답했다. 풍산홀딩스는 풍산 지분 매각설에 "사실무근"이라 답했다. 풍산 매각설은 류 부사장 경영 승계와 맞물려 IB 업계에서 꾸준히 나온 이슈였다. 미국 국적인 류 부사장이 풍산 지배력을 승계해 방산 부문을 이끄려면 방위사업법과 외국인 투자 촉진법에 따라 산업통상부 장관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에서는 풍산이 탄약 제조 사업을 매각해 국적 규제가 없는 신동 사업 중심의 ‘첨단 소재 기업’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을 점친다. 중동 전쟁으로 높은 가격을 받은 수 있는 시기에 탄약 제조 사업을 매각해 사업 구조 개편 자금을 마련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매각가는 1조5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영업 양수도부터 신동 부문과 방산 부문을 분할한 뒤 매각하는 등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4.3. 지배력 승계 본격화는 아직접기



현재 풍산그룹 지배주주는 풍산홀딩스 지분 37.61%를 보유한 류진 회장이다. 류진 회장은 부인과 자녀들에게 풍산홀딩스 지분을 증여해주고 있다. 류 부사장이 보유한 풍산홀딩스 지분은 2.43%다. 본격적인 지배력 이양 작업을 시작하지 않아 류진 회장 부인 노 씨(5.41%)와 딸 성왜 씨(3.25%)보다 보유 지분이 적다.
  • [1] 류찬우 창업주는 1976년 서애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각종 선양 사업을 펼쳤다. 안동 병산서원을 복원하고, 서애 유물 전시관인 영모각도 건립했다. 서애 선생 저서를 집대성한 서애전서를 간행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풍산이 KBS 사극 징비록을 후원했다. 징비록은 서애 선생이 쓴 임진왜란 전란사다. 류 창업주가 방위 산업에 뛰어든 데에도 서애 선생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 [2] 류찬우 창업주는 공식석상이나 사석에서 버릇처럼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 [3] 풍산금속공업은 1989년 풍산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 [4] 류찬우 창업주는 3공화국 시절인 1968년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해외 교포 자본 유치' 정책에 호응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당시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도 대표적인 도일(渡日) 기업인이다.
  • [5] 2025년 풍산 연결 기준 매출액(3조8491억원)에서 소전 품목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4%(1686억원)다.
  • [6] 류찬우 창업주는 1999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 [7] 류진 회장은 풍산그룹을 경영하며 △한·미 경제협의회 부회장(1997~2021년) △서애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1999년~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2001~2021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2005년~현재) △한국펄벅재단 이사장(2007년~현재) △한국비철금속협회 회장(2011~2015년) △CSIS(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이사(2020년~현재) △한국경제인협회 회장(2023년~현재) 등으로도 활동했다.
  • [8] 독실한 가톨릭 신자 류진 회장과 노혜경 씨는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 [9] 방위사업법 제35조 3항. 방산업체의 매매·경매 또는 인수·합병, 그 밖의 사유로 경영 지배권의 실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때에는 당해 방산업체와 경영상 지배권을 실질적으로 취득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관계 서류를 제출해 미리 산업통상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다만 외국인투자 촉진법 6조 1항부터 4항까지 규정에 의해 산업통상부장관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 [10] 외국인 투자 촉진법 6조 1항. 외국인(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수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위산업체를 경영하는 기업에 대해 2조 1항 4호 가목의 방법에 따른 외국인 투자를 하려는 경우 5조 1항 및 2항에도 불구하고 산업통상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미리 산업통상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받은 내용 중 외국인 투자비율 등 산업통상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변경할 때에도 또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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