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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 유한양행

이기욱 기자  2026-07-30 15:23:02

편집자주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보건 주권과 민족 기업의 탄생

2.1. 9세 유학생의 애국심과 의약 독립운동

2.2. 버들표 로고에 녹아든 창립 정신

3. 기술 자립과 대량생산 인프라의 구축

3.1. 안티푸라민, 자체 개발 1호 의약품의 신화

3.2. 군포공장과 중앙연구소, 외형성장의 양 날개

4. 글로벌 혁신 신약 '렉라자'의 결실과 오픈이노베이션

4.1. 국산 신약 31호,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에 진출하다

4.2. 라이선스 아웃과 안정적인 현금흐름의 창출

5. 미래 100년의 사업 다변화와 글로벌 비전

5.1. 뉴코(New Co) 모델 도입과 포스트 렉라자 전략

5.2. 원료의약품 CDMO와 프리미엄 헬스케어 포트폴리오의 완성

6. '소유·경영 분리' 선진 지배구조, 사회 속 유한양행

6.1. 유언장에 담긴 경영 '비상속' 원칙

6.2. 6년 임기 원칙과 고도화된 리더십 순환 체제

6.3. 이윤이 인재가 되는 사회 환원 메커니즘

6.4. 유한학원을 통한 실천적 교육 보국의 실천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7월 30일

1. 개요접기



연 매출 2조원 돌파, 국내 최초 미국 식품의약국(FDA) 항암 신약 승인, 반세기가 넘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선진 지배구조 확립, 국내 1위 제약사 입지를 구축한 유한양행을 수식하는 성과들이다. 유한양행 100년 역사의 산물이다.

유한양행은 1926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던 척박한 조선에서 오직 "보건 주권을 되찾고 우리 동포에게 가장 좋은 약을 공급하겠다"는 청년 유일한 박사의 신념 하나로 출발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국내 의약품 국산화의 기틀을 닦고 한국 기업 역사상 가장 투명한 지배구조와 사회환원의 구조를 확립했다.

유한양행의 창업이념은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사업가의 과감한 전 재산 투입과 민족을 향한 애국심이 근간이 됐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사기업의 사적 이윤 추구를 넘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완벽히 분리하고 그 결실을 사회 공익과 교육에 온전히 환원하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이 문서는 한국 근현대 산업사 속에서 진화를 거듭해온 유한양행의 외형 성장 과정과 선진 지배구조 구축, 사회환원 제도 확립, 미래 비전 등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2. 보건 주권과 민족 기업의 탄생접기



2.1. 9세 유학생의 애국심과 의약 독립운동접기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난 유일한 박사가 선진 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을 구하겠다는 대의를 품은 것은 어린 나이에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부터다. 국운이 기울어가던 시기, 선진 문물을 배워 조국을 구할 인재가 되기를 바랐던 부친 유기연 선생의 결단으로 1904년 아홉 살의 나이에 미주 대륙으로 향했다.

미국 네브라스카주 커니 농촌 마을에 정착한 유 박사는 강도 높은 가사 노동과 언어 장벽의 이중고를 겪으면서도 헤스팅스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팀 주장을 맡아 백인 학생들을 리드할 정도로 우수한 적응력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미시간주립대학교 상과에 진학해서는 학업과 동양 특산물 장사를 병행하며 사업가적 자질을 영리하게 키워나갔다.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출처: 유한양행)

그러던 중 1919년 그의 일생에 가장 거대한 변곡점이 찾아온다. 국내에서 울려 퍼진 3·1 만세운동의 함성에 호응해 미주 한인들이 필라델피아에서 개최한 '한인자유대회'에 청년 학생 대표로 참여하게 됐다.

유 박사는 독립 목적과 우리 민족의 열망을 전 세계에 밝히는 결의문 초안을 직접 작성하고 선포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 대회는 그에게 본인의 지식과 향후 모든 경제 활동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쳐야 한다는 확고한 사명감을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후 유 박사는 1922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숙주나물 통조림 회사인 '라초이(La Choy)'를 창업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열처리법을 개발해 디트로이트를 넘어 시카고, 펜실베니아, 뉴욕까지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장시켰고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과 선진 경영 기법을 몸소 학습했다.

하지만 창업 3년이 지난 1925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일시 귀국한 유 박사는 일제 식민 지배하에 놓인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깊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조선의 보건 위생 환경은 지극히 열악했고 일본 제약 기업들이 장악한 고가의 수입 약들을 구하지 못해 수많은 동포가 전염병과 가난 속에서 무력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의사는 물론 필수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해 질병으로 고통 받는 민족의 실태를 본 그는 미국에서 한창 성장 가도를 달리던 라초이의 경영권을 동업자에게 과감히 넘기고 조국으로의 영구 귀국을 결정했다. 조국을 구하는 길은 정치적·군사적 투쟁뿐만 아니라 민족의 보건 주권을 세우는 기업 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신념에 따른 전격적인 선택이었다.

2.2. 버들표 로고에 녹아든 창립 정신접기



영구 귀국을 앞두고 유 박사는 미국에서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서재필 박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서 박사는 조국에서 민족 기업을 일으키고자 하는 청년 유일한에게 깊은 당부와 함께 '버드나무' 목각품을 선물했다.

버드나무처럼 아무리 모진 바람에 꺾여도 다시 푸르게 자라나고 메마른 땅에서도 깊게 뿌리를 내려 지친 민족에게 시원한 그늘과 희망을 주는 안식처가 되라는 숭고한 당부였다. 이 목각품이 바로 현재까지 유한양행을 상징하는 영원한 로고인 '버들표'의 시작이다.

유 박사는 1926년 12월 10일 서울 종로 덕원빌딩에 '유한양행'을 창립했다. '유한'은 자신의 성인 '버들 유(柳)'와 나라 이름인 '한국(韓)'을 합친 것이고 '양행'은 서양 물건을 파는 가게라는 의미를 담았다. 세계 무대로 뻗어나갈 한국 기업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창립 단계에서부터 명확히 했다.
창립 당시부터 1929년까지 유한양행의 사옥이었던 덕원빌딩의 모습(출처: 유한양행)

유한양행의 출범은 단순히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의 창업을 넘어선 역사적 사건이었다. 일본 자본이 독점하던 시장에서 우수한 의약품의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민족의 보건 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독립운동의 연장이었기 때문이다.

유 박사는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창립 정신 아래 품질이 좋고 품종이 다양한 미국산 약품을 우선 수입해 저렴하게 공급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자체 공장을 세워 우수한 의약품을 직접 생산하는 기술 자립화 단계로 빠르게 나아갔다.

3. 기술 자립과 대량생산 인프라의 구축접기



3.1. 안티푸라민, 자체 개발 1호 의약품의 신화접기



1933년 유한양행은 마침내 대한민국 기업의 손으로 직접 개발한 최초의 자체 소염진통제 '안티푸라민'을 출시했다. '반대'라는 의미의 안티(anti)와 '염증을 일으키다'라는 뜻의 인플레임(inflame)을 합성해 만든 제품명처럼 돈이 없어 가벼운 타박상이나 염좌상조차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던 국민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녹아든 제품이었다.

안티푸라민 개발의 결정적 계기는 유 박사의 아내이자 동양인 여성 최초의 소아과 전문의 호미리 여사의 조언이었다. 호미리 여사는 모든 의약품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열악한 시기 소외된 이들을 위한 자체 상비약 개발을 건의했고 유한양행의 연구진이 사력을 다해 개발에 착수했다. 안티푸라민은 출시되자마자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동포들에게 최고의 필수 상비약으로 보급됐고 유한양행이 기술 자립과 의약품 주권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1936년 유한양행은 대대적인 성장에 발맞춰 조직을 주식회사 체제로 재편하고 경기도 부천 소사에 대지 2만여 평을 매입해 대규모 제약공장과 현대식 실험연구소를 건설했다.

유 박사는 수입 약품이나 일본 제품을 압도하는 최고 품질의 의약품을 자체 생산하기 위해 비엔나 출신의 저명한 화학자 데이비드 발레트 박사를 기술책임자로 특별히 초빙하고 내부 연구진을 대폭 강화했다.
유한양행의 1호 자체 개발 의약품 안티푸라민(출처=유한양행)

소사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우수한 국산 의약품들은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일본 제약회사 제품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만주 북부, 중국 본토, 대만, 베트남 등 해외로까지 대리점과 판로를 확장했다. 당시 민족계 단일 기업 최대 규모의 자본금을 자랑하던 유한양행은 일제의 삼엄한 탄압과 표적 세무사찰, 금융 불이익 속에서도 일본 기업과의 거래나 타협을 일절 배제하면서 민족 기업으로서의 자립도를 당당히 증명해냈다.

3.2. 군포공장과 중앙연구소, 외형성장의 양 날개접기



유한양행은 1990년대 초반 현대적 제약기업으로서 외형적 기틀을 완벽히 갖추고 사상 최초로 '매출 1000억원' 고지를 돌파했다. 대대적인 생산 및 R&D 인프라 신설 전략이 빛을 발한 시기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서울 본사와 소사공장이 점령당하고 비축 원료가 소실되는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으나 피난지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군납 비타민 정제 생산에 최초로 성공하며 빠르게 재기했다.

이후 1962년 대방동 사옥 준공과 함께 대한민국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하면서 기업을 공개했다. 1969년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해 선진적 경영 체제를 확립했다.

1971년 창업주 유 박사 타계 이후 투명한 지배구조 아래서 단행된 또 한 번의 거대한 생산기지 이전이 도약의 결정적 발판이 됐다. 그 신호탄이 바로 1979년 준공된 최첨단 '군포공장'이다.

제약업계 최초로 완전무균실을 완비하고 온도와 습도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최첨단 GMP 개념의 군포공장은 유한양행의 대량생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이는 1985년 국내 최초의 KGMP(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 적격업체 지정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생산 인프라의 고도화와 동시에 1984년에는 자체 기술력의 심장부인 '중앙연구소'를 개소했다. 단순 도입 의약품과 수입 상품 매출에 의존하던 전통적인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인 신약 개발 역량을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경영진의 뚝심이 담긴 과감한 선제 투자였다.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역시 1988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KGLP(우수실험실운영기준) 적격시험기관으로 지정되면서 한국 제약산업의 질적 성장을 견인했다.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전경(출처: 유한양행)

이처럼 고도화된 '군포공장'과 '중앙연구소'라는 양 날개가 유기적으로 가동되면서 유한양행은 매년 11%에서 18%대에 이르는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그 결과 1976년 매출 120억원을 기록하며 첫 100억 고지를 돌파했고 정확히 15년 만인 1991년 매출 1102억원을 달성했다. 외형을 10배로 불리는 퀀텀점프를 완수했다.

4. 글로벌 혁신 신약 '렉라자'의 결실과 오픈이노베이션접기



4.1. 국산 신약 31호,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에 진출하다접기



2000년대 들어 유한양행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치열해진 무한 경쟁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대대적인 인프라 혁신에 나섰다. 2005년 용인시 기흥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중앙연구소를 신축 이전했다. 이듬해인 2006년에는 충북 오창에 국제 기준을 완벽히 충족하는 대규모 자동화 시설 '오창공장'을 건립해 생산 라인을 전격 이전했다.

글로벌 영토 확장을 위한 고도화된 인프라 투자의 결실은 2014년에 맺어졌다. 유한양행은 2014년 매출 1조175억원을 기록하면서 대한민국 제약업계 역사상 최초로 '매출 1조 클럽'에 진입하는 위업도 달성했다.

굳건히 다져진 외형적 자금력과 1984년 연구소 신설 이래 묵묵히 이어온 R&D 뚝심이 결합해 마침내 국산 신약 31호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레이저티닙)' 결실을 맺었다.

렉라자는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겨냥한 3세대 EGFR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TKI)다. 2024년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글로벌 빅파마 얀센의 이중항체 '리브리반트'와의 병용요법으로 품목 허가 승인을 획득하는 역사적 쾌거를 이뤄냈다.
렉라자정 제품 사진(출처: 유한양행)

국내 제약사가 자체 개발해 기술수출한 항암 신약 중 미국 FDA의 허가 문턱을 넘은 것은 렉라자가 최초다. 내수 중심의 전통 제약산업을 글로벌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으로 격상시킨 위대한 변곡점으로 평가받는다.

4.2. 라이선스 아웃과 안정적인 현금흐름의 창출접기



렉라자의 위대한 성공은 유한양행이 전개해 온 선진적인 '오픈이노베이션(상생형 오픈 혁신)' 전략이 증명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렉라자의 출발점은 외부 바이오텍의 초기 연구물질이었다. 유한양행은 2015년 7월 국내 물질발굴 전문 바이오텍인 제노스코로부터 전임상 단계의 초기 후보물질을 계약 규모 15억원에 도입했다.

단순히 외부 기술을 사들여 유통하는 상품 중심 구조에서 탈피해 도입 직후 유한양행만의 고도화된 자체 개발 역량을 투입했다. 물질 최적화와 공정 개발, 비임상 및 국내 임상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면서 후보물질의 가치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가치가 극대화된 렉라자는 2018년 11월 글로벌 빅파마 얀센(J&K)에 총 계약 규모 12억5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라는 초대형 규모로 글로벌 개발 권리를 기술수출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글로벌 마케팅과 대규모 글로벌 임상 3상 비용은 빅파마인 얀센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유한양행은 단계별 기술료를 수령하는 영리한 글로벌 협업 구조를 구축했다.

렉라자는 유한양행의 수익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놨다. 과거 유한양행은 매출액 규모에서는 국내 1위 자리를 고수했으나 수입 상품 유통 비중이 높아 영업이익률 등 수익성 측면에서는 다소 아쉽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렉라자가 본격적으로 상업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선급금 5000만달러(약 700억원)와 개발 마일스톤 1억달러(약 1500억원)를 수령했다. 추가로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 허가에 따른 상업화 마일스톤 등 총 3억달러(약 45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기술료 수익을 올리는 캐시카우로 등극했다.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나아가 본격적인 글로벌 판매가 개시된 2025년부터는 상업적 순매출액에 연동되는 순수 로열티 현금흐름이 매 분기 안정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마일스톤과 로열티 수익은 대규모 제조원가나 판관비 부담이 거의 없는 고부가가치 영업이익으로 직결되기에 회사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과 차세대 R&D 투자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체력을 증명해냈다.

유한양행은 렉라자 출시 초기 건강보험 급여 적용 전까지 환자들에게 약제를 전액 무상으로 공급하는 조기 공급 프로그램(EAP)을 시행하기도 했다. "가장 좋은 약을 만들어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창업 정신을 21세기 시장에서 실천적으로 재현해내 사회 전반에 깊은 감동을 안겼다.

5. 미래 100년의 사업 다변화와 글로벌 비전접기



5.1. 뉴코(New Co) 모델 도입과 포스트 렉라자 전략접기



유한양행은 2024년 연결 기준 매출액 2조678억원을 달성한 데 이어 2025년에도 2조1866억원을 시현하면서 확고한 '매출 2조원 시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외형 매출의 세부 구조를 면밀히 분석해보면 여전히 국내 내수 중심의 전문의약품(ETC) 및 일반의약품(OTC) 약품사업 비중이 전체의 64.1%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톱티어 하우스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내수 중심 구조의 탈피가 당면 과제다. 이에 유한양행은 창립 100주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 50위권 제약사 진입을 정조준하는 '그레이트 유한, 글로벌 유한(Great Yuhan, Global Yuhan)' 비전을 선포하고 R&D와 사업 구조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출처: 유한양행)

그 핵심 전략이 바로 차세대 파이프라인 효율화를 유도하는 '뉴코(New Co)' 개발 모델의 도입이다. 뉴코 모델은 유한양행 본사가 보유하고 있는 특정 유망 신약 파이프라인(IP)을 현물 출자해 독립된 신설 전문 법인(SPC)을 설립하고 외부의 전략적 투자자(SI)나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자본을 직접 조달받아 임상을 전개하는 고도화된 사업 구조다.

이를 통해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 부담과 실패 리스크를 본사 재무제표로부터 기민하게 분리할 수 있다. 본사의 무거운 의사결정 단계를 생략하고 신속·유연한 경영 체제를 갖춰 임상 개발 속도를 극대화한다.

성공적인 임상 통제를 위해 핵심적인 주요 임상 가이드라인과 운영 주도권(Main Control)은 유한양행 본사가 확보한다. 동시에 핵심 연구 인력의 성과 보상 기회와 스톡옵션 제도를 유연하게 결합해 인력 공백을 방지한다.

유한양행은 이 뉴코 모델을 활용해 이른바 '포스트 렉라자 5종'의 글로벌 임상 고도화와 전략적 매각(M&A), 해외 지분 상장 등 다각화된 엑시트(Exit) 액션을 구상한다. 글로벌 기술수출 논의가 가장 구체화된 알레르기 치료제 파이프라인 '레시게르셉트'를 포함해 MASH 치료제(YH25724)와 고형암 이중항체 치료제 등 미래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가파르게 증대시키고 있다.

5.2. 원료의약품 CDMO와 프리미엄 헬스케어 포트폴리오의 완성접기



유한양행의 외형적 영토 확장을 주도하는 양대 핵심 축은 자회사 유한화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원료의약품(API)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의 고도화와 생활건강 사업의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이다. 유한양행은 글로벌 대형 빅파마인 길리어드 사이언스 등과의 오랜 장기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족하는 최고 수준의 원료의약품 생산 역량을 축적해왔다.

특히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제약·바이오 패권 경쟁과 중국계 CDMO 기업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규제 법안 법제화는 지정학적 안정성과 우수한 품질 관리 능력을 동시에 갖춘 유한양행 API CDMO 사업에 중장기적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이러한 시장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포획하기 위해 자회사 유한화학의 안성공장(46만2700리터)과 화성공장(53만2650리터)의 생산 라인 대규모 정비를 완료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화성공장에 약 29만2000리터 규모의 생산 캐파를 추가하는 HC동 증설 공사를 착공해 오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추가 대형 수주를 본격화해 현재 17.7% 수준인 해외 수출 매출 비중을 대폭 끌어올릴 방침이다.

아울러 B2C 헬스케어 분야 역시 포트폴리오 고도화가 한창이다. 과거 단순 마진 중심의 저가형 생활용품 위주 구조에서 완전히 탈피해 기능성 라인업 확대와 사용자 편의성 고도화를 앞세운 '프리미엄 헬스케어 벨트'를 완성해가고 있다.

뷰티 부문에서는 프리미엄 비건 화장품 브랜드 '딘시'와 비타민 스킨케어 브랜드 '더이유'를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에 성공했다. 메가 브랜드인 여성 질 건강 유산균 '엘레나', 식후 혈당 유산균 '당큐락', 모발 성장 케어 '모큐락' 등 전문 의사 자문단을 도입한 고부가가치 기능별 맞춤형 프로바이오틱스 라인업도 확장하면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여기에 덴탈 부문의 차세대 의료기기 신제품 '유한트윈제로' 출시 등 치과용 임플란트 및 전문 의료기기 영역으로의 확장을 가속화하는 중이다. 미래 100년을 향한 지속 가능한 혁신 성장 생태계를 굳건히 다져가고 있다.

6. '소유·경영 분리' 선진 지배구조, 사회 속 유한양행접기



6.1. 유언장에 담긴 경영 '비상속' 원칙접기



유한양행의 지난 100년 역사를 관통하고 오늘날까지 시장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게 한 가장 강력한 핵심 축은 바로 지배구조의 선진성이다. 창업자 유 박사는 기업을 특정 가문의 사적 소유물이나 부의 세습 수단으로 절대 남기지 않았다. 기업 활동으로 얻은 결실은 정직한 납세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사회 환원으로 이어져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확고한 제도로 정착시켰다.

이 철학은 생전에도 구체적인 제도로 실행됐다. 유한양행은 1936년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기업 역사상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했다. 회사의 성과를 자본가 일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함께 키워온 노동자 및 구성원들과 공정하게 나누겠다는 선구적인 조치였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1969년 제44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출됐다. 유 박사는 사장직을 자신의 혈연이나 가족이 아닌 평사원으로 입사해 능력을 인정받은 내부 승진자 조권순 전무에게 전격적으로 넘겼다. 오너가 스스로 소유와 경영의 완벽한 분리를 선언하면서 대한민국 기업사 최초의 전문경영인 대표 체제를 출범시킨 순간이다.

유 박사의 경영 '비상속' 정신은 사후 공개된 그의 유언장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유한양행 주식 전량을 사회 공익과 교육 사업을 위한 신탁기금(현 유한재단 및 유한학원)에 기증하도록 명시했다.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출처: 유한양행)

당시 장남에게는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앞으로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준엄한 뜻을 남기면서 자녀에게 경영권과 사적 재산을 대물림하는 국내 기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을 완전히 타파했다. 이 위대한 유언은 현재 유한양행이 오너 일가의 독식이나 경영권 분쟁 없이 공익법인이 최대주주로서 기업을 지탱하는 독보적인 지배구조의 뿌리가 됐다.

6.2. 6년 임기 원칙과 고도화된 리더십 순환 체제접기



유한양행의 전문경영인 체제는 창업주의 선의나 경영진 개인의 도덕성에만 기대는 약한 구조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이 스스로 진화해 정교한 승계 시스템과 견제 장치를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문경영인이라 할지라도 특정 인물이 장기 집권하거나 사적 세력을 형성하게 되면 소유·경영 분리의 본질적인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를 선제적으로 방어한 결과다.

유한양행은 1988년 연만희 사장 취임 이후 이러한 원칙을 엄격한 사규와 제도로 정립했다. 대표이사 사장은 기본 임기 3년에 오직 한 차례의 연임만 허용해 어떠한 경우에도 최대 6년을 초과해 재임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6년 임기 제한 원칙'을 확립했다. 이 제도는 특정 경영인에게 권력이 비대하게 집중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고위 임원을 대상으로 한 '직급정년제'도 정착시켰다. 임원이 일정 기간(6년) 내에 다음 단계의 직급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후진을 위해 스스로 직위를 내려놓고 용퇴하도록 한 리더십 순환 제도다. 이를 통해 조직의 관료화를 막고 역량 있는 후배 임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승진과 경영 참여의 기회를 열어줘 조직의 젊음과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유한양행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상에 최고경영자 승계정책을 명확히 명문화해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대표이사의 임기 만료 약 2~4년 전부터 이사회 결의를 통해 부사장을 선임하고 경영 역량을 체계적으로 보강·육성하면서 주주총회 약 6개월 전 최종 후보 1명을 대표이사 후보자로 확정한다.

총괄부사장 등으로 임명함으로써 경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빈틈없이 확보한다. 아울러 대표이사가 아닌 기타비상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아 상호 견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 보상위원회까지 신설해 등기이사 보수 산정 과정의 독립성과 주주 신뢰도를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6.3. 이윤이 인재가 되는 사회 환원 메커니즘접기



유한양행의 한 세기 연혁을 완성하는 마지막 방점은 기업 활동을 통해 창출된 사적 이윤이 최대주주인 공익법인을 교육·장학사업으로 스며드는 사회 환원 순환 메커니즘이다. 유 박사는 "기업은 개인이나 오너 일가의 축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얻은 이익은 국가와 사회를 위한 공공의 재원(공기)으로 되돌려주는 것이 기업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누차 강조했다.

이 확고한 철학을 실천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그는 1970년 전 재산을 출연해 공익법인의 모태인 '재단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을 설립했다. 유 박사 타계 후 그의 유언에 따라 보유 주식 전량이 기증되면서 1977년 현재의 '재단법인 유한재단'으로 전격 개편됐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장학 사업에 착수했다.

유한재단 정관에는 수혜자에게 제공하는 모든 이익은 반드시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무상 원칙'과 함께 장학생을 선발할 때 출생지, 출신학교, 직업, 가문의 사회적 지위 등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는다는 철저한 '무차별 원칙'이 명시돼 있다. 아울러 재단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배당 수익을 출연자나 특정 사적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절대 전용할 수 없도록 완벽한 차단막을 구축했다.

지난 50년간 흔들림 없는 정교한 장학 시스템을 구축해 온 유한재단은 학업 성적은 매우 우수하나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한 대학생들을 발굴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장학 제도를 고수해 오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 수혜자만 1만200여명에 달하고 집행된 총장학금 규모는 390억원을 돌파했다.
유한재단 2026년 장학금 수여식 현장(출처=유한양행)

최근에는 북한 출생 대학생을 위한 특성화 장학금과 더불어 석·박사 과정의 정예 연구 인재를 육성하는 '유일한 장학금' 제도를 신설해 장학 사업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유한재단이 이토록 깊은 역사적 공익법인으로 대를 이어 진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 박사의 외동딸인 고(故) 유재라 여사의 사회 환원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당대의 1회성 환원으로 끝나는 여타 기업가 가문들과 달리 유 여사는 미국 버클리 대학 졸업 후 스스로 자립적인 삶을 개척하면서 아버지가 남긴 유한의 가치를 철저히 수호했다.

그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 재단을 운영했다. 정해진 심사 규정이 종료된 후 찾아온 한 가난한 여대생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재단 공금을 사용하는 대신 자신의 사재를 전액 털어 학비를 지원해 준 일화로 유명하다.

1991년 63세의 나이로 타계하면서 자신이 평생 독립적으로 모아온 주식과 토지 등 200억원대에 달하는 전 재산을 고스란히 유한재단에 추가 기부하라는 위대한 유언을 남겨 사회적 귀감이 됐다. 유한재단은 유재라 여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오늘날 '유재라 봉사상'을 제정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위대한 여성 봉사자들을 매년 발굴해 격려하고 있다.

6.4. 유한학원을 통한 실천적 교육 보국의 실천접기



유한양행 사회공헌 네트워크의 또 다른 강력한 주춧돌은 학교법인 유한학원이다. 유 박사는 한국전쟁 직후 황폐화된 한반도 전역을 재건하고 민족의 자립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실무 능력을 갖춘 정예 기술 인재 양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53년 부천 소사공장 부지 내에 전액 무료 교육을 제공하는 '고려공과기술학교'를 설립한 것이 유한학원의 역사적 시초다.

이후 기술 학교는 대방동 사옥 부지의 고려공과학원을 거쳐 정식 정규 고등학교인 '유한공업고등학교(유한공고)'로 최종 인가 개편됐다. 1977년에는 산업 고도화에 발맞춰 전문 기술인을 양성하는 '유한공업전문학교'를 설립해 오늘날의 '유한대학교'로 진화를 거듭했다.

유한공고와 유한대학교를 전 방위로 운영하는 유한학원의 핵심 교육 철학은 유 박사가 강조했던 "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건강한 민족 기업" 가치의 교육 현장 실천이다. 학생 개개인에게 단순한 산업적 기능 전수를 넘어 올바른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겸비한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유한양행이 시장에서 고수익을 창출해 주주 배당을 실시하면 그 배당금의 가장 거대한 몫이 최대주주인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의 금고로 유입돼 장학 사업과 교육 인프라 개선 재원으로 고스란히 집행된다. 그리고 이 교육의 그늘 아래서 자라난 인재들이 다시 대한민국 산업계와 사회 각계각층으로 진출해 유한의 정직과 신뢰 가치를 사방으로 확산시킨다.

이 선순환 메커니즘이야말로 창업주 개인의 일시적인 선행이나 일가족의 결단에 기대는 방식을 넘어 조직이 따라야 할 영속적인 승계 질서와 결합해 유한양행을 지탱해 온 핵심 원동력이다. 유한양행이 지난 100년간 국민들에게 가장 높은 신뢰를 받는 독보적인 존경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시스템의 힘에 있다.
  • [1] 라초이 미국 사업 정리 자금 25만달러는 유한양행의 창립자금이 됐다.
  • [2] 당시 한국 제약업계에서 흔하지 않은 투자 행보로 분광광도계와 극성측정기, 자동제제시험기 등 당대 최첨단 실험기기들을 연이어 도입했다.
  • [3] KGLP는 의약품과 화장품, 화학물질 등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실시하는 비임상시험의 신뢰성을 확보하고자 규정한 국가 표준 규격이다.
  • [4] 비소세포폐암(Non-Small Cell Lung Cancer, NSCLC)은 전체 폐암 환자의 약 80~85%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의 폐암이다.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암세포의 크기가 작은 소세포폐암과의 구분을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진행 및 전이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 조기에 발견할 경우 수술을 통한 치료 가능성이 높다.
  • [5] 레이저티닙은 렉라자의 성분코드명이다. 제품명과 달리 약물의 화학적 주성분 물질 자체를 의미한다.
  • [6] EGFR TKI는 암세포의 성장 및 증식 신호를 전달하는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의 세포 내 티로신 키나아제 활성 부위를 표적으로 차단하는 표적항암제다. 티로신 키나아제는 세포 안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효소다.
  • [7] 마일스톤(Milestone)은 기술수출 계약 이행 과정 중 특정 성과나 단계에 도달했을 때 원권리자(라이선서)가 받는 단계별 기술료를 의미한다. 임상 진행과 승인, 매출 달성 등 특정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을 때 받는 조건부 기술료다.
  • [8] 국내 기업 디앤디파마텍으로부터 GLP-1/GIP 이중 작용제 등 비만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도입해 설립한 미국 멧세라가 대표적인 뉴코 모델 사례다. 멧세라는 글로벌 빅파마인 화이자(Pfizer)에 인수되면서 약 3년만에 투자자 엑시트를 완료했다.
  • [9] 2026년 3월 말 기준 현재까지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15.93%의 유한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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