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의 3조원 규모 유상증자는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대금 마련 이상의 자본조달 전략으로 읽힌다. 2조원 넘는 현금성 자산과 차입 여력을 갖추고도 자기자본 조달을 택한 것은 M&A와 생산시설 증설이 동시에 이어지는 시기에 재무적 여유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판단이다.
당초 보유자금과 차입을 병행하려던 계획도 한 달 만에 바뀌었다. 수조원대 인수금융으로 부채와 이자비용을 늘리기보다 증자로 자본을 보강하고 향후 시설투자와 추가 성장기회에 활용할 수 있는 현금과 차입 카드를 남기는 쪽을 택했다.
◇한달 만에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 '보유자금·차입→유증' 선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7월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 계획을 발표하면서 자금조달방법으로 '보유자금 및 차입금'을 제시했다. 공개매수대금 일부를 차입금으로 조달할 예정이지만 다른 방식도 검토할 수 있고 구체적인 조달 방안이 확정되면 관련 내용을 다시 공시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실제 한 달여 만에 조달 방식이 바뀌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8일 자금조달방법을 기존 '보유자금 및 차입금'에서 '유상증자 등을 통한 조달 자금'으로 변경했다. 공개매수대금 일부를 차입금으로 마련한다는 내용도 빠졌다.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당초 차입을 활용할 여력은 충분한 편이었다. 3월 말 별도 기준 현금성 자산은 1조5648억원이었고 금융기관 차입금은 없었다.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 유입까지 감안하면 보유자금을 일부 투입하고 나머지를 회사채나 금융기관 차입으로 마련하는 방식도 가능했다.
2분기 들어 현금 여력은 더 커졌다. 6월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약 2조2000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본업에서 안정적인 현금이 유입되고 있는 만큼 당장의 유동성 부족이 증자의 배경은 아니었다.
변수는 인수 이후다. 보유 현금을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에 대거 투입하고 부족분까지 차입으로 채우면 뒤이어 필요한 시설투자와 운전자본에 쓸 여력이 줄어든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당장의 인수비용보다 이후까지 이어지는 자금 수요를 함께 놓고 조달 방식을 결정했다.
◇차입카드 아끼고 2029년까지 '투자 체력' 확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와 제2바이오캠퍼스 투자를 넘어 2029년까지 대규모 시설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생산능력 확대에 필요한 자본적지출이 지속되는 만큼 이번 M&A 이후에도 상당한 자금 수요가 남아 있는 구조다.
예정된 투자지출은 현재 보유 현금과 향후 영업활동을 통해 유입될 현금만으로 충당하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판단이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최소 운전자본도 유지해야 한다. 보유 현금을 최대한 동원하는 것보다 외부자본을 미리 확충해 투자 재원을 분산할 필요성이 커졌다.
차입비용 역시 조달 방식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기준금리가 3%까지 오른 상황에서 수조원대 자금을 차입하면 부채 증가와 함께 이자비용 부담도 커진다. 인수 직후 대규모 시설투자가 예정된 상황에서 차입 부담을 선제적으로 높이기보다 재무적 여유를 확보하는 쪽에 무게를 뒀다.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결과적으로 이번 증자는 현재의 차입능력을 향후 투자에 활용할 수 있도록 남겨두는 효과가 있다. 자기자본을 먼저 확충해 재무구조를 받쳐 놓으면 이후 시설투자나 추가 M&A 등 자금 수요가 발생할 때 차입을 포함한 선택지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대형 성장투자를 앞두고 자기자본을 먼저 보강하는 방식은 앞서 활용한 전례도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2년에도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와 4공장 건설, 제2바이오캠퍼스 부지 확보 등을 위해 3조원대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M&A와 대규모 시설투자가 맞물리는 시점에 증자로 투자 체력을 확보하는 자금조달 전략이 4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견조한 영업실적과 현금창출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향후 예정된 투자 규모와 시기를 고려하면 중장기 성장투자를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적시에 외부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2029년까지 대규모 시설투자가 예정돼 있고 회사 운영에 필요한 최소 운전자본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재무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대규모 차입에 따른 현금흐름과 손익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상증자를 통한 안정적인 재원 조달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