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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전선기업 대한전선의 85년

안상민 기자  2026-10-01 11:22:34

편집자주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대한전선의 성장기

2.1. 전후 복구 사업으로 재계서열 10위권 등극

2.2. 2세 경영 시대의 개막과 전선 전문기업으로 전환

3. 투자 확장 시기와 겹친 금융위기, 예고된 침체기

3.1. 전선 회사가 리조트 인수, 신사업 찾기 매진

4. 창업주 일가의 경영 포기, 새 주인은 사모펀드

5. 세 번째 주인 호반, 재도약을 이끌다

5.1. 해저케이블 투자 시작, 글로벌 톱티어 도전

5.2. 독보적 선두주자였던 국내 케이블 시장서 이제는 추격자 역할

5.3. 안심할 수 없는 정책과 기술유출 의혹 리스크

5.4. 데이터센터와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 전력 인프라 슈퍼사이클 진입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10월 1일

1. 개요접기



전후 복구 사업이 한창이었던 1955년 국내에선 전력망과 통신망 수요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한국 최초 전선회사인 대한전선이다.

대한전선의 역사는 1941년 일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도 시흥군 동면 독산리에 조선전선이 들어섰다. 현재의 서울 금천구 독산동 일대다. 인송 설경동 회장은 1955년 조선전선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대한전선을 만들었다.

설경동 회장이 처음부터 전력 기기 사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평안북도 철산 출신의 그는 열다섯살 때 곡물 도매 사업을 시작했고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수산업을 했다. 특히 청진에선 정어리를 잡아 가공하는 사업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어선 70여 척을 보유할 정도로 사업이 성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사업수완이 상당했다.

해방 후에는 맨손으로 월남해 무역과 부동산, 성냥 제조 사업에도 차례대로 뛰어들었다. 무역업과 부동산업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고 성냥 제조업의 경우 6·25 전쟁 직전까지 국내 성냥업계를 석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사업 기반을 잃게 된다. 설 회장이 재기에 나선 것은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 대한방직을 세우면서였다. 그리고 1955년 조선전선의 시설을 불하받아 지금의 대한전선을 출범시켰다.

이 문서는 1941년부터 2026년까지 대한전선의 성장 히스토리와 여러차례 이어진 지배구조 변화를 추적한다.
조선전선 전경. 사진=대한전선

2. 대한전선의 성장기접기


2.1. 전후 복구 사업으로 재계서열 10위권 등극접기



6.25 전쟁 이후 국내에서는 전후 복구 사업으로 공장과 가정에 전기를 보낼 전력망의 수요가 급증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통신망의 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대한전선은 1957년 PVC 피복전선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기술은 점차 발전해 1964년에는 국내 최초로 전선을 수출하기도 한다. 이같은 성장세에 힘입어 1968년에는 증권거래소에도 상장했다.

초기 대한전선은 지금처럼 케이블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설경동 회장은 대한방직과 제당회사도 운영했다. 또 대한전선 안에서는 냉장고, 라디오, 에어컨, TV 등 가전도 만드는 사업부도 있었다. 1960년대에는 전선회사 이름을 달고 가전제품을 파는 기업이었다. 당시 대한그룹은 재계서열 10위권 안쪽에 머물렀다. 한때는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지금 대한전선의 주인인 호반그룹이 재계 서열 30위 초중반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과는 상당한 위상 차이가 있었다.

2.2. 2세 경영 시대의 개막과 전선 전문기업으로 전환접기



설경동 회장은 1960년대부터 경영 승계를 준비했다. 1960년대 장남 설원식이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가지고 독립했고 1972년에는 셋째 아들 설원량이 서른 살의 나이로 대한전선 사장에 취임했다.

대한전선의 2세 경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1974년 설경동 초대 회장이 별세한 뒤 설원량 체제가 본격화됐고 설원량은 1978년 대한전선 그룹 회장에 오르게 된다.

다만 대한전선의 가전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한전선은 삼성, 금성(현재 LG)과의 과열된 경쟁을 비롯해 그룹 내부의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83년 가전 사업 대부분을 대우 측에 넘기게 된다. 당시 가전 사업을 키우던 대우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이는 대한전선이 남은 주력 사업인 전력과 통신용 케이블에 집중하는 계기가 된다.

전선 사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대한전선은 1975년 안양 전선공장, 1978년 초고압 OF 케이블 공장, 1983년 기술연구소, 1984년 광통신케이블 공장을 잇따라 세웠다. 발전소가 커지고 송전거리가 길어지자 더 높은 전압을 다룰 제품이 필요했고 통신망이 넓어지자 광케이블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최초로 생산된 154kV OF 케이블. 사진=대한전선

창업주 설경동 회장이 사업의 판을 만들었다면 설원량 회장 시기는 전선회사의 기술과 생산설비를 키운 시간이었다.

1996년 초고압 케이블 공장도 건설하고 해외에도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현지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웠고 2005년에는 베트남 생산법인을 신설했다.

여기서 대한전선 사업의 무게중심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국내에 필요한 제품을 국산화했다면 나중에는 해외 전력회사가 발주한 초고압 프로젝트로 눈을 돌렸다. 제품을 납품하는 것에 더해 접속재를 만들고 케이블을 설치하는 능력도 중요해졌다.

숫자 하나가 당시 회사의 위상을 보여준다. 대한전선은 1955년부터 2008년까지 54년 연속 흑자를 냈다.

그런데 흑자 기록이 끝나기 직전 회사의 돈은 전선 사업 밖으로 대거 향했다.

3. 투자 확장 시기와 겹친 금융위기, 예고된 침체기접기


3.1. 전선 회사가 리조트 인수, 신사업 찾기 매진접기



2002년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를 인수했다. 전선과 스키장이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당시 대한전선은 전선을 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신사업을 찾고 있었다.

2003년에는 진로 정리채권, 2004년에는 쌍방울, 2007년에는 명지건설과 대경기계기술, 2008년에는 남광토건까지 손을 뻗었다. 온세텔레콤과 한국렌탈, 국내외 호텔과 골프장도 투자 목록에 올랐다.

이 시기 변곡점은 2004년이다. 설원량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임종욱 사장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았다. 인수합병은 설원량 생전인 2002년 무주리조트부터 시작됐지만 전문경영인 체계가 되며 더욱 공격적인 투자가 시작됐다. 건설·플랜트와 해외 전선업체 지분까지 투자의 규모와 범위가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지분 9.9%를 약 5200억원에 취득한 것도 이 무렵이다. 프리즈미안은 세계적인 전선업체로 현재는 세계 1위 당시에는 세계 2위로 분류된 기업이다. 당시 업계에선 대한전선이 프리즈미안을 인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곤 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대한전선도 위기를 맞게 된다. 건설과 부동산 시장이 식고 자금시장은 얼어붙었다. 사들인 자산을 원하는 가격에 곧바로 팔기도 어려웠다.

대한전선의 위기는 본업에 대한 기술 투자를 게을리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본업 밖으로 넓힌 자산과 이를 뒷받침한 차입금이 회사 전체를 압박한 결과였다.

4. 창업주 일가의 경영 포기, 새 주인은 사모펀드접기



대한전선은 그동안 사 모은 자산을 팔기 시작했다. 프리즈미안 지분을 2010년 매각하고 한국렌탈 등도 정리했다. 그 와중에 안양의 주요 생산설비를 충남 당진으로 옮겨 2011년 케이블 공장을 준공했다. 한쪽에서는 투자자산을 팔고, 다른 쪽에서는 본업을 유지하기 위해 공장을 옮겼다.

자산을 판다고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진 않았다. 2012년 대한전선은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은행들과 돈을 갚는 일정과 재무개선 방안을 협의해야 할 정도로 재무 상황이 나빠진 것이다.

그리고 2013년 10월, 상징적인 일이 벌어진다. 창업주의 손자 설윤석 사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사장과 등기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설 사장이 자신의 경영권 유지가 기업 정상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할아버지가 출범시킨 회사, 아버지가 키운 회사를 손자는 포기하게 된 것이다.

이후 곧장 사모펀드에 팔린 것은 아니었다. 채권단 관리와 재무구조 개선이 이뤄졌다.

그리고 2015년 사모펀드 IMM 프라이빗에쿼티(IMM PE)가 특수목적회사 니케를 통해 3000억원 규모 대한전선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사모펀드가 최대주주가 된 순간이다.

최대주주 IMM PE의 숙제는 명확했다. 과거에 사들인 투자자산 가운데 전선사업과 거리가 먼 자산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대한전선은 2015년 말 남부터미널 부지를 약 1755억원에, 2016년 독산동 부지를 510억원에 매각했다. 대경기계기술과 콩고 통신사였던 스탠다드텔레콤콩고(STC) 지분도 매각하고 골프장도 차례로 정리했다. 2015년 말 16개였던 종속회사가 2018년 말 8개로 줄어들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자산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각 사업에 얽힌 보증이나 장래의 지급 의무도 줄여야 했다. IMM 시기에 회사의 외형이 작아진 것은 규모 축소라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거 투자에 딸려 있던 위험을 떼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반대로 통신케이블 계열사 티이씨앤코는 2016년 대한전선에 흡수합병됐다.
대한전선 안양공장 통신케이블 생산라인. 사진=대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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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바로 안정적으로 순이익을 낸 건 아니었다. 2016년에는 흑자를 냈지만 이후 손실을 기록한 해도 있었다. 그러다 2020년 연결 매출은 1조5968억원, 영업이익은 566억원을 기록했고 순이익도 흑자로 돌아섰다.

기업을 다시 팔 수 있는 상태로 만든 IMM PE는 이번엔 엑시트 전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5. 세 번째 주인 호반, 재도약을 이끌다접기


5.1. 해저케이블 투자 시작, 글로벌 톱티어 도전접기



2021년 호반산업은 IMM PE가 보유한 대한전선 지분 약 40%를 2518억원에 인수했다. 호반산업이 당시 공시한 인수 목적은 ‘사업 다각화’였다. 아파트와 택지개발을 중심으로 성장한 호반그룹이 대형 제조업체를 품으며 비건설 분야로 보폭을 넓힌 거래였다.

호반그룹은 주택사업 의존도가 높아 부동산 경기에 실적이 좌우된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반면 대한전선이 영위하는 전선·전력 인프라 사업은 각국의 송배전망 투자와 도시개발,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장기적인 수요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였다. 건설 중심의 사업구조를 보완하려는 호반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자산이었던 셈이다.

대한전선은 호반그룹이 꿈꾸던 에너지 인프라 시장으로 진입할 교두보 역할도 할 수 있었다. 현대건설과 SK에코플랜트,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은 주택사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발전과 재생에너지, 환경 등 비건설 사업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에너지 분야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호반으로서는 대한전선 인수를 통해 전력망과 해상풍력 공급망에 한꺼번에 진입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2021년 호반산업의 대한전선 인수합병식. 사진=대한전선

호반산업은 본격적인 투자에 앞서 대한전선이 가진 차입금 부담부터 덜어냈다. 2022년 3월 대한전선은 유상증자로 4889억원을 조달했다. 회사 발표에 따르면 연결 순차입금은 2021년 말 4567억원에서 2022년 3월 말 279억원으로 줄고, 부채비율은 266%에서 100%로 낮아졌다. 새 공장에 투자하기 전에 재무구조를 먼저 손본 것이다.

그리고 해저케이블 공장 투자를 시작했다. 해저케이블은 육상케이블 대비 기술 진입 장벽이 높고 부가가치가 높아 톱티어 전선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선 반드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

대한전선은 2022년 12월 당진 해저케이블 1공장을 착공했다. 당진 1공장은 해상풍력 발전기끼리 잇는 내부망 해저케이블과 해상풍력 발전단지의 전기를 육지로 내보내는 외부망 해저케이블을 만드는 공장이다. 2024년 내부망 생산설비를 먼저 가동한 데 이어 2025년 6월 외부망 설비까지 갖추며 종합준공에 성공했다.

그런데 공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해저케이블 발주사들은 제조사가 포설까지 턴키로 수행하길 바랐다. 제조사와 설치사가 다르면 분리발주의 어려움도 생기고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발주사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대한전선은 2023년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 팔로스호를 확보하고 2025년 해저케이블 시공 전문회사 오션씨엔아이를 인수했다. 이후 사명을 대한오션웍스로 고치면서 본격적으로 포설 역량을 내재화했다. 이뿐 아니라 올해 1만1000톤급 케이블 포설선인 스칸디 커넥터호도 인도받았다. 제조뿐 아니라 설치에서도 경쟁사들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호반산업은 대한전선을 통해 풍력사업 진출에도 성공했다. 전남 영광에서 추진 중인 국내 최대 프로젝트 영광낙월해상풍력 사업에서 2023년 EPC 공사를 수주해 시공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전선은 이 사업에서 해저케이블 공급과 시공을 맡았고 호반산업은 계통연계 공사를 수행하는 구조다.

5.2. 독보적 선두주자였던 국내 케이블 시장서 이제는 추격자 역할접기



사실 호반산업과 대한전선이 해저케이블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압 해저케이블 제조를 위해선 VCV라는 해저케이블 제조 타워가 필요한데 여기에 투자되는 돈이 만만치 않다. 또 산업의 추세가 제조뿐 아니라 설치역량도 요구하다 보니, 선박 구입, 인력확보에도 전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진2공장 착공식. 사진=대한전선

무엇보다 대한전선이 주춤한 사이 후발주자였던 경쟁사 LS전선이 어느새 글로벌 톱티어 전선회사로 성장해 있었다. LS전선은 2004년부터 해저케이블 기술을 개발해 2007년 250kV급 제품 개발에 성공했고 2009년 강원도 동해에 국내 최초의 해저케이블 양산공장을 준공했다. 제주와 진도를 잇는 105㎞ 구간에 250kV급 케이블을 공급하는 걸출한 실적도 가지고 있었다. 통신사 KT에서 인수한 전문 해저케이블 포설 업체 LS마린솔루션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반면 대한전선이 당진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을 준공한 것은 2024년이다. 양산 시점만 단순 비교하면 LS전선보다 15년이 늦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전선은 포기보다 과감하게 추격을 선택했고 해저케이블 투자는 꽤 성과를 내고 있다. 영광낙월 해상풍력에 그룹사 호반산업과 함께 참여했고 올해는 전남 신안 태양광 사업에서 154kV 초고압 해저케이블을 수주하면서 처음으로 154kV 해저케이블 실적도 확보했다.

투자는 현재 진행형이다. 2024년 유상증자로 4625억원을 조달했고 2025년 7월, 당진 해저케이블 2공장에 4972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계획대로라면 640kV급 HVDC와 400kV급 초고압교류송전 해저케이블을 생산할 예정이다. 1공장에서 해상풍력 해저케이블을 생산하고 2공장에서는 더 높은 전압의 장거리 송전 시장을 노리는 구도다.

실적도 달라졌다. 호반 편입 첫해인 2021년 연결 매출은 1조9977억원, 영업이익은 395억원이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2조2820억원, 영업이익은 1213억원을 기록했다. 상반기 말 수주잔고도 4조629억원으로 중장기 일감도 넉넉해졌다.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재도약을 준비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5.3. 안심할 수 없는 정책과 기술유출 의혹 리스크접기



다만 지금의 숫자를 바로 ‘재도약의 성공’이라고 읽으면 이른감이 있다. 대한전선은 올해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당진 2공장 건설에 4500억원, 두 번째 포설선 인수에 1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받았다.

앞서 두 차례 유상증자로 주주로부터 자본을 모았고 이번에는 금융을 활용해 공장과 선박에 투자하는 것이다. 조달한 돈을 프로젝트 이익과 현금으로 돌려받아야 이 투자가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쟁사 LS전선이 제기한 기술유출 의혹이 변수로 남아 있다. 2024년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수면 위에 오른 해저케이블 기술유출 의혹은 2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대한전선이 당진 해저케이블 공장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LS전선 동해공장의 설비 도면과 배치 정보 등 영업비밀을 활용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관계자와 대한전선을 검찰에 송치했다.

대한전선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2009년부터 해저케이블 연구를 시작했고 2016년 당진공장에 관련 생산설비를 구축한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공장을 설계했다는 입장이다. 공장의 설비 배치 역시 해저케이블의 핵심 기술로 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검찰의 기소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만큼 잘잘못을 따지기엔 아직 이르다. 다만 수사가 장기화하거나 재판으로 이어질 경우 평판 훼손은 물론 해저케이블 사업 확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대규모 투자를 회수해야 하는 대한전선으로서는 수주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기술의 독자성을 둘러싼 시장의 의구심도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안은 셈이다.

또 해저케이블 시장이 생각보다 빨리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우려 요소다. 해저케이블의 국내 주요 발주사인 해상풍력 사업자들은 현재 침체기를 겪고 있다. 한전과 SK 이노베이션 E&S 등 국내 사업자들과 오스테드, CIP, RWE, 퍼시피코에너지 등 걸출한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산업의 성장은 더딘 편이다.*[SK이노베이션 E&S는 2026년 덴마크 기업 CIP와 100MW 규모 전남해상풍력1을 준공했다.]

정부가 올해 해상풍력특별법을 시행한 데다 2035년까지 55GW의 해상풍력 입찰을 실시하겠다고 밝히는 등 산업 확대의 시그널을 주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기엔 시차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의 거창한 목표와 달리 현재 국내에서 상업운전 중인 해상풍력 용량은 300MW 수준에 불과하다. 해상풍력 보급이 지연될수록 대한전선의 해저케이블 투자 회수도 함께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5.4. 데이터센터와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 전력 인프라 슈퍼사이클 진입접기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호재도 있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 등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전력 인프라 산업은 이른바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산업시설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발전소에서 데이터센터까지 전기를 끌어올 송전망과 변전소, 초고압 케이블도 함께 확충해야 한다.

대한전선은 올해 호주에서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330kV급 전력망 구축사업을 수주하는 등 데이터센터발 수요를 실제 수주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수요에 노후 전력망 교체까지 겹쳤다. 오래된 송배전 설비를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전력 소비까지 빠르게 늘자 초고압 케이블 발주가 증가했다. 반면 현지 업체의 공급능력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미국 시장에서 장기간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대한전선과 LS전선 같은 국내 업체로 수주 기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유럽의 상황도 비슷하다. 해상풍력과 국가 간 전력망 연결 사업이 확대되는 가운데 수십 년 된 전력망까지 교체해야 했다. 이탈리아 프리즈미안과 프랑스 넥상스, 덴마크 NKT 등 유럽 주요 전선업체에 주문이 집중되면서 초고압·해저케이블의 공급 부족과 납기 장기화가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HVDC 해저케이블을 공급받으려면 최대 7년가량 기다려야 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발주처로서는 공급사를 다변화할 필요가 커졌다. 이 과정에서 초고압 케이블 생산 기술과 해외 턴키 수행 경험을 보유하면서 유럽 업체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있는 한국 전선업체들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대한전선도 스웨덴에서 1100억원 규모의 초고압 전력망 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2026년에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약 650억원 규모의 132kV급 전력망 사업을 따냈다. 유럽 전선업체의 공급 공백을 파고들어 현지 실적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대한전선이 54년 연속 흑자를 냈던 시절에는 다가오는 위기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창업주가 떠나고 사모펀드가 경영을 맡던 시기에는 오늘같은 재도약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의 호황이나 투자 규모가 아니라, 본업에 집중한 투자가 지속 가능한 이익으로 돌아오는가이다. 그것이 대한전선과 호반산업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다.
  • [1] 설원량 회장은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승계했으나 추후 대한제당은 설경동 회장의 4남이자 설원량 회장의 동생인 설원봉이 경영을 맡게 된다.
  • [2] 설원량 회장은 1964년 입사해 1972년 사장에 취임한다. 1974년 설경동 초대 회장이 별세 하고 4년 후인 1978년 회장에 취임한다.
  • [3] OF는 기름으로 절연해 높은 전압을 견디게 한 케이블이다.
  • [4] 현재 글로벌 톱티어 전선사로는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프랑스 넥상스, 덴마크 NKT, 한국 LS전선을 비롯해 일부 중국 업체들이 거론된다.
  • [5] 영광낙월프로젝트는 364MW 규모다. 현재 상업운전 중인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 중 가장 큰 사업은 100MW다
  • [6] VCV는 Vertical Continuous Vulcanization의 약자로 해저케이블의 균일한 절연품질을 위해 필요한 수직 생산타워다.
  • [7] LS전선은 2023년 KT서브마린을 인수해 LS마린솔루션으로 사명을 바꿨다.
  • [8] 154kV 초고압 케이블은 해상풍력 외부망에서 사용 가능하다. 154kV 해저케이블 공급 실적은 대한전선이 내부망뿐 아니라 외부망까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9] 가운건축은 2008~2023년 LS전선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 1~4동의 설계를 맡았고 이후 대한전선 당진 1공장 설계에도 참여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비밀유지약정을 위반해 LS전선 영업기밀이 대한전선에 제공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 [10] 대한전선은 2025년 안마해상풍력에서 1816억원 규모 내부망 공급 및 설치 계약을 수주했으나 이 사업이 사실상 중단되며 계약이 불투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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