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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대그룹의 역사

허인혜 기자  2026-01-20 15:28:33

편집자주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1.1. 정주영 헤리티지

1.2. 직계와 방계: 범현대가의 계보

1.3. 왕자의 난

2. 직계

2.1. HD현대그룹: 전문 경영인 안착, 안정적 홀로서기

2.2. 현대백화점그룹: 유통명가로의 분가

2.3. 현대해상: 금융계열 독립과 조용한 성장

2.4. 현대그룹: 남은 자의 고난과 극복, 현대가와의 애증

2.5. 혈맥과 현대그룹의 경영권 다툼

3. 방계

3.1. 독립

     3.1.1. HDC그룹:포니 정과 정몽구의 다툼 끝 독립

3.2. 독자 창업

     3.2.1. HL그룹: 다툼 속 움튼 씨앗, 추락과 재기의 드라마

     3.2.2. KCC: '왕 회장' 막내의 독립

4. 창업자와 2세대: 주요 가계도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1월 21일

1.1. 정주영 헤리티지접기


현대그룹의 옛 계동 본사 사옥. 한때 재계 1위 그룹의 상징이었으나, 2000년대 초 '왕자의 난' 이후 현대가 기업들은 이 건물을 떠나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현대건설

범현대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주영'이다. 범현대그룹의 정주영 창업주는 1947년 현대건설로 시작해 1990년대까지 유지된 현대왕국을 건설한 입지전적 기업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2000년대 초반 왕자의 난을 거치며 현대그룹은 거대한 제국에서 여러 갈래의 범현대그룹으로 쪼개진다. 2000년 전후 대한민국 재벌사에 큰 획을 그은 현대가의 분할 역사는 경영권 다툼, 외환위기, 정부와 채권단의 개입, 형제간의 애증이 복잡하게 얽힌 한편의 드라마다.

그러나 범현대그룹은 여전히 그룹간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한 지붕 아래 모여있지는 않지만 여러 갈래로 펼쳐진 현대가의 일원들은 창업주의 발자취를 각자 이어 받았다.
정주영 창업주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현대가 1세대 경영인들이 대부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 이제 범현대기업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2~3세 경영진들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몽규 HDC 회장, 정몽원 HL 회장, 정몽진 KCC 회장 등이 이름은 달라도 성씨로 이어져 있다.

해당 문서에서는 정주영 창업주를 중심으로 직계와 방계 등으로 이어진 범현대그룹의 분리와 탄생 비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독자 창업이더라도 정주영 창업주의 형제나 후손 등이 세운 기업은 포함한다. 혈맥이 아니더라도 혼맥 관계 기업도 일부 언급하고 서사 속에 녹였다.

1.2. 직계와 방계: 범현대가의 계보접기



2026년 1월 현재 현대그룹에서 출발한 범현대가 그룹은 열손가락을 넘긴다.

범현대그룹의 직계 라인으로는 현대자동차그룹, HD현대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그룹, 현대해상, 현대엠파트너스, 현대비앤지스틸 등이 꼽힌다.

직계 부문에서는 HD현대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 현대해상, 현대그룹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범현대가의 종가로 봤다. 때문에 별도의 아카이브로 심층 분석해 이 문서에서는 제외했다.

방계 라인으로는 HL그룹, HDC그룹, KCC그룹, 현대코퍼레이션, 현대종합금속, 현대성우그룹, 서한그룹과 후성그룹 등이 거론된다. 방계 부문에서는 HL그룹과 HDC그룹, KCC 등의 서사를 풀어낸다.

3대에 걸친 만큼 혼맥 등으로 이어진 인척 기업, 또 초기 창업 과정에서 얽힌 특수 관계 기업도 여럿이다. 이밖에 다수의 기업이 세워졌으나, 현재까지 명맥을 잇지 못한 곳도 있다.

1.3. 왕자의 난접기



1997년 말 닥친 외환위기의 외풍 속 흔들리지 않았던 기업이 있을까. 성공가도를 달리던 현대그룹도 마찬가지였다. '해봤어?' 정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물리적 어려움이 현대그룹을 덮친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범현대그룹의 중심축은 자동차와 건설 등 제조와 중후장대 사업이었다. 고금리와 불황이 닥치면 가장 견디기 힘든 산업군이다.
그래픽=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

정치에도 손을 뻗었던 터라 정무 상황에도 기업의 명운이 좌우됐다. 1999년 정부 주도의 기업빅딜에서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주고, 한화의 정유부문을 현대정유에 넘기는 등 현대에 유리한 조정이 있었던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나왔다.

안갯속에서 이른바 왕자의 난이 일어난다. 2000년 창업주의 두 아들 간에 후계다툼이 터졌다. 당시 그룹의 공동 회장이던 차남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몽헌 고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두고 충돌한 사건이다. 정주영 창업주가 5남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정하려했고 정몽구 명예회장이 이에 반발하면서 갈등이 수면으로 올라왔다.

같은 해 3월 정몽헌 회장이 단독회장이 됐지만 5월 다시 다툼이 벌어지며 결국 현대왕국은 자동차 부문과 건설, 상선, 중공업 부문으로 각각 쪼개지게 된다.

시장의 신뢰가 하락하면서 각 계열사의 주가도 폭락했고 결국 정부의 개입 아래 현대그룹의 지배구조는 또 한 번 바뀐다. 현대건설도 그룹에서 떨어져나가며 현대그룹에는 사실상 정주영 창업주의 '정신'만이 남는다.

2.1. HD현대그룹: 전문 경영인 안착, 안정적 홀로서기접기



1973년 설립된 현대조선중공업과 1975년 세워진 현대미포조선이 근간이다. 2002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5개 계열사의 현대그룹 분리를 승인한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금융 자회사들이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출범한다.

왕자의 난 이후 그룹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정몽준 HD현대 총수이자 아산재단 이사장(사진)이 조선 부문을 맡는다. 요약하면 HD현대는 정주영 창업주의 6남인 정몽준 이사장의 계보 아래 독립해 성장했다.

정몽준 이사장은 현대그룹이 쪼개지기 전부터 조선업 부문에 천착해 왔다. 1987년 30대 시절부터 회장을 맡아 조선업을 이끌었다. 다만 그의 업력은 정치인으로서 더 촘촘하게 채워져 있다.

회장이 정치에 몰두하면서 역설적으로 HD현대그룹은 '전문 경영인과 오너의 협력'이라는 문화가 뿌리내린다. 정몽준 이사장의 측근인 이재성 전 현대중공업 회장이 진두지휘한 현대중공업그룹은 과거나 지금이나 현대차그룹과 함께 선두그룹으로 활약하고 있다.

분리 후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그룹의 뿌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현대그룹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대표적인 행보가 중공업계 최초의 '디자인 경영' 선언이다. 현대그룹 계열사들과 차별화되는 CI를 내놓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흐름은 최근에도 이어져 그룹의 간판을 HD현대로 교체한다.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주도한 인물이 3세 정기선 회장이다.



이재성 전 회장과 같은 전문 경영인의 계보는 최길선 전 회장, 권오갑 회장과 정기선 회장의 멘토인 가삼현 부회장 등으로 이어진다. 2000년대부터 숙제로 꼽혀온 지주체제 전환은 2018년 이룬다. 이같은 흐름은 2025년 회장에 취임한 정기선 회장 체제가 안정적으로 안착하는 데에 큰 몫을 했다.







2.2. 현대백화점그룹: 유통명가로의 분가접기



현대백화점그룹은 정주영 창업주의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사진)이 일군 유통계열 그룹이다. 1999년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룹에서 공식적으로 떨어져나와 현대백화점그룹을 출범시킨다.

1970년대~1980년대부터 금강개발산업을 통해 유통과 레저 사업을 개척해온 정몽근 명예회장이 자연스럽게 이 분야를 맡게 됐다. 현대그룹의 분할 당시 백화점 사업은 중공업 분야 대비 그룹의 비주류로 여겨졌다. 정몽근 명예회장 자신도 왕자의 난 등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지 않으며 비교적 평화로운 계열분리를 이뤘다.

1980년대까지 건설업과 유통업 등을 병행하다 1985년 압구정 본점 개점을 계기로 백화점 중심으로 전환했다. 한섬과 리바트 등 패션과 가구 계열사를 인수하고 하늘채 등 건설의 분사를 통해 지금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 202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현대지에프홀딩스 중심의 지배구조를 형성한다.

현대가 2세 중에서는 상당히 빠른 시기에 3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준다. 장남 정지선 회장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정몽근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받아 최대주주가 됐다.

정지선 회장은 35세의 젊은 나이에 그룹의 최상단에 올라선다. 동생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도 그룹의 한 축을 맡고 있다. 2024년 현대홈쇼핑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현대백화점그룹은 형제경영 체계를 단단하게 구축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개점 전야제에서 기념사를 전하는 정주영 창업주. 사진=현대백화점그룹 50년 사사

2.3. 현대해상: 금융계열 독립과 조용한 성장접기



현대해상화재보험은 왕자의 난이나 경영권 분쟁과는 별도로 금융업이라는 특성이 반영돼 분리됐다. 1955년 설립된 해상보험 전문 동방해상보험이 전신이다. 1985년 동방해상보험이 현대그룹에 편입되며 현대그룹 금융계열사가 됐다. 1999년 1월 그룹에서 떨어져나온다.

정주영 창업주의 7남인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사진)이 수장이다. 정몽윤 회장은 1982년 현대종합상사 부장을 거쳐 1985년 현대해상화재보험 부사장, 1988년 현대해상 대표이사 사장, 1998년 현대해상 고문, 2001년 현대해상 회장에 오른다. 2004년부터는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2025년 9월 분기보고서를 기준으로 여전히 현직 의장이다.

분리 당시만 해도 계열사가 현대해상 한 곳인 작은 그룹이었다. 형제들이 중후장대 기업을 운영하는 만큼 관련 보험으로 사업을 영위해온 만큼 초기에는 계열분리로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후 현대해상은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과 함께 손해보험업계 빅4로 성장했다. 현대해상을 포함해 공시기준 15개 이상의 계열사를 갖춘 그룹으로 확장됐다.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현대하이카손해사정 등이다.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내홍없이 안정적으로 원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곳으로 평가 받는다. 후계자로는 정몽윤 회장의 장남인 정경선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 부사장이 꼽힌다.

2.4. 현대그룹: 남은 자의 고난과 극복, 현대가와의 애증접기



범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그룹의 이름을 그대로 계승한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 이후 정몽헌 회장 부부가 이끈 그룹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룹의 중심축으로 남았다. 비극적 사고 후에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사진)이 전격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해 현대그룹의 회장에 오른다.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과 외환위기 속 정부 주도의 빅딜 등을 거치며 알토란이 분리되거나 알짜가 부도를 맞는 등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다. 2001년 현대건설이 떨어져나가면서 남겨진 기업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현대증권과 대북사업 중심의 현대아산 등이었다.

2003년 그룹의 수장 자리가 비게 되면서 현정은 회장 체계가 출범한다. 현정은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를 현대그룹의 주축으로 삼는다. 지분 구조상 지주사의 역할이 가능했고 제조업으로 캐시카우로도 기능할 수 있어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HMM인 현대상선은 해운업 침체의 파고를 피하지 못하고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된다. 현정은 회장은 2016년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300억원의 사재까지 출연했으나 명운을 돌리지는 못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023년 현대엘리베이터의 등기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지배구조 개선이 목표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전량은 현대네트워크에 장외 매도한다. 현재는 전문 경영인 체제다.

2.5. 혈맥과 현대그룹의 경영권 다툼접기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2000년대 초반이던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전개였다. 가부장적인 가족문화가 자리를 잡았던 현대그룹에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친족간 협의와 유가족의 의견을 종합하고 갑작스럽게 빈 수장의 자리를 채우기에는 현정은 회장의 즉위가 가장 당위적이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현대그룹은 범현대그룹의 출발점이었지만 '친족이냐, 적이냐'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가장 큰 실례는 2003년 KCC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인수다.

외인이 현대그룹에 집중투자하며 경영권 위기론이 불거진 와중이었는데 정주영 창업주의 막냇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주도로 현대가의 계열사 9곳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16.2%를 사들인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형제의 의리냐, 경영 관여냐는 이중적 해석이 나왔다. 그 와중에 정상영 명예회장이 사실상 현대그룹을 '섭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현대그룹의 KCC 편입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처음에는 백기사로 분류됐으나 이후 KCC가 직접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37.23%와 뮤추얼펀드(7.87%)와 사모펀드(12.91%)의 지분을 합하면 절반 이상으로 불어나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됐다.

KCC가 현대상선의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범현대가가 긴급하게 회동할 만큼 갈등이 커졌다. 현정은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민기업화'를 선언한다. 현대백화점 및 현대건설 등은 현대상선 주총에서 중립을 선언했고 현정은 회장이 승리한다. KCC는 주총 패배시 현대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지분을 전량 매도하겠다는 마지막 수를 뒀다.

금감원은 KCC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입 과정이 편법이라며 뮤추얼펀드 등을 통한 지분 전량을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의결권을 제한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2004년 주총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한 KCC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정리하며 현대그룹에서 물러섰다.

3.1.1. HDC그룹:포니 정과 정몽구의 다툼 끝 독립접기



HDC현대산업개발은 정주영 창업주의 넷째동생이자 현대자동차에서 '포니 정' 신화를 일군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 의해 탄생한 기업집단이다. 현대차의 초창기 성장에는 정주영 창업주 못지 않게 정세영 명예회장이 기여한 바가 컸다. 1967년 현대차가 설립된 후 사장을 맡은 정세영 명예회장은 1974년 주도적으로 한국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를 생산한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7년 정계에 진출한 형의 자리를 지켰고 추후 왕자의 난에도 조카인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예의를 지켜 자동차 산업군을 넘겨준 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을 맡아 범현대가의 한 축을 지탱한다. 2005년 별세 전까지 그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린 인물이다.








"큰 형님(정주영 명예회장 지칭) 덕분에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다. 처음부터 오너를 할 생각은 없었다"
"정 명예회장이 수시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현대대산업개발이라는 큰 회사를 경영하도록 해 주신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이번일로 해서 한동안 가족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비추어지고 있어 (기자들을) 만나지 않았다"
-1999년 3월 정세영 명예회장 기자회견 발언


그는 기업의 분할 과정에서도 기자회견을 통해 집안의 화합을 강조하고 갈등을 봉합하고자 애썼다. 포니 정 신화로 자동차 산업 승계가 유력하다는 전망까지 나온 상황이었지만 집안의 내홍을 잠재우고 조용한 분리를 택한다.

계열분리 시점을 돌아보면 다른 범현대가와 마찬가지로 왕자의 난이 시발점이 됐다. 현대산업개발의 모태는 1976년 현대건설에서 분사된 현대산업개발회사다. 왕자의 난때 정세영 명예회장은 자동차 경영권을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건네는 대신 자신이 이끌던 현대산업개발을 들고 나와 독립한다.

다만 당시 보도 등을 종합해보면 이미 승패가 나온 경영권 승계에 승복하는 제스쳐였던 것으로도 읽힌다. 현대그룹이 정몽구 회장을 현대차와 기아차의 총괄회장으로 임명하자 주주총회를 통해 반격을 시도했다.

또 실무에 몸담을 때는 숙질간의 갈등이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자동차써비스를 통해 현대차의 내수판매 영역을 오가며 정세영 명예회장과 갈등이 있었고 그때마다 정주영 창업주가 중재자로 나섰다는 기록이 있다. 또 아들인 정몽규 HDC 회장에게 현대차의 수장 자리를 물려주며 말이 많았다고. 정몽규 회장이 30대였다.

이때 아버지와 함께 독립한 정몽규 회장이 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을 이끈다. 정몽규 회장도 1988년부터 1996년까지 현대차에 몸담았다. 사촌형이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다. 독립 후 CI를 교체하는데 현대의 심벌마크인 두 개의 정삼각형 대신 붉은 빛의 이미지를 택한다.

3.2. 독자 창업접기



3.2.1. HL그룹: 다툼 속 움튼 씨앗, 추락과 재기의 드라마접기



한라그룹은 정주영 창업주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사진)이 독자 창립했다. 1962년 현대그룹과 별개로 회사를 세워 한라그룹을 일군다. 현대양행과 만도기계 등이다.

정인영 명예회장은 초기 현대건설 부사장, 현대아메리카 사장 등을 거치며 현대그룹의 임원직을 거쳤으나 이후 독립 경영의 길을 택했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기자 출신 경영인. 교수로도 활약했다.

한라건설, 한라자원, 만도기계 등 계열사들의 임원을 겸직했다. 1988년 한라그룹의 회장에 오르며 본격적인 그룹의 시대가 태동한다. 1980년대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이루며 1996년 재계순위 12위까지 오른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부침을 겪었고 부채비율이 2000%에 달할 만큼 유동성 위기에 시달린다.

1997년말 한라그룹은 부도 위기에 봉착한다. 그룹은 사실상 해체 위기에 놓였다. 한라중공업과 한라건설은 법정관리에, 알토란인 만도기계는 외국계 투자 컨소시엄에 매각된다.

정인영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원 HL그룹 회장은 그룹이 스러진 직후부터 재건에 돌입한다. 남아있던 한라건설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건하는 한편 만도를 되찾는다. 2010년 만도 재상장, 2014년 만도의 지주사 전환 등을 거친다. 2022년 그룹명을 HL로 바꾼다.

선대에서는 독자 창업으로 두드러지는 경영권 분쟁이 없었으나 2세대에서는 형제간 갈등이 불거진다. 정인영 명예회장이 장자인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이 아닌 차남 정몽원 회장을 후계자로 선택하면서다. 정몽국 회장이 유학길에 오르며 잠시 일단락됐던 갈등은 외환위기의 파고 속 재점화된다.

'형제의 난'으로 불린다. 정몽원 회장이 1997년 12월 부도 이후 한라시멘트 영업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미국계 투자회사 로스차일드로부터 약 4000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형인 정몽국 회장이 보유하던 한라시멘트·한라콘크리트 지분이 본인 동의 없이 처분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정몽국 회장은 2003년 정몽원 회장을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고소했고, 2005년에는 주식반환청구 소송이 시작됐다. 법원은 정몽원 회장이 정인영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주식을 처분하는 등 관리했다는 등의 이유로 정몽원 회장의 손을 들어준다.

정몽원 회장의 장녀 정지연 씨가 HL만도에 재직했으나 일신상의 이유 퇴직했다. 정지연 씨의 배우자이자 정몽원 회장의 맏사위인 이윤행 HL클레무브 CEO가 2025년 12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3.2.2. KCC: '왕 회장' 막내의 독립접기



KCC그룹은 정주영 창업주의 막냇동생인 정상영 명예회장(사진)이 현대그룹과는 별도로 일찌감치 창업한 독자 기업집단이다. 현대그룹과는 거래관계를 맺었지만 편입된 적은 없다. 현대그룹의 분파는 아니지만 범현대가문의 기업에 포함돼 언급된다. 형 정주영 창업주의 별명이 왕 회장, 정상영 명예회장의 별명도 왕 회장이다. 그래서 '리틀 정주영'으로도 불린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1958년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해 도료와 유리 등 건축자재 사업을 시작한다. 사업은 1960년대 건설붐과 1970년 새마을운동을 기점으로 급격히 확장된다. 개발과 슬레이트 수요의 급증 속 1973년 증권거래소 상장의 쾌거를 이룬다.

1974년 고려화학을 세우고 1976년 금강스레트공업은 주식회사 금강이 된다. 1989년 금강종합건설, 1989년 금강레저, 1990년 고려시리카, 1996년 금강화학이 각각 신설되며 사세가 파죽지세로 성장한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하고 존속법인으로는 금강이 남는다. 2005년 사명을 KCC로 바꿔 국제화의 초석을 닦는다.

KCC는 2세 승계 작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해 '왕자의 난'을 미리 차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 아들 정몽진·정몽익·정몽열은 KCC, KCC글라스, KCC건설로 각자 사업영역을 나눠 운영 중이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2004년 KCC 보유 주식 중 일부인 77만3369주, 7.35%를 세 아들에게 분산 증여했다. KCC글라스와 코리아오토글라스의 합병으로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의 지분율은 8.80%에서 19.49% 상승해 독자경영에 나선다. 막내 정몽열 KCC건설 회장은 정상영 명예회장으로부터 2016년 보유 지분의 전량을 증여 받는다.

범현대가는 물론 다른 재계의 가문과 혼맥으로 이어져 있다. 정몽진 KCC 회장의 부인은 빙그레의 전신인 옛 대일유업 사장의 딸 홍은진씨로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소개로 연을 맺었다고 한다. 차남 정몽익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외조카와 결혼했지만 30여년만에 이혼했다.

현정은 회장 체제의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에 나선 바 있다.

4. 창업자와 2세대: 주요 가계도접기

그래픽=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정주영 (창업주, 2015~2001): 1947년 현대건설 창업.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몽필 (장남, 1934~1982):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경영.
정몽구 (차남,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현대차 계열 분리, 현대차그룹 설립
정몽근 (3남,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 유통 계열 분리, 현대백화점그룹 승계
정몽우 (4남, 1945~1990): 고려산업개발, 현대알루미늄 등 경영.
정몽헌 (5남, 1948~2003): 현대전자, 건설, 상선 등 거친 前 현대그룹 회장
정몽준 (6남, HD현대 최대주주): 중공업 계열 분리, 현대중공업그룹 승계,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윤 (7남, 현대해상 회장): 금융보험 계열 분리, 현대해상그룹 운영
정몽일 (8남, 현대미래로그룹 회장): 현대기술투자, 현대기업금융 회장 등.
  • [1] 1990년대말 남북의 냉담한 관계는 대북산업에 몰두했던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단초가 됐다. 구조조정으로 품게 된 기업들의 빚도 함께 흡수되면서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 [2] 제13·14·15·16·17·18·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 [3] 유통 분야의 특성상 젊은 경영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4] 해상사업에 관한 사고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손해의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손해보험. '육상보험'과 구분된다.
  • [5] 현대차 사가를 부르며 울먹였다는 전언이 있다.
  • [6]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해 현대그룹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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