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현대자동차가 시가총액 100조원 시대에 진입했다. 21일 종가 기준 현대차 시총은 112조4120억원으로 파죽지세로 기업가치가 치솟았다. 현대자동차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로봇 '아틀라스'가 꼽힌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 차세대 아틀라스를 시연·운영하며 현대차그룹을 정통 완성차 업체를 넘어 피지컬AI 선두 기업으로 인식시켰다. 인간을 보조·대체하는 피지컬AI의 등장으로 제조·물류 등 산업 전반에 대전환을 일으킬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들은 선제적으로 로보틱스 산업에 투자를 이어왔다. 삼성그룹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인수했고, 두산은 두산로보틱스를 만들어 협동로봇 산업에서 대전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 3사는 아직 순손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도 있다. 피지컬AI 산업이 이제 개화하는 단계인 만큼 초기 손실을 감수하며 모회사의 지원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사업을 이끄는 인물, 의사결정 구조 등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대기업들이 투자한 로보틱스 3사엔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을까. 로보틱스 3사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본다.
◇현대차·삼성, 그룹 변곡점에서 내린 인수 결정
보스턴다이나믹스와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각각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전자에 편입된 로보틱스 기업이다. 현대차그룹은 일찌감치 협동로봇 산업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2020년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를 결정했고 삼성전자는 2023년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최초로 투자한 후 지분율을 끌어올려 지난해 종속회사로 편입했다. 두 기업집단 모두 인오가닉(인수합병·지분투자 등을 통한 역량 강화) 전략을 택해 관련 산업에 진출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그룹의 변곡점에서 투자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를 결정한 2020년, 그룹의 수장인 정의선 회장이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인 시기였던 2020년 10월 회장에 오른 정 회장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지며 미래 모빌리티 디바이스, 모빌리티 서비스, 수소연료전지를 3대 사업축으로 내세웠다.
현대자동차그룹이 CES 2026에서 공개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사진=현대자동차)
같은해 12월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를 발표하며 정 회장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그룹이 2021년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를 마무리하는데 투입한 금액은 총 9963억원이다. 지분 80% 인수에 들어간 금액으로 현대차그룹은 이후에도 수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한해 적게는 2000억원(2023년), 많게는 1조원 이상(2025년)의 금액을 보스턴다이나믹스에 지원했다. 지분 인수부터 유상증자 참여까지 그룹이 투입한 금액은 3조원이 넘는다.
그룹의 미래를 건 투자라는 평가 속에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올해 초 열린 전자·정보기술 전시회 CES에서 휴머노이드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그룹을 단순 모빌리티 기업이 아닌 피지컬AI(휴머노이드로봇·자율주행차 등 하드웨어에 탑재한 인공지능) 기반의 로봇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선봉에 선 회사란 평가를 받았다.
HD현대삼호 선박 제조 과정에 적용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협동로봇(사진=레인보우로보틱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2023년 1월 유상증자를 통해 삼성전자를 주주사(14.83%)로 끌어왔다. 삼성전자는 2021년 8월 이재용 회장의 가석방 직후 240조원 규모의 미래 신사업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때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로봇산업 투자처로 부상했다.
지난해 3월 삼성전자의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율이 35%로 올라가며 이 회사는 삼성그룹에 편입됐다. 삼성전자가 레일보우로보틱스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투입한 금액은 3500억원 수준이다. 신사업 투자 계획 금액 240조원에 비하면 투자금액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러나 삼성의 투자처라는 것 하나만으로 시장의 관심을 끌 만했다.
◇두산 구조조정 계열사의 신사업 추진, 두산로보 출범
두산그룹의 협동로봇 사업 진출은 현대차와 삼성에 비해 빨랐다. 두산인프라코어(현 HD건설기계), 두산에너빌리티 등 건설·발전 기계 제조 계열사를 보유했던 만큼 자연스럽게 제조 과정의 자동화 기기·솔루션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했다.
다만 앞선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와 달리 외부 투자가 아닌 자체적인 육성 전략을 택하며 디알에이라(현 두산로보틱스)는 신설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당시 두산그룹의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던 디아이피홀딩스의 출자로 2015년 출범했다.
디아이피홀딩스는 2009년 두산그룹이 사업재편과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돌입하며 그룹의 구조조정을 전담하던 회사다. 삼화왕관, 한국항공우주(KAI), KFC 등 매각·정리 대상 비핵심 자산이 모두 디아이피홀딩스 산하로 이관돼 처분 절차를 밟았다. 이러한 그룹 구조조정을 하나둘 마무리하면서 디아이피홀딩스 자체적으로 신규 사업을 발굴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2018년 그룹 지주사 두산이 디아이피홀딩스를 흡수합병하면서 디알에이는 두산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미 디알에이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디알에이 지분 29.6%를 보유했던 두산은 디아이피홀딩스를 흡수합병해 지분구조를 단순화했다. 과거 두산→디아이피홀딩스→디알에이로 이어지던 구조가 두산→디알에이로 한단계를 줄인 것이다.
당시 두산그룹은 "로봇 사업을 포함해 인더스트리 4.0과 관련한 여러 과제를 꾸준히 추진하고 그 노력을 가속할 때"라는 박정원 회장의 주문 아래 로봇 사업 확장을 준비 중이었는데 그 중심에 두산로보틱스가 있었던 셈이다. 두산로보틱스는 모회사의 지원을 바탕으로 초기 성장에 성공하며 현재 국내 협동로봇 시장 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두산로보틱스가 지난해 9월 개소한 이노베이션센터(사진=두산로보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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