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로보틱스는 LIG넥스원이 야심차게 인수했지만 그간 성적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와의 특허소송 이슈뿐 아니라 미국 정치환경까지 발목을 잡은 탓이다. 외형 성장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지난해 수백억원대 적자를 봤다.
FI(재무적투자자)들과 약속한 기업공개(IPO) 시한이 있는 만큼 마냥 여유로울 순 없다. 결국 장부에 1400억원 규모의 부실을 미리 반영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상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불확실성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최근 대규모 계약에 성공하면서 올해 적자탈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선제적 손상차손, 불확실성 털었다
LIG넥스원이 고스트로보틱스를 사들인 것은 2024년 7월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2015년 설립된 고스트로보틱스는 대표 제품 ‘비전 60’으로 군사, 보안용 사족보행 로봇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LIG넥스원은 진입장벽이 높은 미국 방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고스트로보틱스에 거액을 베팅했다.
당시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60%를 2억4000만달러(약 3320억원)에 인수했는데 이중 영업권(경영권 프리미엄)이 2900억원을 넘는다. 고스트로보틱스의 전체 기업가치를 4억달러(약 5500억원) 수준으로 평가한 공격적 투자결정이었다.
고스트로보틱스의 비전 60
딜 구조를 보면 LIG넥스원은 특수목적법인(SPC)인 LNGR LLC를 세워 인수를 진행했다. 인수 과정에서 LIG넥스원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와 세마인베스트먼트를 FI로 끌어들였다. FI들이 프로젝트펀드를 결성하고 LNGR LLC가 발행한 9600만달러(약 126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 영구 EB는 액면 이자율이 0%다. 당장 이자 부담이 없는 대신 FI들의 엑시트를 위해 2029년까지 고스트로보틱스의 나스닥 상장을 약속했다. 정해진 기한 안에 상장하지 못하거나 계약을 위반할 경우, 투자원금에 연복리 15%를 적용한 금액 또는 공정가치의 115% 중 더 큰 금액으로 EB를 되사야 한다.
그러나 LIG넥스원의 품에 안긴 이후 고스트로보틱스는 고전을 거듭했다. 2025년 매출은 약 160억원에 그쳤고 43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부진의 원인 중 하나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의 지적재산권 소송 리스크에 있다. 2022년부터 이어진 특허 분쟁이 글로벌 영업망 확대에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LIG넥스원은 2035년까지 사족로봇 제품 매출의 최대 10%를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로열티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끌어냈다. 법적 리스크는 사라졌지만 이 기간 수익성 하락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급변한 미국 정치 환경도 직격타를 입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되면서 미국 국방부의 예산 집행 정책이 크게 요동친 탓이다. 고스트로보틱스가 핵심 타깃으로 삼아 준비해온 미군 향 대규모 납품계약 일정이 줄줄이 연기됐다. 그 사이 대체 수출 판로를 바로 확보하지 못하면서, 초기 투입된 대규모 고정비와 연구개발 비용이 고스란히 영업손실로 이어졌다.
결국 LIG넥스원 경영진은 작년 말 잠재적 부실을 미리 털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무형자산 1125억원과 영업권 약 275억원 등 총 1400억원 규모의 손상차손을 선제적으로 장부에 반영했다. 당장의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불확실성을 없애겠다는 빅배스(Big Bath) 전략이다.
◇'비전 60' 100여대 수주…턴어라운드 시동
고스트로보틱스는 올해를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긍정적인 부분은 막혀있던 글로벌 수주망이 다시 뚫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작년 말 주력모델인 비전 60을 100대 이상 공급하는 대규모 계약을 해외 정부 기관과 체결했다. 군사·보안용 로봇은 초창기 신뢰성 검증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전력화가 시작되면 부품 수리나 후속 유지보수(MRO), 추가 발주로 이어지는 락인(Lock-in) 효과가 크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도 본궤도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다목적 임무 수행이 가능한 로봇 팔 탑재형 비전 60을 공개해 군사 작전에서의 활용도를 끌어올렸다. 올 1월에는 응급대원용 비전 60을 내놓는 등 순수 군사용을 넘어 민간공공, 재난구조 등 신규 수요처를 넓히고 있다.
미국 본토에 편중됐던 영업망 역시 LIG넥스원의 방산 인프라에 올라타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LIG넥스원은 천궁-II 수출을 통해 UAE,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중동 주요국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둔 상태다.
올해는 고스트로보틱스의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 미뤄진 미국 국방부와의 대규모 납품 계약도 무산된 것이 아니라 협의단계에 있고, 2027년 계약이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회사 측은 “로보틱스 실적이 계획 대비 부진하지만 2026년 매출 5000만달러를 달성해 BEP를 맞추는 게 목표”라며 “본격적인 이익 창출은 2027년부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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