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현대해상과 한화손해보험은 내세우는 대표 상품이 뚜렷하다. 현대해상은 태아보험을 앞세워 어린이보험 시장의 지배력을 굳혔다. 한화손보는 여성보험을 키워 장기보험 확대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현대해상의 장수 브랜드 경쟁력과 한화손보의 전략 확장성이 각 주력 상품으로 집약된 구도다.
같은 종합보험이라도 핵심 고객군에 따라 상품 전략의 결이 확연히 갈렸다. 현대해상은 태아 단계부터 고객 접점을 선점하는 어린이보험 전략으로 시장 지배력을 굳혔다. 한화손보는 여성의 생애주기를 반영한 특화 상품을 앞세워 디지털 고객의 업셀링 통로로도 활용한다.
◇국내 신생아 10명 중 7명은 현대 태아보험 현대해상에 따르면 지난해 태아보험 가입 건수는 17만954건으로 국내 출생아 총수 대비 가입률이 67.2%를 기록했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국내 신생아 10명 중 7명가량이 현대해상 태아보험에 가입했다고 봤다. 통상 태아보험은 아이 1명당 보험 1개 가입하는 경향을 감안했다.
현대해상의 태아보험은 어린이보험의 대표 상품군이다. 가입 건수 기준 어린이보험 내 86.7%에 달한다. 태아보험의 판매 흐름으로 어린이보험의 경쟁력을 가늠하기 충분한 구조다. 태아보험 가입 건수는 안정적인 증가 흐름을 보인다. 2023년 15만9736건, 2024년 16만5529건으로 집계돼 지난해까지 2년 연속 3%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현대해상에 어린이보험은 회사의 브랜드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상품이다. 대표 상품인 굿앤굿어린이종합보험Q는 현대해상이 지난 2004년 7월 업계 최초로 선보인 어린이 종합 보험이다. 같은 브랜드명으로 22년간 판매를 이어온 업계 최장 어린이보험이다. 어린이보험에서의 존재감이 곧 현대해상의 상품 경쟁력과 고객 접점의 깊이를 보여주는 척도인 셈이다.
현대해상의 강점은 업계 점유율 1위에 안주하지 않고 보장과 서비스를 꾸준히 고도화해 왔다는 점이다. 최근 10년간 어린이보험 분야에서 21건의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했다. 선천이상과 감염질환, 성장기 질환, 정신건강, 고위험 산모와 고위험 신생아까지 담보를 넓혀왔다. 현대해상은 어린이보험 전용 콜센터와 패스트트랙 보상채널까지 별도로 운영한다.
◇대표 장기보험 부상 후 '합병 시너지' 핵심 역할까지 한화손보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시그니처 여성건강보험 1.0~4.0으로 얻은 누적 원수보험료는 약 6991억원이다. 올해 1월 출시한 시그니처 여성건강보험 4.0의 올 3월 매출(월납환산 기준)은 보장성 단일 상품 최대인 31억원을 기록했다. 여성보험이 한화손보의 대표 상품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한화손보의 차별점은 여성의 생애주기를 촘촘히 상품에 녹였다는 데 있다. 여성통합암진단비와 난임 케어, 출산 후 5년 중대질환 보장 강화, 출산·육아휴직 기간 보험료 납입유예, 정신건강 특약, 출산지원금까지 보장 범위를 꾸준히 넓혔다. 틈새시장에 머물던 영역을 하나의 브랜드 상품군으로 키운 셈이다.
여성보험의 전략적 가치는 캐롯손해보험과의 합병 이후 더 커졌다. 디지털 기반 자동차보험으로 유입한 고객을 장기보험으로 업셀링·크로스셀링하는 구조에서 여성보험은 한화손보가 내세우기 적합한 주력 상품이다. 디지털 고객을 장기 보장성보험 고객으로 전환한다는 구상과도 맞닿아 있다. 자동차보험 손해율 부담을 중장기 수익으로 상쇄하려는 복안이다.
한화손보가 초기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자동차보험 외형 확대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도 여성보험이 깔려 있다. 올해 1분기 자동차보험 매출은 3000억원을 웃돌았다. 지난달 한 달에만 1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해 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자동차보험으로 넓힌 접점을 여성보험 같은 고부가 장기보험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기에 공격적인 확대 전략도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