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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그룹의 흥망성쇠

강용규 기자  2026-08-20 08: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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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강덕수 회장의 도전과 몰락

2.1. 평사원에서 그룹 회장으로

2.2. 한순간에 허물어진 대기업

3. STX조선해양

3.1. 대동조선에서 STX조선으로

3.2. 기술 혁신으로 세계를 조준하다

3.3. 별안간 찾아온 몰락

4. STX팬오션

4.1. 범양상선에서 STX팬오션으로

4.2. 폭발적 성장 직후 찾아온 불황

4.3. STX그룹에서 하림그룹으로

5. STX엔진

5.1. STX엔진의 역사

5.2. K-방산 국산화의 일익

6. STX중공업

6.1. STX중공업의 역사

6.2. 출범 직후 찾아온 위기

6.3. STX그룹에서 HD현대그룹으로

7. STX그룹의 몰락 원인

7.1. 수직계열화의 명암

7.2. 과도한 차입 부담과 잘못된 지배구조 설계

7.3. 오너의 전략적 오판

7.4. 오너의 도덕적 해이

8. 결론

최초 문서 작성일 : 2026년 8월18일

1. 개요접기


2000년대 초에서 201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STX라는 이름은 국내 산업계에서 굉장한 파급력을 지녔다. 전문경영인 출신 오너 강덕수 회장이 자본의 세습 없이 재계 순위 10위권의 그룹을 일궈내고 그 그룹이 한순간에 해체되는 10여년의 과정은 태양을 향해 날다 추락한 이카로스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시간이 흐른 지금 STX그룹은 대한민국 기업 역사의 반면교사로 남았다. 오너의 전략적 오판, 잘못된 지배구조 및 포트폴리오의 설계, 과도한 차입 경영, 도덕적 해이 등 기업을 몰락에 이르게 하는 여러 요인들이 STX그룹에 모두 있었다.

STX그룹이 짧게나마 발산한 광채가 강렬했던 것도 엄연히 사실이다. 그룹이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강덕수 회장이 인수합병(M&A) 전략을 통해 보여준 혜안까지 저평가될 이유는 없다.

그룹은 해체됐지만 여전히 국내 산업계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뽐내는 계열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이해관계자들에게 STX는 어떤 의미일까.

이 문서는 STX그룹의 탄생에서 소멸에 이르는 과정을 주요 계열사 중심으로 살피고 STX그룹이 산업계에 남긴 가르침들을 조명한다.

2. 강덕수 회장의 도전과 몰락접기


2.1. 평사원에서 그룹 회장으로접기


강덕수 STX그룹 회장(사진)은 1950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태어나 동대문상업고등학교와 명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쌍용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을 거치며 재무 역량을 입증한 그는 선박엔진 제조계열사 쌍용중공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까지 올랐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쌍용그룹은 해체의 위기를 마주했으며 쌍용중공업 역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2000년 쌍용중공업을 인수한 사모펀드 한누리컨소시엄은 당시 CFO였던 강덕수 전무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했다.

평사원에서 사장까지 올랐지만 강덕수 대표는 전문경영인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의 자산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저평가된 자본시장의 공포를 일생일대의 기회로 인식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스톡옵션과 평생 저축한 재산,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처분해 확보한 사재 20억원가량에 외부 차입금을 더해 값이 떨어진 쌍용중공업 주식을 매입했다. 이를 통해 한누리컨소시엄으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하며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섰고 마침내 오너 경영인으로서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2001년 5월2일 쌍용그룹에서 분리된 강덕수 대표의 회사, STX가 창원공장에서 출범했다. 사명에는 '시스템과 기술이 훌륭한 회사(System Technology eXcellence)'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강 대표는 기존 쌍용중공업의 선박용 디젤엔진 제조사업을 바탕으로 STX를 조선·해운 전문그룹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후 대동조선(STX조선해양-케이조선)과 범양상선(STX팬오션-팬오션) 등의 굵직한 M&A와 STX중공업(HD현대마린엔진), STX엔진 등의 설립 등을 통해 기업집단으로서의 형태를 갖춰 나갔다. 강덕수 대표는 2003년 STX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2.2. 한순간에 허물어진 대기업접기


2000년대 초중반 조선·해운업 호황과 맞물려 STX그룹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2011년 공정위 발표 기준으로는 그룹 자산규모가 22조원으로 기업집단 순위 20위, 공기업 제외시 14위에 올랐다. 자산 24조5000억원의 금호그룹이 당시 13위, 18조원의 LS그룹이 15위였다. 강덕수 회장은 20대 기업 총수 중 유일한 21세기 창업 경영자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과 해운업의 경기가 하강하면서 STX그룹은 2012년 유동성 위기를 마주했다. 조선과 해운에 집약된 포트폴리오만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2013년 4월 1일 공정위가 그 해 국내 대규모 기업집단 순위를 발표했다. STX는 재계 서열 13위로 두산 바로 다음에 위치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4월 2일 STX조선해양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한 달 뒤인 5월에는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STX그룹 계열사들이 줄줄이 매각·자율협약·법정관리 등 구조조정을 겪는 사이 강덕수 회장도 2013년 10월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STX그룹도 2014년 초 사실상 해체됐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강 회장의 몰락은 그룹을 쌓아올린 속도보다 빨랐다.

3. STX조선해양접기


STX조선해양(현 케이조선)은 강덕수 회장이 가장 먼저 인수한 기업으로 STX팬오션과 함께 조선-해운 밸류체인의 핵심이자 STX그룹의 대표 계열사였다. 한편으로는 공격적인 확장전략 끝에 몰락했다는 점에서 강 회장의 전략적 오판을 상징하기도 한다.

강덕수 회장은 법정관리 상태의 중형 조선사, 대동조선을 전격적으로 사들여 한때 세계 4위의 STX조선해양으로 일궈냈다. 그러나 중국과 유럽 등 해외 진출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수주 절벽과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는 무리한 확장이 됐다. STX조선해양의 몰락은 곧 STX그룹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3.1. 대동조선에서 STX조선으로접기


대동조선은 1962년 1월 부산에 설립된 대한조선철공소가 기원이다. 1967년 동양조선공업을 거쳐 1973년 대동조선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대동조선은 중소형 상선 건조시장에서 나름의 입지를 보유한 조선사였다. 1973년 대동조선이 건조한 2000톤급 컨테이너선은 국내 조선사가 처음으로 건조한 컨테이너 전용선이다. 1983년에는 국내 최초로 석유시추보조선을 건조하기도 했다.

대동조선은 1985년 1월 부실경영으로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1980년대 초 글로벌 조선 및 해운경기의 침체로 일감이 줄어든 가운데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등 대형 조선소가 준공되면서 경쟁력을 상실한 탓이다.

대동조선은 1993년 11월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1994년 경남 진해에서 조선소를 착공하며 재기에 나섰다. 1996년 9월에는 한보그룹 계열 세양선박에 인수됐다. 그러나 진해조선소 건설이 무리한 투자가 되면서 1997년 1월 부도처리된 뒤 그 해 10월 다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강덕수 회장은 이 법정관리 상태의 대동조선을 눈여겨봤다. 당시 대동조선 매각을 위해 진행된 공개경쟁입찰에서 유력 인수 후보였던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과 STX를 비롯한 5~6개사가 경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 당시 대동조선의 가치는 500억원가량으로 평가됐지만 강덕수 회장은 그 두 배인 1000억원을 써내며 STX가 2001년 10월 대동조선을 최종 인수했다. 대동조선은 2002년 사명을 STX조선으로 바꿨고 2003년에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했다.

3.2. 기술 혁신으로 세계를 조준하다접기


STX조선의 진해조선소는 국내 중견급 조선사로 안주하기에는 적당한 크기였으나 거대 조선사로 성장하기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조선소 부지가 좁아 대형 드라이도크를 추가로 확충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도 지니고 있었다

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STX조선은 '종방향 육상건조공법(Skid Launching System, SLS)'이라는 건조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기존 조선소는 도크 안에서 여러 개의 블록을 용접해 배를 건조하고 물을 채우는 방식을 사용했다면 이 기술은 육상에서 대형 블록을 제작하고 바지선 위에서 블록을 용접해 배를 건조한 뒤 바지선을 침강시켜 진수하는 공법이다.

이 공법의 성공으로 STX조선해양은 2006년 육상 건조 세계 최단시간(30일)을 기록하였으며 2007년에는 육상에서만 한 해에 무려 15척의 선박을 진수하는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에 힘입어 인수 당시 연 매출 4000억원대, 연간 건조 능력 14척에 불과하던 회사는 불과 5년 만에 매출 1조 6000억원대, 건조 능력 47척의 거대 조선사로 급성장했다.

고무된 STX그룹은 글로벌 조선시장으로 다변화 전략에 속도를 냈다. 2007년 글로벌 3위 크루즈선 건조 조선사였던 노르웨이의 아커야즈(Aker Yards)와 산하 조선소들을 총 14억3000만달러(최초 39.2% 지분 확보에 8억달러 투입)에 인수하며 STX유럽을 출범시켰다.

이 인수로 STX조선은 국내 조선사 중 최초로 크루즈선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당시 STX조선은 일반상선, 여객선, 해양플랜트, 군함 등 조선 전 분야의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세계 유일의 조선사였다.

동시에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에 약 3조원을 투자해 기자재 가공부터 엔진 제작, 최종 건조까지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대규모 일관 조선소 'STX다롄'의 건설을 기획했다. 한국 진해, 중국 다롄, 유럽을 글로벌 3대 생산 축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2008년 말 기준으로 STX조선은 보유 수주잔고가 720만7000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집계됐다. 현대중공업(현 HD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에 이은 글로벌 4위다. 그 해 연간 수주실적은 259만1000CGT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이은 글로벌 3위까지 올랐다.

STX조선은 2009년 해양플랜트 사업까지 진출하면서 사명을 STX조선해양으로 변경했다. 국내 생산기지인 진해조선소의 명칭도 진해조선해양기지로 바꿨다. 해상 건조물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었던 당시의 STX조선해양은 국내 '조선4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STX유럽의 핀란드 투르쿠 조선소에서 2009년 건조한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의 크루즈선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Oasis of The Seas)'. 건조 당시 세계 최대의 크루즈선이었다. (출처 :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

3.3. 별안간 찾아온 몰락접기


영광은 길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선박 발주시장이 얼어붙고 신조선가가 급락하면서 STX조선해양은 곧 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적자 누적으로 인해 자본잠식에 빠져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STX조선해양은 2015년 말까지 채권단으로부터 4조원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았으나 자본잠식 상태가 계속되자 2016년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중형선박 특화 조선사로 포트폴리오를 합리화하는 과정을 거친 뒤 2021년 유암코와 KH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에 인수되면서 회생절차를 졸업했다. 사명도 케이조선으로 변경했다.

STX유럽은 조선소 단위로 쪼개져 새 주인들을 찾아갔다. 해양플랜트 사업을 영위하던 STX OSV는 이탈리아 조선사 핀칸티에리에 2013년 매각됐으며 핀란드의 투르쿠 조선소는 2014년 독일 마이어베르프트의 품에 안겼다. 2017년 프랑스 생나자르 조선소 역시 핀칸티에리가 사들였다.

STX조선해양의 중국 생산기지 STX다롄 또한 거대한 부채의 덫으로 변했다. 3조원가량의 투자 중 STX그룹의 투자금은 1조원 상당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차입금이었는데 조선업이 이익을 낼 수 없게 되자 빚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자체 투자금도 엄밀히는 대부분이 선박 선수금, 즉 온전한 자체 자금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건조 중이던 선박들이 대거 억류되고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가운데 STX다롄도 파산을 선언했다. STX다롄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하다 2022년 중국의 석유화학 대기업인 헝리그룹에 17억2900만위안(3290억원가량)에 최종 경매 낙찰됐다. 사실상 부동산 자산의 가치만 인정받은 초라한 마무리였다.

4. STX팬오션접기


STX팬오션(현 팬오션)은 강덕수 회장이 STX조선해양에 이어 인수한 벌크선 해운사다. 해운업은 구조상 조선업의 다운스트림으로 두 산업 사이에는 수직계열화 효과가 존재한다. 강 회장 역시 수직계열화 효과를 노리고 STX팬오션을 사들였다.

해운업 호황기에는 STX팬오션의 선박 수요를 STX조선해양이 충당하면서 수직계열화의 강점이 극대화됐다. 그러나 해운시장이 공급 우위로 변하면서 STX팬오션이 STX조선해양의 선박 건조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자 수직계열화 구조는 한순간에 그룹의 약점이 됐다.

4.1. 범양상선에서 STX팬오션으로접기


STX팬오션의 시작은 1966년 설립된 범양전용선주식회사다. 1970~1980년대 수출 물동량 폭증 시기에 철광석, 곡물, 석탄 등을 수송하는 벌크선 분야에서 선대를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국내 선두 해운사이자 벌크선 최강자로 자리잡았다. 1976년에는 보유 선대가 20척, 70만DWT(재화중량톤수) 규모를 기록하며 국적 선대 점유율 29.5%의 압도적 위상을 자랑했다.

1984년 4월 범양상선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성기를 달렸으나 2차 오일쇼크 여파로 인한 해운 불황과 신군부 주도의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에 밀려 자의반 타의반으로 부실 해운사 6곳을 강제로 떠안으며 거액의 부채를 짊어지게 됐다.

재무상태가 악화된 와중에도 내부에서는 경영권을 둘러싸고 창업주 박건석 회장과 전문경영인 한상연 사장 간의 반목이 장기간 벌어졌다. 이 갈등으로 인해 국세청과 검찰의 세무사찰 및 비자금 외화 도피 혐의 수사가 시작되자 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한 박건석 회장이 1987년 4월19일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범양상선은 1992년 부채가 1조원을 돌파하면서 채권단 공동관리와 법정관리의 길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최악의 조건에서도 영업력은 건재했고 10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면서 2002년 법정관리를 성공적으로 졸업했다.

이 범양상선이 조선-해운 수직계열화의 퍼즐을 맞추려던 강덕수 회장의 눈에 들어왔다. 범양상선은 4151억원으로 STX그룹에 매각돼 STX팬오션으로 재탄생했다.
STX팬오션의 벌크선.

4.2. 폭발적 성장 직후 찾아온 불황접기


STX팬오션은 2005년 국적 선사 최초로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에 상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6년 제 43회 무역의 날에 20억불 수출탑을 수상했으며 이듬해인 2007년에는 30억불 수출탑을 새로 수상했다. 2008년에는 전년 대비 2배로 늘어난 60억불의 수출탑을 재차 받았다.

STX그룹에 인수되던 2004년 당시에도 STX팬오션은 매출 2조6000억원대의 건실한 해운사였다. 그런데 STX그룹 체제에서 4년 뒤인 2008년에는 매출이 9조6051억원을 기록하면서 1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는 등 글로벌 수준의 벌크선사로 약진했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해운 시황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발틱 드라이벌크 운임지수(BDI)가 1만1000포인트를 돌파하던 최고점 부근에서 1000포인트 미만으로 순식간에 폭락했다. 호황기에 장기간 빌려온 고가의 용선에서 매달 감당하기 힘든 용선료 부담이 발생하자 STX팬오션의 유동성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영업력은 건재했다. 2009년 세계 최대의 철광석 광산회사인 브라질 발레(Vale)와 7조원 규모의 초대형 장기화물수송계약(COA)을 맺는가 하면 2010년에는 글로벌 펄프 메이저 피브리아와도 5조5000억원 규모의 수송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주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마저 대규모 부채와 불투명한 업황을 이유로 STX팬오션의 최종 인수를 거부했다. STX팬오션은 결국 2013년 6월 두 번째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다.

4.3. STX그룹에서 하림그룹으로접기


STX팬오션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은 국내 축산 및 사료업계의 대기업인 하림그룹이었다. 하림그룹은 2015년 7월 1조79억원의 대규모 자금을 수혈하며 STX팬오션의 지분 54.8%를 확보하고 경영권을 인수했다. STX팬오션의 사명 역시 팬오션으로 변경됐다.

당시 하림은 국내 최초로 곡물 유통사업에 진출하면서 곡물을 운송할 해운사를 필요로 했다. 하림은 팬오션을 축으로 삼아 카길 등 소수의 글로벌 곡물 메이저들이 독점하고 있던 세계 농산물 유통망에 도전장을 냈다.

5. STX엔진접기


STX엔진은 그룹의 모태인 쌍용중공업의 주요 산업이다. 방산엔진의 국산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등 지금도 국내 방위산업에서 나름의 입지가 있다. 그룹 지주사였으며 지금은 종합상사인 STX와 함께 'STX'의 이름을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계열사다.

육군의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차, 해군의 주력 함정과 고속함 추진 디젤엔진, 경비함 등의 발전기용 엔진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일반 상선의 보기 엔진(보조엔진)도 생산한다. 단순 방산업체를 넘어 강덕수 회장의 조선-해운 밸류체인에서 조선업에 선행하는 선박 기자재산업을 맡는 회사이기도 했다.

5.1. STX엔진의 역사접기


STX엔진은 1976년 12월 설립된 쌍용중기가 모태다. 1980년 쌍용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뒤 한국 육해군의 전차와 군함 엔진을 도맡아 제작하던 방위산업 지정 전문업체였다. 쌍용중공업은 2001년 강덕수 회장의 창업 과정에서 사명이 STX로 변경됐다. 2004년 4월 엔진사업부문이 인적 분할되면서 단독법인 STX엔진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 정식 출범했다.

STX그룹의 조선-해운 밸류체인 전략이 성과를 내던 시절에는 방산보다 상선용 엔진사업의 비중이 더 컸다. 예를 들어 금액 기준 수주잔고가 가장 많았던 2008년에는 총 3조7346억원의 잔고 중 80.9%에 해당하는 3조212억원이 조선사로부터 수주한 물량이었다. 방산이 주력으로 떠오른 것은 STX조선해양이라는 거대 캡티브 마켓이 몰락한 뒤다.

STX그룹 붕괴 여파로 2018년 금융권의 구조조정 부실채권 전문 투자기관인 연합자산관리(UAMCO, 유암코)가 지분 61.68%를 인수해 현재는 채권단 지배하에 있다. 유암코의 펀드 만료기한인 2027년이 새 주인을 찾을 적기로 여겨진다.

5.2. K-방산 국산화의 일익접기


과거 핵심 추진기술의 해외 라이선스 의존은 대한민국 자주국방과 수출 전선의 구조적 한계로 작용해 왔다. 명품 'K-방산'의 대표격으로 글로벌 자주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한 K9 자주포 역시 1000마력급 엔진(MT-881 엔진)의 원천 권한은 독일 정부에 있었다.

이는 족쇄와 같았다. K9 자주포는 독일 정부의 수출승인 통제(BAFA)를 거쳐야 수출이 가능했던 만큼 중동의 이집트, UAE나 튀르키예 등 방산 수요가 급증하는 국가로의 무기체계 수출이 독일 당국의 지정학적 결정에 따라 제한되거나 최종 취소되기도 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와 방위사업청은 2021년 4월 총 321억원의 국가 연구개발자금이 투입되는 'K9 자주포용 1000마력급 엔진 및 제어장치 핵심 부품 국산화 사업'의 총괄 주관 개발사로 STX엔진을 선정했다.

STX엔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자동차연구원 등 핵심 기관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2024년 9월27일 경남 창원공장에서 K9 자주포 국산 1호 엔진을 출고했다. 개발 기한을 2년 가까이 앞당긴 성과였다.

새롭게 완성된 국산 엔진 'SMV1000'은 약 500개 핵심부품의 순수 국산화를 달성해 독일 정부의 승인 없이 단독으로 무기체계를 수출하는 활로를 넓혔다. STX엔진으로서도 구형 궤도차량의 파워팩 개량 및 해외 함정, 지상 장비 유지·보수·정비(MRO) 패키지를 함께 공급하는 수출 전략이 가능해졌다.
STX엔진이 국산화한 1000마력급 엔진 'SMV1000'.

6. STX중공업접기


STX중공업(현 HD현대마린엔진)은 강덕수 회장이 기획한 STX그룹의 조선-해운 밸류체인에서 STX엔진과 함께 선박 기자재사업을, 그리고 그보다 더 앞선 선박기자재용 부품사업도 책임지는 계열사였다.

STX엔진이 보조 엔진에 특화돼 있다면 STX중공업은 선박용 추진 엔진(주기 엔진)에 특화된 엔진 제조사였다. 조선산업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STX조선해양의 몰락 이후 STX중공업 역시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들어 선박 탈탄소 기조가 확산되면서 기존 선박연료인 벙커C유 대비 탄소 배출량이 적은 LNG를 선박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이중연료 추진엔진(D/F엔진)의 가치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자연히 조선사들은 선박엔진 제조역량을 내재화 혹은 확대하는 데 골몰하기 시작했고 이는 STX중공업의 재발견으로 이어졌다.

6.1. STX중공업의 역사접기


STX중공업의 역사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2001년 6월 지주사 체제 출범 전 STX의 디젤엔진 소재 및 가공 부문이 물적 분할돼 설립된 선박 기자재 전문회사 STX엔파코다.

STX엔파코는 선박엔진의 핵심 부품인 크랭크샤프트, 대형 실린더 라이너 등을 생산하며 기술력을 쌓았고 2009년 5월 사명을 STX메탈로 변경해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그러나 매출의 95% 이상이 그룹 조선 계열사인 STX조선해양 등에 완벽히 종속돼 내부 거래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취약점을 지녔다.

다른 하나는 2004년 2월 설립된 옛 STX중공업이다. 옛 STX중공업은 선박용 대형 디젤엔진의 최종 조립과 중화학 플랜트 건설, 데크하우스(선실) 제작을 주 영역으로 빠르게 몸집을 늘려 나갔고 2010년에는 매출 1조2700억원을 기록하는 중대형 엔진 및 기자재시장의 강자로 도약했다.

이 두 회사는 경영 효율성 극대화와 전방위 조선 위기 대응을 위해 2012년 9월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2013년 1월 STX메탈을 존속법인으로, 옛 STX중공업을 소멸법인으로 합병해 지금의 통합 상장법인인 STX중공업으로 공식 출범했다.

6.2. 출범 직후 찾아온 위기접기


STX중공업은 합병 등기가 완료된 직후인 2013년 초부터 재무위기에 빠졌다. 이 해 그룹의 핵심 계열사 STX조선해양이 자율협약으로 빠져들며 수억달러에 이르는 대형 엔진의 대금 결제가 일시에 묶인 탓이다.

심각한 원리금 연체가 시작된 한편 설상가상으로 700억원 규모의 채무 연대보증을 제공했던 계열사 STX건설이 한순간에 무너지며 STX중공업도 연쇄적으로 회생절차를 밟게 됐다. 결국 2016~2019년에 걸친 자율협약과 법정관리를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 침체기를 지나는 동안 STX중공업은 플랜트부문 자산을 대거 도려내고 선박 서비스사업과 연료전지사업 분할 등을 거쳐 알짜배기인 선박 추진엔진 및 크랭크샤프트 주물 제조에만 전념하는 콤팩트한 체제로 다듬어졌다. 때마침 대기업 조선사들이 친환경 탈탄소 선박엔진 시장의 선점을 노리기 시작하면서 STX중공업도 시장의 핵심 매물로 부각됐다.

6.3. STX그룹에서 HD현대그룹으로접기


HD현대그룹은 글로벌 조선업계에서 가장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업집단이다. HD현대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2024년 7월 구주 매수와 신주 유상증자 유치를 일괄 단행해 STX중공업 지분 35.05%를 확보하고 인수 절차를 완료했다.

STX중공업은 매각 절차 완료 직후인 2024년 7월30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서 사명을 HD현대마린엔진으로 변경하고 그룹의 손꼽히는 재무 전문가 강영 HD현대중공업 재경본부장을 초대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HD현대그룹은 조선계열사 HD현대중공업을 통해 자체 선박엔진사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STX중공업을 인수한 것은 그만큼 선박 탈탄소화 시대에 선박엔진 제조역량의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STX중공업 직원들이 STX메탈-STX중공업 합병 이후 2013년 1월2일 진행한 현판식.

7. STX그룹의 몰락 원인접기


7.1. 수직계열화의 명암접기


강덕수 회장이 기획한 STX그룹의 조선-해운 밸류체인은 더욱 세분화하면 선박기자재 부품(STX중공업)-선박기자재(STX중공업, STX엔진)-조선(STX조선해양)-해운(STX팬오션)으로 이어진다. 이 빈틈없는 수직계열화 구조는 STX그룹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핵심 기반이었지만 급격한 몰락의 원인이기도 했다.

산업 밸류체인은 산업마다 전방산업과 후방산업이 시황의 영향을 받는 형태가 다르다. 예를 들어 석유 밸류체인에서 정유업은 에너지 수요에 영향을 받는 전방산업이지만 후방산업인 산유(원유 생산)업은 원유가 에너지원이면서 동시에 화학산업의 원료이기도 한 탓에 에너지 수요 변동만으로는 급격히 흔들리지 않는다.

선박 밸류체인은 이와 정확히 반대에 있다. 선박은 해운사의 생산수단일 뿐 그 외의 활용처가 없다. 때문에 두 산업은 전방산업인 해운업의 시황에 조선업의 시황이 다소 간의 시차를 두고 완벽히 동조하는 형태로 작동한다.

해운업이 불황에 봉착하면 STX팬오션은 용선료를 체납하는 한편 신규 선박의 발주를 전면 취소한다. 그러자 STX조선해양으로 유입되는 선박 건조대금의 지급이 중단되고 유동성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선박기자재 계열사들이 동반 도산 위기에 빠지고 결국 그룹의 밸류체인이 붕괴한다.

강 회장은 해운시황이 꺾이는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보조 산업의 육성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이 때문에 그룹의 중심축인 두 계열사의 몰락으로 인한 피해를 만회하지 못하고 그룹 역시 빠르게 해체로 이어졌다.

7.2. 과도한 차입 부담과 잘못된 지배구조 설계접기


STX그룹 몰락의 핵심 계기는 2008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해운업 불황, 즉 외부 요인이다. 다만 내부에도 다른 요인이 있었다. 먼저 과도한 차입경영이다.

STX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은 그룹 붕괴가 본격화되기 전인 2011년 말 기준으로도 재무구조가 좋지 못했다. STX조선해양은 부채비율이 539%에 이르렀고 STX중공업은 441.9%에 달했으며 STX엔진 역시 200%를 웃돌았다. 그나마 STX팬오션이 188.9%로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심지어 강덕수 회장은 차입 중심으로 운영되는 주요 계열사들을 일직선의 출자 구조로 엮었다. 지주회사 STX가 STX조선해양과 STX엔진을 거느리고 이 둘이 다시 STX팬오션을 지배한다. STX중공업 역시 STX조선해양의 산하 계열사였다. 고리의 형태가 아닐 뿐 순환출자나 마찬가지였다.

한 계열사가 흔들리면 연속적으로 다른 계열사들까지 흔들리면서 결국 그룹 전체가 무너지는 도미노 구조 역시 STX그룹을 재기 불능으로 몰아넣은 요인이다. 그룹이 해체되기 직전인 2013년 말 기준으로 STX조선해양과 STX엔진은 완전자본잠식, STX팬오션과 STX중공업은 부채비율이 네 자릿수에 달했다. 보유 유동성 역시 빠르게 말라붙었다.

7.3. 오너의 전략적 오판접기


STX그룹은 2012년 5월 재무구조 안정화 계획을 내놓고 같은 해 6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었다. 당시 채권단은 상대적 비주력 계열사인 STX에너지와 STX유럽을 위시한 해외 조선소들의 매각을 주문했다.

그런데 강덕수 회장은 이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STX에너지는 지배지분을 유지하는 선에서 일부 지분만을 일본 오릭스에 매각했고 해외 조선소들의 경우 STX OSV의 매각을 2012년 7월 시작했으나 작업을 지지부진하게 끌다가 2013년 7월 재무위기의 불이 발등에 떨어지고 나서야 팔았다. 당연히 제 값을 받기는 어려웠다.

비주력 계열사들의 매각 시점이 늦어진 것 역시 해운시황을 오판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시점을 놓친 것이다. 다만 해운 시황의 경우 강 회장이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안이지만 그룹 재무위기는 CFO 출신인 강덕수 회장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을 사안이다. 즉 오너의 판단 미스다.

7.4. 오너의 도덕적 해이접기


2014년 2월 17일 검찰은 STX그룹 및 계열사들의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다음 날 검찰은 그룹 경영진이 STX중공업의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STX건설)를 지원해 2000억원대의 손실을 입혔다는 혐의를 포착했다.

STX건설은 강덕수 회장의 두 딸이 대주주로 있던 비상장사다. 부당한 내부거래로 발생한 이익은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연관성을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STX건설은 채무보증 등 형태로 그룹의 한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는 통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2008~2012년 STX조선해양의 영업이익을 2조3000억원가량 부풀리는 분식회계도 드러났다. STX조선해양은 분식을 통해 2조6500억원가량의 대출을 일으키고 회사채를 발행했다. 당시 대표이사를 지낸 강 회장 역시 이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14년 10월 법원은 강 회장에게 계열사 부당 지원에 따른 배임 2840억원 및 557억원의 횡령, 그리고 2조3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자행한 혐의 등을 적용해 1심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015년 10월 2심에서는 분식회계 부분을 무죄로 판단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형량이 감경됐다.

8. 결론접기


강덕수 회장이 STX그룹을 키우는 과정에서 보여 준 공격적인 M&A 시도와 수직계열화 전략은 호황기에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다른 방식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으로서 유효했다.

반면 불황기에는 전·후방의 연동성이 강력한 수직계열화의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점, 안전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차입경영 등 오너 개인의 판단에 크게 의존하는 경영의 위험성이 극대화됐다. 여기에 강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 역시 그룹을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

STX의 흔적은 여전히 국내 산업계에 남아 있다. 케이조선은 중형선박 건조에 특화된 조선사로 친환경 선박 건조역량을 앞세워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팬오션은 하림그룹 체제에서 LNG와 원유 운송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가운데 곡물 안보에도 기여하고 있다.

HD현대마린엔진은 고성능 친환경 선박엔진 제조사로서, STX엔진은 방산엔진 국산화의 첨병으로서 역시 자신만의 입지를 보유했다. 기업이 지닌 잠재력을 파악하는 강덕수 회장의 눈만큼은 진짜였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기업들을 하나로 엮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STX그룹이 10여년 동안 만들어낸 신화와 급속한 해체의 역사는 국내 산업 역사 와 대기업 지배구조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주제다. 강 회장의 강점과 약점, 공과가 극명하게 갈리는 만큼 강점과 공은 교훈으로서, 약점과 과실은 반면교사로서 의미가 있다.
STX그룹의 역사.(Gemini AI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
  • [1] 1973년 8월 착공해 1978년 대우조선공업에 매각됐다. 이후 1981년 10월 완공돼 대우조선공업의 핵심 생산기지가 됐다. 대우조선공업은 대우중공업 조선사업부를 거쳐 2002년 산업은행 지배체제의 대우조선해양으로 독립했으며 2023년 6월 한화그룹에 인수돼 지금의 한화오션이 됐다.
  • [2]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처남인 이도상 전 세양선박 회장의 소유기업으로 실제로는 한보그룹의 위장 계열사였다.
  • [3] 서울 을지로 두산빌딩 10층에 위치한 회장실의 화장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양복 주머니 속에 남긴 유서에는 "한상연 사장의 덫에 걸렸다"는 원망이 적혀 있었다.
  • [4]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곡물 사업의 진짜 마진과 물류 통제력은 해상 영토를 지배하는 해상 운송에서 나온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 [5] 수주잔량 기준으로는 중국 선박공업그룹(CSSC)이 세계 1위다. 다만 중국의 조선사는 자국의 선박을 자국 조선사가 건조한다는 '국수국조(國輸國造)'의 기조에 따라 자국 물량을 대거 배정받는다. 중국 조선사를 제외하면 HD현대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이 수주잔량 1위다.
  • [6] 2021년 2월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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