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좋은 은행"
1997년 하나은행이 내세운 지향점이었다. 은행업에 진입한 지 6년, 총수신은 15조원을 넘어섰지만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이 주도하던 판에서는 여전히 작은 은행이었다. 규모 경쟁을 피하고 수익성과 고객 만족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다가온 외환위기가 판을 뒤집었다. 정부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채우지 못하는 은행을 퇴출하겠다고 했다. 이 때 조·상·제·한·서의 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규모가 작았던 하나은행은 반대로 살아남는 쪽에 속했다.
하나은행은 1998년 충청은행, 19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까지 세 번의 인수합병을 통해 시중은행으로 성장했다. 충청권에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고 대형은행이던 서울은행을 품은 건 하나은행 도약 발판이 됐다. 더 이상 '작지만 좋은 은행'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외환은행 인수는 하나은행의 체급을 한 층 더 키웠다. 지금의 하나은행은 국민은행, 신한은행과 리딩뱅크 자리를 두고 순이익 경쟁을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에는 은행과 비은행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금융그룹'의 모습을 갖췄다. 성장은 멈추지 않고 있다. 2025년 하나금융은 처음으로 연간 순이익 4조원을 넘겼다.
모든 과정을 살펴보다보면 하나금융의 성장을 관통하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M&A'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은행을 인수하면서 체급을 키웠고 증권, 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도 직접 설립이 아닌 인수를 택하며 진용을 완성했다.
이 문서는 단자회사로 출발한 하나금융이 어떻게 M&A를 성장 문법으로 삼아 4대 금융지주에 올라섰는지 살펴보고 동시에 눈 앞에 놓인 과제도 짚어본다.
3.1. 충청은행 인수펼쳐보기 접기
1997년 외환위기(IMF)가 발생했다. 수많은 기업이 통폐합됐고 금융사도 그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다. BIS 자기자본비율 8% 기준이 은행의 생사를 갈랐다. 정부는 이 기준을 채우지 못한 은행을 퇴출 대상으로 정했다.
하나은행은 자본을 먼저 확충했다. 1998년 6월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1억52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다른 은행들이 생존을 위해 몸을 줄일 때, 하나은행은 인수에 나설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둔 것이다.
시작은 충청은행이었다. 지방은행이었던 충청은행은 BIS 비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퇴출 대상에 포함됐다. 하나은행은 1998년 6월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충청은행을 인수하고 그 해 10월 충청사업본부를 출범시켰다. 대내외 공식 명칭은 '충청하나은행'이었다. 하나은행은 이 인수로 충청 지역 영업 기반을 확보했다.
4.2. 계열사 확충의 방식펼쳐보기 접기
지주 출범 이후 계열사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2006년 10월 하나증권을 자회사로 편입했고, 그해 12월 자산 100조원을 돌파했다. 2007년 5월 하나UBS자산운용을 설립하고 7월에는 대한투자증권을 하나대투증권으로, 하나증권을 하나IB증권으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2007년 12월에는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가 출범했다.
2008년 3월에는 하나HSBC생명보험이 출범했다. 같은해 8월에는 중국 길림은행과 3000억원 규모의 지분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 시기 하나금융은 기본자본 기준 세계 93위로 세계 100대 금융회사에 진입했다.
2010년 2월에는 SK텔레콤과의 합작법인 하나SK카드가 출범했고 3월에는 다올신탁과 다올자산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2012년 2월 제일2저축은행과 에이스저축은행을 인수해 하나저축은행을 만들었다. 2013년 8월에는 미국 Hana Bancorp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하나카드는 2014년 12월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를 합병해 탄생했다. 현재는 하나금융이 SK텔레콤의 지분까지 인수해 하나카드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2020년 6월에는 한국교직원공제회 자회사인 더케이손해보험 지분 70%를 인수해 하나손해보험을 출범시켰다.
5.1. 재수 끝에 성공한 하나금융펼쳐보기 접기
하나금융의 위상을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것은 외환은행 인수다.
외환은행은 1967년 1월 외국환 전문은행을 키우겠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한국은행 외환관리과에서 독립해 설립된 국책은행이었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보통예금을 취급하고 1978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용카드 업무를 시작했다.
외환은행은 1989년 금융시장 개방으로 일반은행으로 전환됐고 1994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독일 코메르츠방크가 외환은행 지분 약 30%를 확보해 최대 민간주주이자 경영권 보유 주주로 등극했다. 이후 2003년 8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51%와 경영권 인수 계약을 체결해 한 번 더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이후 꾸준히 매각을 시도했다. 이에 2006년 3월 국민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5월 지분인수계약까지 체결했으나 그 해 11월 론스타가 계약을 파기했다. 이 때 인수전에는 하나은행도 도전장을 냈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2007년 9월에는 HSBC가 지분 51.05% 인수계약을 체결했으나 승인이 지연되면서 2008년 9월 인수를 포기했다.
론스타는 2010년 3월 매각 절차를 재개했다. 하나금융은 다시 한 번 외환은행 인수에 도전했고 2010년 11월 13일 론스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조건은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주당 1만4250원, 총 4조6888억원에 인수하는 것이었다.
6.1. 3대, 함영주 회장의 시대펼쳐보기 접기
2022년 3월 함영주 회장이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5년부터 2019년 3월까지 KEB하나은행장을 지낸 뒤 부회장을 거쳐 회장에 올랐다. 통합 은행의 초대 행장이 그룹 회장이 된 것이다.
김승유 초대 회장은 M&A를 통해 성장 기반을 마련했고 2대 김정태 전 회장은 외환은행 통합 작업을 완성한 동시에 하나금융의 청라 이전 기틀을 짰다.
함 회장은 그 다음 성장을 위해 3대 전략을 제시했다. △강점 극대화와 비은행 사업 재편 △글로벌 리딩금융그룹 위상 강화 △디지털 금융 혁신이다.
이에 맞춰 취임 이후에는 현장 영업을 강조하며 영업에 초점을 둔 인사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하나은행은 2022년 3조169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리딩뱅크에 올랐고, 이후 2023년 2분기까지 은행권 순이익 1위를 기록했다.
계열사와 네트워크 확충도 이어졌다. 2022년 4월 타이베이지점을 개점해 국내 은행권 최초로 대만에 진출했다. 7월에는 하나금융투자의 간판을 하나증권으로 변경했다.
2023년 10월 하나자산운용이 공식 출범했고 12월에는 그룹 출범 18주년을 맞아 'NEW 하나'를 선포했다. 2024년 10월에는 시니어 특화 통합 브랜드 '하나 더 넥스트'를 출범시켰다. 2026년 7월에는 국내 외환시장 24시간 개장에 나섰다.
그러나 이 시기 하나금융이 마주한 조건은 이전 50여년과 다르다. 과거처럼 인수할만한 회사가 마땅하지 않다. IMF, 금융위기 때처럼 시중은행 매물이 시장에 나올 일이 없다. 대형 증권사와 보험사 매물도 흔치 않다. 하나금융이 가장 최근 기업을 인수해 자회사로 재편한 건 2020년 6월 더케이손해보험 지분 70%를 인수해 출범시킨 하나손해보험이다.
6.2. 비은행 정상화펼쳐보기 접기
실적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하나금융은 2025년 연간 당기순이익 4조29억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4조원을 넘었다. 그룹 핵심이익은 11조3898억원, 비이자이익은 2조2133억원이었다. 2005년 하나은행의 순이익이 9068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0년 만에 4배 이상 커진 규모다.
2026년 1분기에도 연결 당기순이익 1조21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한 수치로, 외환은행 통합 이후 최대 분기 실적이다. 이자이익은 2조5053억원, 수수료이익은 6678억원이었다.
다만 같은 분기 하나은행의 순이익은 1조1042억원이었다. 하나증권은 자산관리와 투자금융 성장에 힘입어 1033억원을 냈다. 그룹 이익의 대부분이 여전히 은행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인수로 계열사를 채우는 단계는 끝났지만, 그 계열사들이 은행에 견줄 이익을 내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비은행 사업 재편이 함영주 회장의 3대 전략 가장 앞에 놓여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