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Archive

단자회사에서 종합금융그룹까지, 하나금융 55년

노윤주 기자  2026-08-25 08:24:35

편집자주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시작은 미약하지만

2.1. 하나은행의 뿌리, 한국투자금융

2.2. 1991년 '하나은행'의 탄생

3. 외환위기가 연 창

3.1. 충청은행 인수

3.2. 보람은행과 서울은행

4. 은행에서 금융그룹으로

4.1. 대한투자증권 인수와 지주 출범

4.2. 계열사 확충의 방식

5. 가장 큰 딜, 외환은행 인수

5.1. 재수 끝에 성공한 하나금융

5.2. 오랜 시간 기다린 인수 승인

5.3. '통합 하나은행'으로 합병이 이뤄지기까지

6. 2020년대의 하나금융

6.1. 3대, 함영주 회장의 시대

6.2. 비은행 정상화

6.3. 글로벌과 AI 그리고 디지털자산

1. 개요접기



"작지만 좋은 은행"

1997년 하나은행이 내세운 지향점이었다. 은행업에 진입한 지 6년, 총수신은 15조원을 넘어섰지만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이 주도하던 판에서는 여전히 작은 은행이었다. 규모 경쟁을 피하고 수익성과 고객 만족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다가온 외환위기가 판을 뒤집었다. 정부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채우지 못하는 은행을 퇴출하겠다고 했다. 이 때 조·상·제·한·서의 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규모가 작았던 하나은행은 반대로 살아남는 쪽에 속했다.

하나은행은 1998년 충청은행, 19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까지 세 번의 인수합병을 통해 시중은행으로 성장했다. 충청권에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고 대형은행이던 서울은행을 품은 건 하나은행 도약 발판이 됐다. 더 이상 '작지만 좋은 은행'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외환은행 인수는 하나은행의 체급을 한 층 더 키웠다. 지금의 하나은행은 국민은행, 신한은행과 리딩뱅크 자리를 두고 순이익 경쟁을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에는 은행과 비은행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금융그룹'의 모습을 갖췄다. 성장은 멈추지 않고 있다. 2025년 하나금융은 처음으로 연간 순이익 4조원을 넘겼다.

모든 과정을 살펴보다보면 하나금융의 성장을 관통하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M&A'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은행을 인수하면서 체급을 키웠고 증권, 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도 직접 설립이 아닌 인수를 택하며 진용을 완성했다.

이 문서는 단자회사로 출발한 하나금융이 어떻게 M&A를 성장 문법으로 삼아 4대 금융지주에 올라섰는지 살펴보고 동시에 눈 앞에 놓인 과제도 짚어본다.

2. 시작은 미약하지만접기



2.1. 하나은행의 뿌리, 한국투자금융접기



1971년 6월 설립된 한국투자금융은 한국 최초의 순수 민간 금융중개기관이다. 설립 배경에는 당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이 있었다. 기업들은 은행에서 자금을 구하지 못해 사채시장에 의존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 사금융 수요를 제도권으로 끌어오려 했다. 기업에 단기 여신을 제공하는 단기금융회사(단자회사)가 그 해법이었다.
하나은행의 전신 한국투자금융은 1984년 4월 어음관리계좌(CMA)를 도입했다. (출처:하나금융)

금융업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단자회사였지만 한국투자금융은 사업 확장에 적극적이었다. 1980년 1월에는 경방으로부터 태평증권 발행주식 51%를 인수하며 증권업에 진출했다. 금융의 증권화와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증권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1987년 6월에는 한국투자경제연구소를 부설기관으로 설립해 증권회사와 경제연구소, 투자자문을 연결하는 구조를 갖췄다.

상품과 시스템에서도 앞서 나갔다. 1980년 3월 영업업무를 온라인화했고 1984년 4월에는 국내 최초로 기업손님 전담제도와 어음관리계좌(CMA)를 도입했다. 수신 규모는 1980년 1월 1000억원을 넘어선 뒤 1988년 11월 1조원을 돌파했다. 기업금융과 고객관리, 상품 개발을 결합한 영업 방식이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2.2. 1991년 '하나은행'의 탄생접기



1991년 7월 한국투자금융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인가를 받아 은행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하나은행이 탄생한 시점이다.

당시 은행업의 판은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이른바 '조·상·제·한·서'가 주도하고 있었다. 하나은행의 출발은 총자산 1조5000억원, 점포 2개, 직원 350여명이었다. 단자회사 시절과 비교하면 외형이 크게 늘어난 상태였지만 주류은행과 견주면 존재감이 미미했다. 초대 행장은 고 윤병철 전 회장이 맡았다.
고 윤병철 하나은행 초대회장

정면 승부가 어려운 조건에서 하나은행이 택한 길은 차별화였다. 1993년 2월 국내 최초로 클럽상품을 출시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금융권 최초로 '하나 비밀보장 서비스 제도'를 시행했다. 1995년 9월에는 국내 최초로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도입했다. 대형은행이 다루지 않던 자산가 관리 영업으로 틈을 파고든 것이다.

성장 속도는 빨랐다. 1995년 4월 총수신 10조원을 돌파했다. 은행 전환 3년 9개월 만으로, 당시 국내 은행 역사상 최단기간 기록이었다. 1996년에는 외환 성적 100억달러를 달성하고 런던 주식시장에 글로벌 주식예탁증서(GDR)를 상장했다. 1997년 4월 총수신은 15조원을 넘어섰고, 유로머니와 파이낸스아시아 등 해외 매체로부터 한국 최우수 은행으로 선정됐다.
1991년 7월 한국투자금융은 은행업 인가를 받아 하나은행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출처:하나금융)

'작지만 좋은 은행'이라는 지향점은 이 전략의 요약이었다. 규모로는 대형은행을 따라갈 수 없으니 자산 건전성과 수익성으로 승부한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하나은행은 국내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41년 연속 흑자경영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이 노선은 외환위기 국면에서 다른 은행들을 인수할 수 있는 체력으로 돌아왔다.


3. 외환위기가 연 창접기



3.1. 충청은행 인수접기



1997년 외환위기(IMF)가 발생했다. 수많은 기업이 통폐합됐고 금융사도 그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다. BIS 자기자본비율 8% 기준이 은행의 생사를 갈랐다. 정부는 이 기준을 채우지 못한 은행을 퇴출 대상으로 정했다.

하나은행은 자본을 먼저 확충했다. 1998년 6월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1억52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다른 은행들이 생존을 위해 몸을 줄일 때, 하나은행은 인수에 나설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둔 것이다.

시작은 충청은행이었다. 지방은행이었던 충청은행은 BIS 비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퇴출 대상에 포함됐다. 하나은행은 1998년 6월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충청은행을 인수하고 그 해 10월 충청사업본부를 출범시켰다. 대내외 공식 명칭은 '충청하나은행'이었다. 하나은행은 이 인수로 충청 지역 영업 기반을 확보했다.

3.2. 보람은행과 서울은행접기



1999년 1월에는 보람은행과 합병해 통합 하나은행을 출범시켰다. 이 합병으로 보람은행뿐 아니라 보람증권과 보람상호신용금고, 보람리샤드파이낸스 등 자회사도 함께 넘어왔다.
2002년 하나은행은 서울은행을 인수했다. 존속법인은 서울은행이었지만 상호는 '하나은행'으로 운영과 시스템은 모두 하나은행이 맡았기에 실질적으로는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한 것이다. (출처:하나금융)

세 번째 대상은 서울은행이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002년 9월 13일 전체회의를 열어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하나은행을 서울은행 인수대상자로 최종 확정했다. 매각 조건 협상 과정에서 서울은행과 하나은행의 합병비율이 당초 2.1대 1에서 2대 1로 변경됐고, 이에 따라 매각대금은 1조1000억원에서 1조1500억원으로 500억원 상향 조정됐다.

합병 후 존속법인은 서울은행이었고 상호를 주식회사 하나은행으로 했다. 형식상으로는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을 흡수한 구조이지만 실질적으론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한 것이었다.

그리고 2002년 12월 통합 하나은행이 출범했다. 자산 기준 국내 3위 은행이었다. 4년 반 동안 세 번의 인수합병으로 하나은행은 후발 주자에서 주요 시중은행으로 올라섰다.


4. 은행에서 금융그룹으로접기



4.1. 대한투자증권 인수와 지주 출범접기



2000년대 중반 금융권의 화두는 그룹화였다. 대형은행이 은행업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비은행 자회사와 시너지를 내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대세가 됐다. 은행과 증권, 카드를 함께 운영하면 영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하나은행은 당시 알리안츠그룹과 공동 출자한 하나생명보험,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 등 몇몇 자회사를 두고 있었다. 여기에 대형 증권사를 붙이는 작업이 지주 전환의 선결 조건이었다.

대상은 대한투자증권이었다. 대투증권은 1968년 12월 설립된 한국투자공사를 전신으로 1977년 2월 증권투자신탁업무를 시작한 국내 최초의 투자신탁 전업회사였다. 그러나 1989년 이른바 '12.12 주식매입조치'와 1999년 대우채 손실로 경영이 악화되면서 2000년 2조8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처지가 됐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005년 4월 29일 대투증권 지분 100%를 4750억원에 하나은행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매각에 앞서 부실을 털어주고 영업용순자본비율 150%를 충족시키기 위해 1조1400억원의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했다.

대한투자증권 편입은 하나금융의 자산운용 경쟁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거래였다. 인수 전 하나알리안츠자산운용의 점유율은 2%대에 머물렀지만, 대한투자신탁운용까지 그룹 안으로 들어오면서 수익증권 판매 잔액 기준 점유율은 약 13.4%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하나 계열은 당시 자산운용업계 선두권으로 올라섰다. 하나은행과 대투증권의 고객군을 합산한 접점도 약 700만명 수준으로 확대돼 은행 창구를 활용한 펀드 판매와 고객 교차유치의 기반이 커졌다.

그리고 하나금융지주가 2005년 12월 1일 출범했다. 초대 회장(대표이사)은 김승유 전 하나은행장이 맡았다. 출범 당시 그룹 총자산은 집계 기준에 따라 약 106조~108조원이었다. 지주 아래에는 하나은행, 대한투자증권, 하나아이앤에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등 4개 자회사가 편입됐고, 하나증권·하나생명·하나캐피탈·대한투자신탁운용 등을 포함한 6개 손자회사가 연결됐다. 하나금융은 2009년까지 그룹 자산 190조원과 시가총액 20조원을 달성해 세계 100대 금융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05년 지주사인 하나금융지주가 설립됐다. 사진은 하나금융지주(그룹) 출범 2주년 기념식에서 김승유 초대 회장이 발표하고 있다. (출처:하나금융)

4.2. 계열사 확충의 방식접기



지주 출범 이후 계열사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2006년 10월 하나증권을 자회사로 편입했고, 그해 12월 자산 100조원을 돌파했다. 2007년 5월 하나UBS자산운용을 설립하고 7월에는 대한투자증권을 하나대투증권으로, 하나증권을 하나IB증권으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2007년 12월에는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가 출범했다.

2008년 3월에는 하나HSBC생명보험이 출범했다. 같은해 8월에는 중국 길림은행과 3000억원 규모의 지분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 시기 하나금융은 기본자본 기준 세계 93위로 세계 100대 금융회사에 진입했다.

2010년 2월에는 SK텔레콤과의 합작법인 하나SK카드가 출범했고 3월에는 다올신탁과 다올자산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2012년 2월 제일2저축은행과 에이스저축은행을 인수해 하나저축은행을 만들었다. 2013년 8월에는 미국 Hana Bancorp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하나카드는 2014년 12월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를 합병해 탄생했다. 현재는 하나금융이 SK텔레콤의 지분까지 인수해 하나카드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2020년 6월에는 한국교직원공제회 자회사인 더케이손해보험 지분 70%를 인수해 하나손해보험을 출범시켰다.


5. 가장 큰 딜, 외환은행 인수접기



5.1. 재수 끝에 성공한 하나금융접기



하나금융의 위상을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것은 외환은행 인수다.

외환은행은 1967년 1월 외국환 전문은행을 키우겠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한국은행 외환관리과에서 독립해 설립된 국책은행이었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보통예금을 취급하고 1978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용카드 업무를 시작했다.

외환은행은 1989년 금융시장 개방으로 일반은행으로 전환됐고 1994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독일 코메르츠방크가 외환은행 지분 약 30%를 확보해 최대 민간주주이자 경영권 보유 주주로 등극했다. 이후 2003년 8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51%와 경영권 인수 계약을 체결해 한 번 더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이후 꾸준히 매각을 시도했다. 이에 2006년 3월 국민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5월 지분인수계약까지 체결했으나 그 해 11월 론스타가 계약을 파기했다. 이 때 인수전에는 하나은행도 도전장을 냈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2007년 9월에는 HSBC가 지분 51.05% 인수계약을 체결했으나 승인이 지연되면서 2008년 9월 인수를 포기했다.

론스타는 2010년 3월 매각 절차를 재개했다. 하나금융은 다시 한 번 외환은행 인수에 도전했고 2010년 11월 13일 론스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조건은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주당 1만4250원, 총 4조6888억원에 인수하는 것이었다.

5.2. 오랜 시간 기다린 인수 승인접기



하나금융은 2010년 11월 론스타와 외환은행 지분 인수 계약을 체결한 뒤 이듬해 상반기 중 거래 종결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금융위원회의 자회사 편입 승인은 2012년 1월 27일에야 이뤄졌다. 최초 계약 체결부터 승인까지 약 14개월이 걸린 셈이다.

지연의 핵심 변수는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이었다. 2011년 3월 10일 대법원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서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와 관련 법인에 관한 2심 무죄 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같은 해 10월 관련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서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계속 초과 보유할 수 있는 은행법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 대주주 적격성은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에는 해소될 문제였지만 승인 전까지 론스타의 지분 처분 방식과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이 선행돼야 했기 때문에 거래 종결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됐다.
론스타의 사법 리스크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늦어지는 시기, 매각 금액도 조정이 이뤄졌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금융위는 2011년 3월 16일 론스타를 산업자본이 아닌 금융자본으로 판단하면서도 하나금융의 자회사 편입은 승인하지 않았다. 이후 금융위는 2011년 11월 18일 론스타에 외환은행 의결권 주식 중 10% 초과 보유분을 6개월 안에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하나금융과 론스타는 계약 연장과 가격 재협상을 거친 뒤 2012년 1월 27일 금융위로부터 외환은행 자회사 편입 승인을 받았다.

승인 근거는 금융지주회사법상 세 가지 요건이었다. △편입 대상 회사 사업계획의 타당성 △금융지주회사와 편입 대상 회사의 재무·경영관리상태 건전성 △자금조달의 적정성이다. 2011년 9월말 기준 하나금융지주의 연결 BIS 자기자본비율은 13.05%, 외환은행은 13.98%로 기준을 충족했다. 자금조달에 대해서는 "일부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였으나 경영건전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심사 결과가 나왔다.

승인이 지연되는 동안 인수 가격은 세 차례 인하됐다. 2012년 2월 실제 정산에서 하나금융이 론스타 측에 현금으로 직접 지급한 금액은 약 2조240억원이었다. 계약상 매매대금 3조9157억원에서 국세청 원천징수 예정 세금 약 3916억원과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담보로 조달했던 대출금 약 1조5000억원을 차감한 순액이다.

5.3. '통합 하나은행'으로 합병이 이뤄지기까지접기



인수 승인 3주 뒤인 2012년 2월 17일, 금융위원장과 하나금융 회장, 외환은행장,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 합의서를 공표했다. 핵심 내용은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 보장이었다.

하지만 2014년 7월 3일 김정태 당시 하나금융 회장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합병 추진을 선언하고 외환은행 노조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고 2015년 1월 사측과 외환은행 노조의 본협상이 시작됐다. 같은 달 19일 하나금융은 금융위에 합병 예비인가를 1차 신청했고, 노조는 같은 날 통합절차 중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노조 손을 들어줬다. 2015년 2월 4일 서울중앙지법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고, 하나금융은 다음날인 2월 5일 합병 예비인가 신청을 철회했다. 합병이 법원 결정으로 멈춰 선 것이다.

하나금융은 3월 11일 가처분 결정에 이의를 신청하고, 4월 노조와 대화를 재개했다. 그리고 5월 하나금융은 법원에서 통합 은행명에 '외환' 또는 'KEB'를 포함하는 새 합의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결국 7월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는 통합 합의를 발표했고 같은달 금융위가 합병 예비인가를 승인했다. 8월 7일 통합 은행명이 'KEB하나은행'으로 결정됐고, 8월 19일 본인가를 거쳐 9월 1일 KEB하나은행이 출범했다.
2015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통합한 'KEB 하나은행'이 출범했다. (출처:하나금융)

2012년 2월 자회사 편입, 2015년 9월 KEB하나은행 출범, 2016년 6월 전산통합, 2019년 1월 옛 하나은행과 옛 외환은행의 인사·급여·복지제도 통합, 2020년 2월 브랜드명을 KEB하나은행에서 하나은행으로 변경, 자회사 편입에서 제도 통합까지 7년, 브랜드 정리까지 8년이 걸렸다.


6. 2020년대의 하나금융접기



6.1. 3대, 함영주 회장의 시대접기



2022년 3월 함영주 회장이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5년부터 2019년 3월까지 KEB하나은행장을 지낸 뒤 부회장을 거쳐 회장에 올랐다. 통합 은행의 초대 행장이 그룹 회장이 된 것이다.

김승유 초대 회장은 M&A를 통해 성장 기반을 마련했고 2대 김정태 전 회장은 외환은행 통합 작업을 완성한 동시에 하나금융의 청라 이전 기틀을 짰다.

함 회장은 그 다음 성장을 위해 3대 전략을 제시했다. △강점 극대화와 비은행 사업 재편 △글로벌 리딩금융그룹 위상 강화 △디지털 금융 혁신이다.

이에 맞춰 취임 이후에는 현장 영업을 강조하며 영업에 초점을 둔 인사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하나은행은 2022년 3조169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리딩뱅크에 올랐고, 이후 2023년 2분기까지 은행권 순이익 1위를 기록했다.

계열사와 네트워크 확충도 이어졌다. 2022년 4월 타이베이지점을 개점해 국내 은행권 최초로 대만에 진출했다. 7월에는 하나금융투자의 간판을 하나증권으로 변경했다.

2023년 10월 하나자산운용이 공식 출범했고 12월에는 그룹 출범 18주년을 맞아 'NEW 하나'를 선포했다. 2024년 10월에는 시니어 특화 통합 브랜드 '하나 더 넥스트'를 출범시켰다. 2026년 7월에는 국내 외환시장 24시간 개장에 나섰다.

그러나 이 시기 하나금융이 마주한 조건은 이전 50여년과 다르다. 과거처럼 인수할만한 회사가 마땅하지 않다. IMF, 금융위기 때처럼 시중은행 매물이 시장에 나올 일이 없다. 대형 증권사와 보험사 매물도 흔치 않다. 하나금융이 가장 최근 기업을 인수해 자회사로 재편한 건 2020년 6월 더케이손해보험 지분 70%를 인수해 출범시킨 하나손해보험이다.

6.2. 비은행 정상화접기



실적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하나금융은 2025년 연간 당기순이익 4조29억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4조원을 넘었다. 그룹 핵심이익은 11조3898억원, 비이자이익은 2조2133억원이었다. 2005년 하나은행의 순이익이 9068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0년 만에 4배 이상 커진 규모다.

2026년 1분기에도 연결 당기순이익 1조21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한 수치로, 외환은행 통합 이후 최대 분기 실적이다. 이자이익은 2조5053억원, 수수료이익은 6678억원이었다.

다만 같은 분기 하나은행의 순이익은 1조1042억원이었다. 하나증권은 자산관리와 투자금융 성장에 힘입어 1033억원을 냈다. 그룹 이익의 대부분이 여전히 은행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인수로 계열사를 채우는 단계는 끝났지만, 그 계열사들이 은행에 견줄 이익을 내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비은행 사업 재편이 함영주 회장의 3대 전략 가장 앞에 놓여진 이유다.

6.3. 글로벌과 AI 그리고 디지털자산접기



글로벌은 외환은행 통합 성과가 남아 있는 영역이다. 외환은행 편입으로 확보한 외국환과 수출입 금융, 해외 네트워크 경쟁력을 동남아와 미국, 유럽으로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2022년 대만 진출도 그 연장선에 있다.

디지털과 AI 전환은 업계 공통 과제다. 고객 데이터를 얼마나 안전하고 정교하게 분석하는지, AI를 심사와 상담, 리스크관리, 자산관리에 얼마나 책임 있게 적용하는지가 경쟁 지점이 되고 있다. 하나금융은 2018년 10월 디지털 전환 비전으로 '손님 중심 데이터 기반 정보회사'를 선포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우)과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좌)

그리고 하나금융은 또 하나의 무기를 장착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바로 디지털자산이다. 스테이블코인을 필두로 새로운 금융시장인 디지털자산을 전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26년 5월 1조32억원을 투입해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 지분 6.55%를 확보했다.

동시에 BNK금융, JB금융, iM금융, SC제일은행, OK저축은행 등과 스테이블코인 관련 MOU도 체결했다. 우군을 확보해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가 마련되면 빠르게 치고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아직 타 금융지주에 비해 커지지 못한 비은행 영역의 반전을 디지털자산으로 성공시키겠다는 목표다.
  • [1] 단자회사는 단기금융업법에 근거해 어음 발행과 할인을 주업으로 기업에 단기 자금을 제공하던 금융기관이다. 1980년대에는 기업의 주요 단기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했으나, 1990년대 금융산업 재편 과정에서 일부는 은행 또는 증권회사로 전환했고, 잔존 회사들은 1994년 종합금융회사(종금사)로 전환됐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부실 종금사 퇴출 작업이 진행됐고 마지막 '종금사' 간판을 달고 있던 '우리종합금융'도 2024년 포스증권과 합병해 라이선스만 유지하고 있다.
  • [2] 정부는 합병 후 1년 6개월 동안 합병은행 주식을 처분하되, 주가 하락으로 처분이 불가능한 잔여주식은 하나은행이 자사주로 매입하도록 하는 조건을 붙였다. 매각대금 1조1500억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다.
  • [3] 하나은행은 2000년 독일 알리안츠그룹의 지분 참여를 받아들여 하나알리안츠투자신탁운용을 설립했다. 2005년 8월, 하나은행은 보유하던 하나알리안츠투자신탁운용 지분 50% 전량을 합작 파트너였던 알리안츠 그룹에 매각했고, 이후 알리안츠자산운용은 중국 안방보험을 거쳐 2019년 우리금융그룹에 인수돼 현재 우리글로벌자산운용이 됐다.
  • [4] 여기서 말하는 온라인 보통예금은 은행 지점 단말기와 중앙전산시스템을 연결해 지점 간 예금거래를 처리하는 전산망을 의미한다. 지금의 모바일, 인터넷뱅킹으로 개설하는 예금통장과는 다른 형태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