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 기반 플랫폼, 콘텐츠 사업의 본격적인 태동은 포털 서비스의 출발과 함께한다. PC통신과 닷컴버블 그리고 모바일 시대, AI 확산기로의 전환을 거치며 생명력을 이어온 국산 포털 서비스의 역사에는 '다음(DAUM)'과 사업을 맡아온 운영사들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다.
한때 국산 1위 포털 자리를 차지했던 다음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본격적인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나스닥 상장을 검토할 정도로 아시아 내에서 주목받는 포털, IT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2000년대를 지나며 네이버, 카카오 등에 자리를 내줬지만 다음이 내놓은 혁신 서비스와 시도는 여전히 국내 이용자의 추억에 남아 있다.
다음은 지난 30여 년간 전성기와 쇠락기를 겪었다. 이재웅 쏘카 이사회 의장과 이택경 메쉬업벤처스 대표 등 공동창업자 3인이 설립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시작으로 카카오를 거쳐 현재는 업스테이지 산하에 있다. 2차례의 최대주주 변경과 닷컴버블 시대 및 웹·모바일 전환기, 생성형 AI 대확산을 헤치며 생명력을 이어온 다음의 연대기는 국내 포털, IT 시장의 흐름과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문서는 다음의 창립과 운영사들이 거쳐온 30여 년간의 역사를 조명한다. 이를 통해 카카오 합병, 업스테이지로의 피인수 등 과거 국산 1위 포털이었던 다음이 최대주주 변화와 자본시장 거래 속에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추적해본다.
2.2. 국산 최초 웹메일 한메일 성공, 독일 베텔스만 투자펼쳐보기 접기
1997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신규 서비스로 한메일을 시작했다. 한메일의 등장 이전까지 국내에는 무료 e메일 서비스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한메일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은 국내 웹메일 수요를 공략하며 닷컴버블시기 빠른 속도로 불어난 한국 온라인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한메일 서비스 이후 야후코리아나 네이버 같은 경쟁 포털 서비스, 후발주자도 차츰 공식적인 무료 웹메일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앞선 도전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국산 e메일 서비스라는 프리미엄을 가진 한메일의 점유율은 단단했다. 한메일은 출시 후 1년여 만에 회원 수 100만명을 달성했다. 이후로도 한국 웹메일 시장의 점유율 과반을 가뿐히 돌파하며 1위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한메일의 성공은 다음커뮤니케이션에게도 다양한 성장 기회를 제공했다. 무료 e메일 서비스인 만큼 한메일 자체에서는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메일을 매개로 형성된 이용자층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투자시장에서 엄청난 자산으로 여겨졌다. 성장성과 경쟁력을 인정받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은 1999년 6월 독일 언론기업인 베텔스만(Bertelsmann AG)으로부터 500만달러 한화 약 60억원 수준 자금을 투자받았다.
베텔스만은 당시 세계 제3위의 독일계 글로벌 미디어사였다. 전 세계 53개국에 뻗친 사업망과 연 150억달러, 20조원에 이르는 매출을 내는 거대 기업이었던 만큼 다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투자는 의미가 컸다. 특히 해당 투자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FI)가 아닌 전략적 투자(SI)였다는 점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베텔스만의 투자유치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포탈서비스인 한메일넷의 향후 잠재력에 대한 높은 가치 평가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며 "국내 벤처기업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해외서비스 회사와의 제휴를 바탕으로 국내 인터넷 시장을 지켜감은 물론, 세계속의 다음커뮤니케이션으로 재도약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2.3. 카페 서비스 연타석 홈런, 가파른 실적·이용자 성장펼쳐보기 접기
베텔스만의 투자 시기 다음커뮤니케이션은 한메일을 잇는 새로운 킬러 서비스 발굴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윽고 기존에 한메일넷 내에서 운영했던 동호회 게시판을 확장, 개편하면서 다음 카페의 초기 형태인 '카페한메일'을 꺼내들었다. 카페한메일은 기존에 존재하던 PC통신 기반 동호회와 달리 홈페이지를 통해 자유롭게 개설, 가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오픈 2주일 만에 2200개 동호회가 생겨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한메일, 카페한메일의 성공을 거둔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본격적인 포털 서비스 강화에 나섰다. 이를 위해 1999년 기존 한메일넷의 브랜드명을 변경하며 포털 '다음'의 시작을 알렸다. 다음은 한메일넷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260만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메일넷, 다음카페와 검색 및 쇼핑 등 포털에 필요한 대부분 서비스를 갖춘 다음은 명실상부한 국산 1위 포털 서비스로 부상했다.
브랜드명을 변경한 다음은 1999년 10월 400만, 연말 500만 이용자를 확보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어 소비자 간 거래(C2C) 서비스인 인터넷 경매서비스 '다음경매' '인터넷 생활법률 서비스' 등 신규 콘텐츠, 서비스를 꾸준히 선보이며 이용자 확보, 수익화에 박차를 가했다. 베텔스만의 투자를 바탕으로 이뤄진 독일 파이어볼과의 협력으로 강화한 검색 엔진을 '다음파이어볼'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것도 이 시기였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다음의 성장을 발판으로 1999년 연 매출 77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1998년) 대비 453% 증가한 외형을 거뒀다. 당시 분기 평균 성장률이 100% 내외에 이를 정도로 확연한 우상향 가도를 탔다. 특히 포털 사업의 핵심 매출원인 광고 사업의 경우 매출이 매분기 160%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3.1. 나스닥 상장 시도, 닷컴버블 붕괴 사태 직면펼쳐보기 접기
다음의 초기 성공을 맛본 이재웅 대표 등 경영진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은 기세를 몰아 2000년 미국 나스닥(NASDAQ) 상장 시도에 나섰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나스닥 상장 주관사로 메릴린치(Merrill Lynch & Co.), CSFB(Credit Suisse First Boston)가 나서는 등 국내외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나스닥 상장 시도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 신청을 마무리하고 발행가격을 조율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글로벌 IT 시장을 강타한 닷컴버블 붕괴 사태에 직면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1990년대 인터넷 보급 확대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확산됐던 닷컴버블은 2000년 전후 시장 기대치가 낮아지면서 급속도로 꺼졌다. 이에 따라 그동안 시장에서 주목받았던 주요 IT, 포털 기업에 대한 평가절하가 시작됐다. 이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전 나스닥에 상장됐던 중국 인터넷 기업인 소후 등 아시아 포털, IT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음 역시 닷컴버블 붕괴에 휘말리며 기업과 포털 서비스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워졌다. 결국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나스닥 상장 시도를 공식화한 지 약 20여 일 만인 2000년 7월 중순 관련 계획을 백지화했다. 이후 시장 상황과 실적 등을 감안해 차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내놨지만 나스닥 상장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3.2. 악수된 온라인 우표제, 치열해지는 국내 포털 경쟁펼쳐보기 접기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나스닥 상장이 무산된 다음 해인 2001년 상업용 e메일에 대한 요금 부과를 선언한다. '온라인 우표제'로도 불리는 해당 e메일 유료화 정책은 1000통 이상 상업성 e메일을 한메일 계정 사용자에게 보내는 기업을 대상으로 전송료를 수취하는 형태였다. 이는 2001년 말 시범서비스를 거친 뒤 2002년부터 정식 시행됐다.
앞선 e메일 유료화 정책은 글로벌 시장 기준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만 검토된 사례는 아니었다. 당시 글로벌 포털 서비스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야후 역시 이를 시도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확산, e메일 사용자 증가에 따라 스팸 메일 역시 비례해 급증하면서 다음 등 포털, 메일 서비스 운영사 입장에서도 대책이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행보는 국내 기업,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로부터 많은 논란과 반발을 샀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반발하는 기업과의 의사 조율을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인터넷 마케팅 협의회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가지는 등 설득에 나섰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기업 반발에도 다음커뮤니케이션은 2002년 4월 온라인 우표제를 강행했다. 온라인 우표제를 통한 3년간 1000억원 규모의 비용 절감, 한메일 이용자의 로열티 증대 효과 등을 내세웠지만 해당 결정은 견고했던 다음의 e메일, 이용자 점유율에 균열을 만들었다. 사이트 가입 시 한메일을 거부하는 기업,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이용자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고 이는 네이버 등 후발주자 등에게 빠른 추격을 허용하는 악수가 됐다.
3.4. 모바일 적응 실패, 마이피플 vs 카카오톡펼쳐보기 접기
네이버의 추월과 M&A 실패를 맛본 다음은 이후 재기할 절호의 기회인 모바일 전환기를 맞이했다. 2010년대부터 본격화된 국내외 시장의 모바일 혁명은 기존 웹서비스, IT 기업의 사업 패러다임을 바꿨다. 다음도 이에 대응해 기존 서비스를 개편하고 스마트폰 맞춤형 애플리케이션 등을 내놨다.
다음이 모바일 시장을 겨냥해 내놓았던 서비스는 마이피플이었다. 2010년 6월 출시된 마이피플은 스마트폰 기반 메시징, 음성통화를 제공하며 이용자를 모았다. 이후 약 출시 1년여 만에 1000만명 사용자를 확보했고 영상통화, PC 버전 제공 등 차별화를 시도하며 카카오톡 등 다른 경쟁서비스에 맞불을 놓았다.
마이피플은 초기 모바일 시장에서 상당한 수준의 이용자를 모았고 현재까지도 일부 이용자들이 추억을 회상할 정도로 나름의 경쟁력을 보유했다. 하지만 마이피플보다 한 발 앞서 출시된 카카오톡이 단단한 이용자층을 확보하며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이후로도 마이피플은 카카오톡의 이용자 증가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마이피플의 2015년 서비스 종료 시점 당시 기록했던 가입자 수는 2800만명으로 추산된다. 반면 카카오톡은 2013년 기준 글로벌 1억 가입자를 돌파했다. 월간 활성 이용자 규모(MAU)도 마이피플은 서비스 종료 시점에서 120만명 수준이었으나 카카오톡은 3600만명에 육박했다.
4.1.1. 우회상장, 김범수 39.8%·이재웅 3.28%펼쳐보기 접기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카카오 간 합병은 다음커뮤니케이션 법인이 카카오 법인을 흡수합병하는 형태였다. 다만 합병 이후 지배구조와 다음카카오로 변경되는 사명 등을 고려했을 때 실질적으로 존속, 계승되는 곳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카카오에 가까웠다. 실제로 양사 합병 과정에서의 딜 구조는 대부분 카카오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짜여졌다.
우선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카카오를 흡수합병하는 형태부터 카카오의 자본시장 우회상장을 위한 측면이 짙었다. 당시 카카오는 신규 상장도 가능했었으나 김범수 전 의장을 포함한 경영진은 자본조달 속도, 기업가치 평가 측면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합병비율도 카카오 주식 1주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발행한 신주 1.5555137주가 교부되는 방식이었고 이에 따라 기업가치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카카오의 3분의 1 수준으로 평가됐다. 결과적으로 합병 이후 다음카카오의 지배구조는 김범수 전 의장을 필두로 한 기존 카카오 주요주주와 경영진이 주도하는 형태로 굳어졌다.
김범수 전 의장은 통합법인으로 남는 다음카카오 측 지분 22.23%를 직접 보유하고 케이큐브홀딩스 지분 17.6%를 합쳐 총 39.8%에 달하는 지배력을 구축했다. 반면 다음커뮤니케이션 최대주주로 13.67% 지분을 보유했던 이재웅 전 대표는 합병 이후 보유하는 다음카카오 지분이 3.28%에 불과하게 됐다.
4.2. 카카오 서비스와의 융합, 분리되는 핵심 서비스펼쳐보기 접기
합병 이후 카카오와의 융합이 진행되면서 기존 다음 포털에서 운영했던 주요 서비스 상당수는 순차적으로 종료되거나 서비스명을 카카오에 연관하는 방식으로 개편됐다. 당시 카카오톡의 대항마로 운영됐던 마이피플은 다음카카오 출범 이후 약 8개월여 만인 2015년 6월 서비스 종료를 알렸다.
다음 아고라도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카카오의 합병 이후 종료를 맞이한 대표적인 서비스다. 다음 아고라는 2004년 처음 서비스된 이후 온라인 토론, 청원의 장 역할을 해왔다. 사회, 정치적 소통의 성격을 지닌 만큼 다음 포털에서도 주된 유입 통로를 담당했다. 합병 이후로도 다음 아고라는 5년여간 명맥을 이었지만 다른 소통 채널의 등장 등을 이유로 2019년을 끝으로 서비스를 접었다.
다음 포털 내에서 운영됐던 다음 지도와 웹툰 등은 카카오 측 서비스로 흡수됐다. 다음 지도의 경우 다음과 카카오 브랜드의 통합 과정의 일환으로 2016년 9월을 기점으로 카카오맵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미생', '마녀' 같은 인기 IP를 등장시켰던 다음 웹툰은 마이피플이나 다음 아고라, 지도보다는 오래 존속하며 합병 이후로도 독자적인 서비스를 꾸려왔다. 하지만 결국 2021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카카오웹툰으로 확대 개편되며 다른 다음 브랜드 서비스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4.3. 추락하는 검색 점유율, 애매한 10여년 동행 성과펼쳐보기 접기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카카오의 합병은 완료 이전부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지만 포털인 다음 입장에서는 10여 년간의 동행 동안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지 않았다. 합병 이후 1년여 만인 2015년 9월 통합법인의 명칭도 카카오로 변경됨에 따라 다음은 단순 포털 서비스로만 남게 됐다.
사업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카카오와의 합병은 다음에게 독에 가깝게 작용했다. 지도나 웹툰 같은 핵심 서비스의 운영이 종료되거나 카카오 측으로 분리되면서 포털로의 이용자 유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경쟁력이 약화됐다. 카카오톡은 모바일 메신저인 특성상 다음으로 이용자를 끌어오는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핵심 서비스 상당수가 분리되는 결말을 맞은 만큼 다음은 검색, 메일 등 얼마 되지 않는 서비스로 다른 포털과 경쟁해야 했다. 하지만 포털의 주요 기능인 검색에서는 과거부터 이에 집중해왔던 네이버에 크게 밀렸다. 이어 한국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낸 구글에게도 국내 시장 2위 자리를 내주며 경쟁력을 상실했다.
2014년 다음카카오 통합법인 출범 당시에도 다음은 검색 점유율이 14%대에 불과한 상태였다. 다음 검색 점유율은 이후로도 꾸준히 낮아지며 202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한 자릿수로 고정됐고 현재는 1~3% 수준까지 떨어졌다. 현재 국내 검색 점유율은 네이버가 50~60%대 점유율을 보유하고 구글이 30~40% 수준을 오가는 형태로 굳어졌다.
5.1. 사내독립기업(CIC)화, 계열사 AXZ로의 분리펼쳐보기 접기
검색 점유율에서 고전하며 카카오 내에서도 존재감이 옅어졌던 다음은 2023년 별도 CIC로 독립했다. 다음의 CIC 독립의 주된 배경은 포털 사업 체질 개선이었다. 검색 점유율 하락세가 지속됨에 따라 카카오 내부에서도 다음의 활용, 개편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상태였다. 카카오 경영진은 앞선 숙제를 해결하려면 다음을 카카오와 분리해 기획·예산 등을 분리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봤다.
다만 다음과 카카오 공동체 내부, 투자 시장에서는 CIC 독립을 향후 다음의 분리 매각 가능성과 연결 짓는 시각이 대두됐다. 특히 카카오는 2023년 전후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서비스 마비,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인해 경영 쇄신 요구를 강하게 받고 있었다. 경영 쇄신 요구에는 지나치게 많은 카카오의 사업 영역 및 계열사를 줄이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CIC 독립 이후 2년여 만인 2025년 5월 물적분할이 진행되면서 앞선 분리 매각설은 더 큰 힘을 얻었다. 카카오는 CIC였던 다음 사업 부문을 분리 독립시켜 자회사 에이엑스지(AXZ)를 설립했다. 2014년 통합법인 출범 이후 11년 만에 다음과 카카오가 재분리됐다.
앞선 물적분할과 AXZ 설립은 다음 사업 부문 내부와 노동조합으로부터 큰 반발과 분리 매각에 대한 우려를 샀다. 카카오를 이끌던 정신아 대표는 AXZ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앞선 설명이 무색하게 AXZ 매각 논의는 머지않은 2025년 말 본격화됐다.
5.2.1. 주식 교환 방식 인수, 기업가치 2000억원펼쳐보기 접기
카카오와 업스테이지 간 AXZ 거래는 주식교환 방식으로 진행됐다. 카카오가 AXZ 지분 전량을 업스테이지에 이전하고 이에 상응하는 가치의 신주를 업스테이지가 발행해 카카오가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앞선 거래는 2026년 5월 최종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카카오는 AXZ 매각, 다음 사업 부문을 넘긴 대가로 업스테이지 지분 8.44%를 취득했다. 이에 상응하는 AXZ 지분 100%의 양도가액은 1944억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2014년 합병 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평가받은 기업가치가 1조원 규모였던 것을 감안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도 10여 년 전 대비 4~5분의 1 수준으로 밸류에이션이 하락했다.
앞서 카카오는 AXZ 분사 당시에도 '다음' 브랜드 가치를 70억원 수준으로 책정했던 바 있다. 업스테이지로의 매각 과정에서는 보유 자산, 트래픽 등이 반영되며 양도가액이 크게 올랐지만 다음 사업 부문의 기업가치는 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5.3. 기업 '다음'으로의 복귀, 차세대 AI포털로의 출발펼쳐보기 접기
업스테이지에 인수된 AXZ는 2026년 7월 27일 사명 변경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AXZ는 '주식회사 다음'이란 이름으로 새출발하게 됐다. 이는 운영 포털 서비스인 다음과 사명을 일치시켜 기업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아울러 다음카카오에서 카카오로의 사명 변경 이후 '다음'이라는 이름이 10여 년 만에 다시 기업명으로 활용된 순간이었다.
사명 변경을 통해 업스테이지 산하 체제로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다음은 기존 검색과 콘텐츠, 커뮤니티 분야 역량에 더해 업스테이지 발 AI 기술을 결합할 계획이다. 특히 검색 분야에서는 기존 키워드 중심에서 벗어나 이용자 질문과 맥락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AI 검색을 강화한다.
다음을 이끄는 신규 수장은 네이버 출신 이건수 업스테이지 AI검색부문장이다. 이건수 대표는 업스테이지의 AI 역량을 융합해 다음을 AI에이전트를 적극 활용하는 AI 포털로 진화시킨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건수 대표는 다음 사명 변경 당시 "지난 30여 년간 축적해 온 다음의 신뢰와 가치를 계승하면서 AI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인터넷과 AI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