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그룹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의 최고경영자(CEO)가 유독 많은 편이다. 오너일가 수십명이 지주사 지분을 분산 보유하는 지배구조, 유가에 민감한 정유사업의 특성이 합쳐진 결과로 짐작된다. 그만큼 재무적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핵심 그룹사에서 역량을 검증받은 CFO들이 계열사 경영 전반을 책임지는 패턴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GS그룹 내부의 경영철학과 전략적 필요가 반영된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으로 해석할 수 있다.
◇CFO 25명 중 14명, 계열사 CEO로 승진
11일 THE CFO 집계에 따르면 GS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전직 CFO 25명 가운데 CEO로 영전한 인사는 절반을 넘는 14명으로 나타났다. 대상이 된 계열사는 △GS △GS에너지 △GS칼텍스 △GS리테일 △GS글로벌 △GS이피에스 △GS이앤알 △GS건설 9곳이다.
GS그룹이 전문경영인 자질로 재무 전문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안전성을 경영의 핵심 초점으로 삼는 보수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LG그룹을 허씨와 구씨 일가가 공동경영했던 시절을 돌아보면 구씨 가문이 사업 확장 등 바깥일을 책임졌고 허씨 가문은 재무, 매니지먼트 등 내실을 도맡았다.
GS그룹의 초대 총수에 오른 허창수 명예회장 역시 과거 LG그룹에서 재무와 관리파트를 중심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에도 이런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이다. 포트폴리오가 정유화학을 중심으로 이뤄져 수출 비중이 크고 유가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현금흐름 관리나 리스크 헤지 등 재무적 통제가 장기 생존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한몫했다고 여겨진다.
특히 지주사인 GS의 CFO들은 한 명도 예외없이 계열사 CEO로 이동했다. 사실상 CEO로 영전하기 위한 징검다리 단계다. 그룹 전체의 자금흐름과 투자전략을 살피는 자리다 보니 인사가 재무적, 전략적 통찰력을 훈련하는 경영자 육성 시스템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GS의 초대 CFO 이완경 재무팀장의 경우 GS이피에스 대표, GS글로벌 대표를 거쳐 코스맥스비티아이로 적을 옮겼다. 후임 CFO였던 홍순기 부회장은 GS 대표로 재직 중이고, 김석환 CFO는 GS이앤알 대표를 지내다가 지난해 말 GS이앤알 대표에 올랐다. 현재 4대 CFO인 이태형 부사장이 재무팀장으로 있다.
이중 홍순기 부회장은 GS그룹의 CFO 중용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LG그룹에서 GS가 분리된 이후 약 20년간 오너일가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으며 그룹에서 유일하게 부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1986년 호남정유 시절 GS칼텍스에 입사했다. 외환위기 당시 LG 구조조정본부에서 경영체질을 개선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2004년 GS 출범과 업무지원팀장, 재무팀장(CFO)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홍 부회장이 재무팀장으로 재직한 기간만 따져도 11년이다. GS는 쭉 오너일가와 전문경영인 투톱 대표체제를 유지해온 만큼 전문경영인이 외부활동보다 안살림을 주로 챙긴다. CFO 출신들이 이 자리를 주로 맡는 이유로 짐작된다.
◇유가·환율 리스크 속 재무관리 중요성 두각
GS에너지와 GS칼텍스, GS이피에스 등 정유와 에너지계열 CFO들 역시 CEO로 승진한 사례가 상당했다. 정유화학과 에너지는 유가에 따른 정제마진 변화와 환 헤지 등이 성과를 좌우한다. 현금흐름과 운전자본, 부채관리가 곧 전략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최근 그룹 차원에서 신사업 발굴을 위해 전략통 CFO를 기용 중인 것과 별개로, 그간 재무관리가 우선된 배경이라 풀이된다. 특히 GS칼텍스는 과거 외화 자산과 외화 부채를 상계시키는 방식의 환 리스크 체계를 정착시기기도 했다.
그간의 인사 사례를 보면 GS에너지에선 조효제 CFO가 GS파워 대표를 역임했다. GS칼텍스의 경우 나완배 CFO가 GS에너지 대표, 엄태진 CFO는 GS스포츠 대표를 거쳤으며 유재영 CFO는 작년 말 GS파워 대표로 발령받았다. 오너 4세인 허서홍 GS리테일 대표 역시 GS에너지 CFO 출신이다.
반대로 GS리테일은 CFO가 계열사 CEO로 발탁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룹의 중심인 에너지, 정유사업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4명의 전임 CFO 중 계열사 CEO로 이전한 인물은 정택근 전 부회장이 유일했다. 그러다 올 초 GS리테일에서 호텔부문 등을 인적분할한 GS피앤엘이 새롭게 출범하면서 김원식 CFO가 초대 대표 자리에 앉았다.
또 GS건설은 CFO가 계열사로 옮기지 않고 내부에서 그대로 대표이사로 승진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그룹 계열사긴 하지만 지배구조상 GS 종속회사가 아니고 허창수 회장을 비롯한 고(故) 허준구 명예회장의 자손들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로 그룹에서 유리돼 있는 만큼, 다른 계열사로 전출된 사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GS건설은 4명의 전임 재무책임자 중 허명수 CFO와 임병용 CFO가 GS건설 대표를 역임했다. 김태진 CFO의 경우 GS건설 CEO에 오르진 않았지만 작년 말 사장으로 승진해 위기관리 총괄임원(CRO)을 맡다가 올 초부턴 새로 신설된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겸하고 있다. 김시민 CFO는 GS건설이 운영하는 엘리시안리조트 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