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오일뱅크는 조선업 불황기에 대규모 배당으로 지주사 HD현대의 수익을 지탱한 전통의 현금 창출원(캐시카우)이다. 그러나 본업인 정유와 다각화 사업인 화학이 모두 불황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과거와 같은 이익 기여도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룹차원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를 위시한 에너지-화학부문의 이익 회복을 중장기 과제로 두고 있다. 단기적으로 이익을 짜내기보다는 신사업 투자와 구조 개편 등 근본적 체질개선을 통해 활로를 찾겠다는 방침이다.
◇이익 감소에 줄어드는 배당, 고민 커지는 지주사 HD현대 HD현대오일뱅크는 2025년 1~3분기 연결기준으로 누적 순손실 1774억원을 기록했다. 3분기만 놓고 보면 139억원의 순이익을 내기는 했으나 이대로라면 지난해 순손실 2997억원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를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HD현대오일뱅크의 연간 순이익은 2022년 1조6327억원을 기록한 뒤 이듬해 1556억원으로 급감했으며 지난해에는 적자로 들어섰다. 정유업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제품 수요 감소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국제유가의 변동성 확대로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외부 기업들과 조인트벤처(JV)를 결성하는 방식으로 석유화학사업에도 진출해 있다. 롯데케미칼과 6대 4로 출자해 설립한 HD현대케미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석유화학 역시 중국·중동발 제품 공급과잉으로 인해 불황을 겪고 있다. HD현대케미칼은 2022년 순이익 2020억원에서 이듬해 순손실 1562억원으로 적자전환했으며 지난해 순손실 2837억원, 올해 1~3분기 누적 순손실 4093억원으로 적자를 더해가고 있다.
그룹 지주사 HD현대로서는 HD현대오일뱅크의 순이익 감소가 배당 축소로 이어진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HD현대오일뱅크의 배당총액은 2022년 5683억원에서 이듬해 3397억원, 지난해 600억원까지 줄었다. 지난해에는 적자에도 배당을 실시했지만 올해도 적자배당이 이어질 것인지는 예단할 수 없다.
HD현대는 HD현대오일뱅크의 지분 73.85%를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HD현대오일뱅크의 배당은 대부분 HD현대로 흘러들어간다. HD현대는 지난해 총 3249억원의 배당금을 자회사들로부터 수취했는데 이 중 72.6%에 해당하는 2360억원이 HD현대오일뱅크의 2023년 결산배당 및 2024년 중간배당이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결산배당 없이 중간배당만을 실시했다. 때문에 올해 1~3분기 HD현대의 배당수익에는 HD현대오일뱅크의 기여분이 없다. 조선과 전력기기사업의 호조 덕분에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마린솔루션, HD현대일렉트릭 등 계열사가 합산 3894억원의 배당을 밀어올렸지만 HD현대로서는 HD현대오일뱅크의 배당여력 약화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유 투자에 석화 계열사 지원, 무거워지는 재무관리 과제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대산산업단지에 지속가능항공유(SAF) 생산시설 건립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 충청남도 및 서산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31년까지 지속되는 장기 투자계획으로 규모가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해외의 투자사례를 고려할 때 조 단위의 금액이 투입될 것으로 본다.
석화 자회사 HD현대케미칼은 현재 롯데케미칼과 나프타 분해설비(NCC)를 통합 운영하는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과 함께 HD현대케미칼에 8000억원(각각 4000억원)을 유상증자 방식으로 출자해 HD현대케미칼을 지원하는 자구안도 내놓았다.
당장 큰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포트폴리오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업계에서는 중장기적인 이익체력 확보의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HD현대오일뱅크가 투자를 버틸 만한 재무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전제조건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2025년 3분기 말 연결기준 부채비율이 226.8%로 높은 수준이다. 차입금의존도는 45.0%로 안정적 기업의 기준인 30%를 상회하며 총차입금은 2022년 말 8조5620억원에서 올 3분기 말 9조2174억원으로 점진적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2~2024년에는 영업활동을 통해 해마다 1조원 이상의 현금흐름을 만들어냈으나 정유와 화학은 신규 투자가 아니라도 설비 관리를 위해 적지 않은 자본적 지출(CAPEX)을 요구하는 산업이다. 이 기간 HD현대오일뱅크의 잉여현금흐름은 1780억원, -2734억원, 5868억원으로 널을 뛰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수행 중인 정춘섭 경영지원본부장 전무는 물론이고 대표이사인 송명준 사장도 지주사 CFO를 역임 중인 재무 전문가다. 그룹에서 HD현대오일뱅크의 재무 관리에 그만큼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송 사장의 경우 HD한국조선해양의 재무지원실장(CFO)도 겸직하고 있었으나 앞서 8월 내부 인사를 통해 HD한국조선해양 CFO에서는 물러났다. HD현대오일뱅크의 현안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의 인사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