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부채 다이어트’에 나섰던 국내 항공업계가 다시 빚을 늘리고 있다. 기단 교체와 노선 확대를 위한 투자 부담, 잇단 잉여현금 순유출이 맞물린 탓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대형사와 저비용항공사(LCC) 모두 레버리지 확대 흐름이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1년 새 4조 불어난 차입금…현금 방어력은 약화 THE CFO가 주요 항공사 6곳의 합산 순차입금(리스부채 포함)을 집계한 결과 2025년 9월 말 기준 17조5736억원으로 나타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티웨이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의 별도 순차입금을 합친 수치다. 전년 같은 기간 12조5000억원 수준이었는데 40% 넘게 확대됐다.
항공사들의 순차입금은 2020년 23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 그러다 매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2023년 11조원대까지 줄었는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차입이 늘어난 이유는 항공사마다 잉여현금흐름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부족한 자금을 외부 자금으로 메우거나 보유 현금을 헐어 쓰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작년 9월 말 6개 항공사의 총차입금은 23조6262억원으로 전년 동기(19조5107억원) 대비 21.1% 불어났다. 반면 현금성자산은 13.5% 줄어든 6조526억원 수준에 그쳐 늘어난 빚을 방어하지 못했다.
◇'기단 현대화' 대한항공, 순차입금 11조 돌파 특히 전체 항공사 순차입금의 63%에 달하는 규모가 대한항공 몫이었다. 9월 말 기준 11조132억원으로 전년 동기(6조4914억원) 대비 4조5000억원 이상, 비율로는 69.7%나 급증했다. 2022~2023년 5조원대까지 낮췄던 순차입금이 다시 두 배로 뛴 것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대금이 나간 데다 기단 세대교체 작업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드림라이너(꿈의 항공기)’로 불리는 보잉 787-10 등 신형 항공기를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항공기 도입은 사용권자산과 리스부채 인식을 동반해 부채 총액을 필연적으로 끌어올린다. 이에 따라 총차입금은 1년 새 15조원대로 늘어난 반면, 현금성자산은 4조7000억원대에서 4조51억원으로 약 7000억원 감소했다.
다만 차입금 중 7조원 이상이 리스부채로 이뤄져 있고, 여전히 4조원대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차입금 증가는 계획된 부채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차입금의 절대 규모를 줄였지만 유동성 금고도 같이 축소된 케이스다. 작년 9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순차입금은 4조9784억원으로 전년 동기(5조1181억원) 대비 2.7%(1397억원) 감소했다. 총차입금을 4000억원 넘게 줄였으나 빚을 갚느라 현금을 소진한 데다 영업활동에서 들어오는 돈도 줄면서 현금성자산이 2700억원 빠져나갔다. 순차입금이 소폭 감소에 머무른 배경이다. 대한항공과의 통합 전까지는 자체 현금흐름만으로 빚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여건으로 여겨진다.
◇제주항공·티웨이 '공격 투자'…진에어만 무차입 LCC 중에서는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의 순차입금 증가가 두드러졌다. 특히 티웨이항공은 2025년 9월 말 325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1218억원) 대비 166.8%나 급증했다. 6개 항공사 중 가장 큰 증가폭이다. 유럽 4개 노선 취항을 위해 중대형 항공기를 도입하고 현지 인프라 구축에 돈을 들인 결과로 풀이된다. 덕분에 매출은 늘었지만 우회 항로 이용에 따른 연료비 부담, 초기 정착 비용 등으로 순손실을 보고 있다.
또 제주항공은 9월 말 순차입금이 8492억원으로 1년 전(4858억원)보다 74.8% 증가했다. 기존의 운용리스 방식을 줄이고 B737-8 등의 항공기를 직접 구매(금융리스)하는 운영구조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영향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도입 초기에는 대규모 구매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운임 경쟁이 심화된 와중에 투자도 늘면서 순차입금을 밀어 올렸다.
에어부산의 경우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보다는 증가폭이 작았지만 여전히 순차입금이 확대됐다. 9월 말 에어부산의 순차입금은 57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4% 늘었다. 이 기간 총차입금이 5% 불어나기도 했지만 더 큰 원인은 현금 감소에 있다. 잉여현금이 800억원에 가까운 순유출을 기록하면서 현금성자산이 1226억원으로 30%가량 줄어든 탓이다.
반대로 진에어는 보수적 레버리지가 두드러졌다. 2025년 3분기 말 순차입금이 마이너스(-) 1702억원으로 빚보다 현금이 많았다. 6개 항공사 중 유일하게 순현금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빚을 내 덩치를 키우기보다 투자를 최소화하고 현금을 쌓은 덕분이다. 총차입금은 4100억원 수준인 반면 현금성자산은 5800억원을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