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금이 25조원을 넘어섰다. 언뜻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재무 안정성이 강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실질은 단순치 않다.
금고를 불린 동력의 상당 부분이 본업에서 벌어들인 현금이 아니라, LG화학의 대규모 차입이나 LG전자가 자회사 기업공개로 확보한 일회성 자금에서 생겼기 때문이다. 이 두 회사의 보유현금이 그룹 전체 유동성의 80%에 달한다.
2025년 말 LG그룹 7개 주요 계열사들의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등 포함)은 25조772억원으로 집계됐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상장사 5곳과 △LG CNS △HS애드 등 비상장사 2곳의 연결 재무지표를 단순 합산한 값이다.
합산 현금성자산 추이를 보면 전년 말(21조1962억원)보다 18.3%(3조8809억원)가량 증가했고, 2020년과 비교하면 5년 사이 8조7000억원 가까이 많아졌다. 이중 LG화학과 LG전자가 보유한 몫이 19조7000억원. 그룹 전체 현금성자산의 78.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변화가 컸던 계열사는 LG화학이다. LG화학의 현금성자산은 2020년 4조원에 못 미쳤으나 지난해 말엔 10조9028억원까지 불었다. 5년간 2.8배로 증가한 셈이고, 2025년 한 해에만 2조8344억원(+35.1%)이 추가로 쌓였다. 현재 그룹 합산 현금의 43.5%를 LG화학이 들고 있다.
문제는 이 곳간이 이익창출을 통해 자라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2020년부터 2025년 사이 LG화학의 총차입금은 23조원 넘게 늘었다. 이 기간 현금 증가폭을 웃도는 규모의 빚 조달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대부분은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에서 대규모 투자를 위해 끌어왔다.
하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와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금액의 수령 지연 등으로 조달과 집행 시점 사이 시차가 벌어지면서, 유동성 여력이 일시적으로 곳간에 쌓인 것으로 보인다. 추후 설비 투자가 본격화할 경우 다시 소진될 자금인 만큼 순수한 유동성 여유로 해석하긴 한계가 있다.
LG화학 다음으론 LG전자의 보유현금이 많이 늘었다. LG전자는 2024년 말 현금성자산이 7조6203억원이었는데 2025년 말 8조7962억원으로 1년 만에 1조1759억원 증가했다. 주요 원인은 지난해 10월 진행한 인도법인의 현지 증시 상장이다. 전량 구주매출 방식인 만큼 모회사 LG전자가 보유하던 지분 일부를 매각한 구조이며, 이를 통해 13억달러가 유입됐다.
또 LG CNS의 경우 보유한 현금성자산이 2024년 말 1조1632억원에서 2025년 말 1조6794억원으로 44.4%(5162억원) 증가했다. 상장으로 들어온 공모자금과 디지털전환, AI(인공지능) 인프라 수요 확대에 따른 영업현금흐름 호조가 동시에 곳간을 채웠다.
반대로 현금이 눈에 띄게 줄어든 계열사로는 LG디스플레이가 있다. 작년 말 현금성자산은 1조5727억원이다. 전년 대비 4495억원(22.2%) 감소했고 2020년과 비교하면 2조7000억원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총차입금도 같이 줄었지만, 현금 소진 속도가 차입금 감소 속도를 앞지르면서 유동성 여유를 아직 회복하진 못했다.
나머지 계열사인 LG유플러스와 LG생활건강, HS애드의 경우 보유 현금이 감소하긴 했으나 안정적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LG유플러스의 현금성자산은 2024년 말 9653억원에서 2025년 말 8904억원으로 소폭 축소됐다. 본업에서 나오는 영업현금흐름이 연간 CAPEX(유무형자산 취득)나 배당지급 등 지출 규모와 대체로 비슷하다 보니 현금 보유분이 크게 증감하지 않는다.
이밖에 LG생활건강은 작년 말 현금성자산이 1조1870억원으로 전년 대비 6.6%(841억원) 적어졌다. 다만 여전히 총차입금의 5배를 웃도는 만큼 재무 완충력만 놓고 보면 그룹에서도 손에 꼽힌다. 또 HS애드는 같은 기간 858억원에서 487억원으로 현금성자산이 줄었다. 추세적인 감소세를 나타내곤 있지만 아직 순현금 상태를 유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