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가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소비자보호 우수 카드사로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불과 1년 전에는 현대커머셜과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 CCO를 같이 쓴다는 이유로 금감원 지적을 받았거든요.
찾아보니 임원 겸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현대차그룹 금융 3사가 대표이사부터 주요 관리조직까지 상당 부분을 공유했거든요. 그러다 2021년부터 이 '한 몸 경영'이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공교롭게도 정의선 회장이 취임한 바로 다음 해입니다.
#겸직이 일반적이었던 금융 3사
금감원은 지난해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의 CCO 겸직을 문제 삼았습니다. 한 사람이 두 회사의 소비자보호를 책임지다 보니 독립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본 겁니다. 현대카드는 이후 전담 CCO를 따로 선임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은 CCO만 같이 쓴 게 아닙니다. 2019년 말 현대커머셜 사업보고서를 보면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구매실장',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리스크관리실장' 같은 직책이 나옵니다. 법무, 감사, 정보보안, IT, HR 같은 관리조직도 공유했습니다. 공시를 대조해보면 정태영 부회장을 포함해 3사에 동시에 걸쳐 있던 임원이 최소 17명입니다.
회사는 세 개인데 조직은 거의 하나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구조의 꼭대기에 정태영 부회장이 있었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사위입니다. 현대종합상사, 현대정공, 현대모비스, 기아 등을 거쳐 2003년 현대카드로 이동했는데요. 하필 그해 카드대란이 터집니다.
그해 10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대표를 동시에 맡고 2007년 현대커머셜이 만들어지면서 초대 대표까지 맡습니다. 여기에 GE가 2004년 현대캐피탈, 2005년 현대카드에 지분 투자하면서 자본과 함께 리스크관리, 자금조달 같은 글로벌 금융회사 운영 노하우도 들어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정태영 부회장은 현대카드에,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까지 맡게 됐습니다. 현대차그룹 금융사업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 셈입니다. 이때 세 회사의 사람과 조직까지 하나로 묶는 통합경영 체제가 만들어집니다.
#정의선 취임 1년 뒤 무슨 일이 있었나
이제 2020년.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그룹 회장에 취임합니다. 당시에도 정태영 부회장이 금융 3사 대표를 모두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3사에 각각 전문경영인이 각자대표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2021년 9월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캐피탈 대표에서 물러납니다. 2003년부터 18년 만이었죠. 정의선 회장 취임 직후 1년 만입니다.
시점만으로 정의선 회장이 정태영 부회장을 밀어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 만들어진 '정태영 금융 3사'에서 회사 하나가 처음 떨어져 나간 상징적인 변화였습니다.
왜 하필 캐피탈이었을까요. 역할을 보면 답이 보입니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차와 기아가 자동차를 팔기 위해 필요한 전속 금융회사, 이른바 캡티브 금융사입니다. 자동차를 살 때 할부, 리스, 대출을 붙여주는 곳이죠.
현대카드는 신용카드라는 독립적인 사업이 있고 현대커머셜은 기업금융과 상용차 금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버스, 트럭 등에 금융을 대주는 사업이고요. 반면 승용차 금융을 담당하는 현대캐피탈은 자동차 판매 전략과 떼어놓기가 어렵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현대캐피탈이 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미국입니다. 현대캐피탈아메리카, HCA라는 회사가 있는데요. 1989년 9월 미국에서 설립됐습니다. 처음부터 목적이 현대차의 미국 판매를 금융으로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 지분구조가 재미있습니다.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 HMA가 80%, 기아 미국 판매법인이 20%를 갖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판매법인이 직접 주주인 겁니다. 이름은 '현대캐피탈아메리카'인데 현대캐피탈 자회사가 아닌 건데요.
하는 일을 보면 이유가 더 명확합니다. 미국에서 현대차·제네시스·기아를 사는 고객에게 할부와 리스를 제공하고 딜러에게는 재고금융까지 해줍니다. 자동차를 파는 회사와 돈을 빌려주는 회사가 아예 지분으로 붙어 있는 겁니다. 현대캐피탈이 왜 자동차 본업과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려운지 확실히 보여줍니다.
국내 현대캐피탈뿐 아니라 해외 자동차금융 자체가 현대차·기아의 판매전략과 맞물려 움직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정태영에게 금융회사 하나를 떼어냈다"기보다 자동차금융을 자동차 본업 쪽으로 다시 붙였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사람만 움직인 것도 아닙니다. 지분도 움직입니다. 원래 현대캐피탈에는 GE캐피탈이 43.3%를 가진 2대 주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GE가 금융사업을 축소하면서 2015년부터 지분을 정리하는데요. 이때 기아가 20.1%, 현대차가 3.2%를 직접 사들입니다.
그런데 2021년에 또 지분이 움직입니다. 공교롭게도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캐피탈 대표에서 물러난 바로 그해입니다. 기아가 현대차로부터 현대캐피탈 지분을 추가로 사들입니다. 약 6058억원 규모입니다. 2021년을 전후해서 정태영 부회장이 빠지고 공통조직이 갈라지고 지분도 현대차·기아 중심으로 재편된 겁니다. 사람도 자동차 쪽, 조직도 자동차 쪽, 지분도 자동차 쪽으로 움직인 셈입니다.
#정태영 대신 현기차 CFO들 선임
17명의 겸직 임원들은 2021년 현대캐피탈이 떨어져 나가는 과정에서 공통조직과 실무임원 겸직도 정리됩니다. 그래서 이 변화를 단순히 '정태영 현대캐피탈 대표 사임'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2000년대부터 이어진 금융 3사 통합경영 체제가 해체되기 시작한 겁니다.
겸직은 남는데 사람이 바뀝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서강현입니다. 2021년 현대차 재경본부장이었던 인물인데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3사의 이사를 동시에 맡습니다. 예전에는 정태영 부회장이 세 회사를 연결했다면 이제 현대차 재무임원이 그 자리에 들어온 겁니다.
2024년에는 이 역할을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이 이어받습니다. 현대차에서 재경본부장이 CFO거든요. 여기에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도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 이사를 겸합니다. 이 사람도 CFO입니다.
겸직이 사라진 게 아니라 연결하는 사람이 바뀐 겁니다. 정태영 중심의 금융 3사가 해체되고 그 연결고리를 현기차 재경라인이 이어받았습니다. 지배구조 변화만 놓고 보면 정의선 회장의 금융계열사 장악력이 강해졌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회장 취임 이후 사람, 조직, 지분의 변화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건 확인되니까요. 정태영 부회장 중심으로 금융 3사가 서로 묶여 있던 구조가 풀리면서 그룹 차원의 통제는 강해졌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왜 카드·커머셜은 남았나
한 몸처럼 움직인 현대차그룹 금융 3사 중에 왜 캐피탈만 떨어져 나가고 카드와 커머셜은 정태영 부회장이 맡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지분구조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에서 정태영 부회장은 지분 없는 경영자였습니다. 그런데 현대커머셜에서는 정태영 부회장과 정명이 씨가 직접 주주입니다.
오너 일가가 지분을 가진 곳인데요. 지분 구조는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현대차 41.48%, 정명이 27.91%, 정태영 13.91%가 됩니다. 부부가 합치면 41.82%. 최대주주입니다. 여기서 하나가 더 연결됩니다. 현대커머셜이 현대카드 지분 34.6%를 사들입니다. 그러면서 정태영·정명이 → 현대커머셜 → 현대카드라는 지분 연결고리가 만들어집니다. 반면 현대캐피탈에는 이런 개인 지분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정태영 → 카드·캐피탈·커머셜이었다면 지금은 구조가 달라졌습니다. 한쪽에는 정태영 → 카드·커머셜, 다른 한쪽에는 현대차·기아 → 캐피탈이라는 두 축이 선명해진 겁니다. 한집에 살다가 방을 나눈 느낌인데요. 카드와 커머셜은 여전히 붙어 있고 캐피탈은 자기 방이 생긴 셈입니다.
재미있는 건 현대차 재경라인은 세 방에 모두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각 회사의 경영은 갈라졌지만 그룹 차원의 연결고리는 남아 있는 거죠. 처음 얘기했던 카드·커머셜 CCO 겸직도 이런 역사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캐피탈은 상당 부분 분리됐지만 카드와 커머셜에는 정태영 부회장과 지분이라는 연결고리가 남았습니다. 과거 금융 3사 '한 몸 경영'의 흔적이 두 회사에는 일부 남아 있는 셈입니다.
정태영 부회장이 금융 3사를 함께 이끌던 시절에는 사람도 조직도 같이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정의선 회장 체제가 들어선 뒤 자동차와 가장 가까운 현대캐피탈부터 달라졌습니다. 정태영 부회장이 빠지고 공통조직은 갈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금융 3사의 연결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연결하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정태영 부회장이었다면 지금은 현대차와 기아 CFO들인거죠. 결국 누가 세 회사를 연결하느냐를 따라가 보면 현대차그룹 금융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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