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완 우리은행장(
사진)은 은행 뿐만 아니라 그룹을 대표하는 키맨이다. 우리금융이 최근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성사시키고 우리투자증권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으나 여전히 그룹 중추는 우리은행이다. 정 행장이 우리은행 경영 성과를 극대화해야 그룹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 행장은 임 회장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가 중심으로 계열사 사장단을 꾸리고 있는 임 회장이 가장 신뢰하는 내부 출신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임 회장과 공유한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은행 조직 문화를 쇄신하는 게 임기 중 최대 과제다.
◇"상대평가 과도", "1은행 1거래소 폐지" 소신파 면모 갖춘 리더 정 행장은 1968년생으로 포항제철고등학교, 경북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1995년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중소기업그룹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고 지난해 말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의 뒤를 이어 56대 행장에 취임했다.
정 행장 선임을 놓고 상업, 한일 교차 선임 관행이 이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그는 행내에서 계파색이 옅은 임원으로 분류된다. 정 행장 입행 후 3년 만에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합병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후 정 행장은 경력의 대부분을 통합 우리은행에서 보냈다.
행 안팎에서 주목하는 정 행장의 이력은 2003년 런던지점 과장 시절이다. 당시는 평화은행을 흡수합병한 통합 우리은행 출범 직후로 중간 관리자급 인력이 넘쳐나던 시기다. 정 행장은 또래 직원 중 두각을 드러내며 글로벌 금융 허브인 런던에 파견됐다. 런던지점 부임은 같은 시기 런던 재경관으로 근무하던 임 회장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20여년 간 이어진 정 행장과 임 회장의 관계가 지난해 행장 최종 후보 추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외부 출신으로 행내 인사와 함께 근무하며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인 임 회장 입장에서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정 행장은 허심탄회하게 경영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사다.
다만 런던에서의 인연 만으로 행장 자리를 맡겼다고 보긴 어렵다. 임 회장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조 전 행장의 경우 영업력을 인정받아 CEO로 추천됐다. 내부에서는 임 회장과 정 행장의 '소신파' 기질이 통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임 회장은 회장 자리에 도전하는 단계부터 우리금융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금융이 민영화 후에도 민간 금융회사에 걸맞지 않은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공연하게 드러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간 계파 갈등도 청산해야 할 문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원장 시절부터 유명했던 직설적인 화법이 우리금융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정 행장도 못지않게 소탈한 면모가 있다. 그는 행장 후보로 추천된 후 첫 출근길에서 우리은행의 성과 평가 체계가 과도하게 단기적이고 상대평가 중심이라고 진단했다. 전임 회장 부정대출 사건이 부각되던 시점에 원론적인 입장이 아닌 본인의 소신을 가감없이 밝힌 것이다. 지난달 국민의힘 정무위원회 위원들과 은행장 간담회에서 정 행장이 앞장서 '1은행 1가상자산거래소' 원칙 폐지를 주장한 것도 그의 솔직함을 보여주는 일화다.
◇계파 갈등 봉합·영업점 문화 재정립 과제 임 회장은 정 행장을 내세워 우리은행 조직 문화를 혁신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100억원 규모 횡령 사건, 전임 회장 친인척 부정대출 등 임기 중 잇따른 내부통제 부실로 홍역을 치른 임 회장 입장에선 우리은행 내부의 문제를 직시하고 개혁 의지를 가진 인사가 필요했다. 오랜 인연으로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정 행장을 적임자로 봤다.
정 행장은 행내 계파 갈등 해소에도 앞장설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중소기업그룹장 시절 상업은행 출신으로 다른 계파에 속한 조 전 행장과 호흡을 맞췄다. 조 전 행장이 추진하는 중소기업 영업 강화 선봉에 섰던 인물이 정 행장이다. 정 행장은 취임 전후에도 계파와 관계 없이 성과 중심 인사를 하겠다는 원칙을 거듭 밝혔다.
영업점 문화를 재정립하는 것도 정 행장에게 주어진 과제다. 정 행장은 영업점 KPI를 수정해 상대평가 비중을 줄이고 절대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과도한 실적주의를 지양하고 내부통제를 비롯해 조직에 꼭 필요한 업무를 챙기자는 취지다. 또 과당 경쟁을 지양하되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원칙도 수립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진완 행장은 임직원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업무 효율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며 "임종룡 회장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 행장이 됐다기보다 조직문화 개혁을 비롯한 경영 지향점이 일치해 낙점됐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