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자금 조달 지형이 바뀌고 있다. 공모채에서 사모채로, 또 메자닌으로 중심축이 이동했다.
회사채시장에선 요구하는 금리가 높아졌고 발행 여건이 악화됐다. 기업들은 만기를 줄이고 조달 경로를 바꿨다. 기준금리 인상은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된 뒤에 따라왔다. 올해 상반기 대기업 계열사가 발행한 회사채의 평균 표면금리는 4.43%로 1년 전보다 0.89%포인트 올랐고 공모 일반사채 발행액은 11조6000억원 줄었다.
공모채 시장에서 밀려난 자금은 사모채와 영구채, 메자닌, P-CBO 등으로 이동했다. 이 네 가지 조달 방식이 대기업 전체 발행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9.5%에서 올해 20.5%로 뛰었다.
◇ 기준금리 오르고 스프레드 벌어져 THE CFO가 2024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회사채 발행 8695건을 전수 집계한 결과 대기업 계열 발행 법인 155곳이 올해 상반기 발행한 회사채 390건의 단순평균 표면금리는 4.43%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187곳이 438건을 발행했을 때의 평균 3.54%보다 0.89%포인트 높다.
시장금리는 연초부터 움직였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월 초 2.935%에서 7월 13일 3.809%로 87.4bp 올랐다. 6월 8일에는 연중 최고치인 3.940%까지 치솟았다. 회사채 금리는 더 가파르게 올랐다. 무보증 회사채 AA- 3년물 금리는 연초 3.459%에서 7월 14일 4.582%로 112.3bp 상승해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BBB- 3년물도 같은 기간 9.303%에서 10.387%로 108.4bp 올랐다. 10%를 넘어선 것이다.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의 차이인 크레딧 스프레드도 벌어졌다. AA- 3년물 기준 연초 47bp였던 스프레드는 7월 중순 69bp 수준까지 확대됐다. 기업이 같은 돈을 빌리더라도 시장이 요구하는 위험 프리미엄이 커졌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이 흐름의 출발점이 아니라 확인에 가까웠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16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올렸다. 2023년 1월 이후 3년 반 만의 첫 인상이다.
인상 배경으로는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3.2%로 2023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점과 1분기 성장률 1.8%, 가계부채와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세 등이 제시됐다. 금통위는 의결문에서 "향후 통화정책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음 금통위는 8월 27일 열린다.
◇ 평균 4.43%, 만기는 2.88년 대기업계열 155곳의 상반기 회사채 발행액은 32조871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1조6791억원보다 8조8072억원 감소했다. 발행 법인 수는 187곳에서 155곳으로 발행 건수는 438건에서 390건으로 함께 줄었다.
금리 상승은 평균값만 끌어올린 것이 아니다. 고금리 발행 자체가 늘었다. 표면금리 6% 이상인 발행의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4.7%에서 올해 9.0%로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만기도 짧아졌다. 영구채를 제외한 대기업 발행 회사채의 평균 만기는 2024년 상반기 4.37년에서 지난해 3.15년, 올해 2.88년으로 줄었다. 2년 사이 1년 반 가까이 짧아졌다. 만기가 짧아지면 기업의 차환 부담은 커진다. 금리가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다시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대기업이 같은 금리를 부담한 것은 아니다. 신용도가 높은 기업은 여전히 공모채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다. 대기업 계열사가 상반기에 발행한 1000억원 이상 공모채 105건의 평균 표면금리는 3.87%, 평균 만기는 3.00년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3.30%, 현대제철 3.48%, KT 3.49%, CJ제일제당 3.54%, LG유플러스 3.66% 등 최상위 발행사들은 3%대 중반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만기가 다른 트랜치를 함께 발행해 3년물을 중심으로 5년물까지 소화시켰다. 같은 대기업이라도 신용도와 시장 선호도에 따라 조달 조건이 갈린 것이다.
◇ 공모채 11조6000억원 사라져 대기업의 조달 구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공모채의 감소다. 대기업 계열사의 공모 일반사채 발행은 지난해 상반기 357건, 37조7142억원에서 올해 251건, 26조1171억원으로 줄었다. 발행액만 11조5971억원, 31% 감소했다. 평균 표면금리는 3.29%에서 4.03%로 올랐다.
공모채 시장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다른 조달 수단으로 이동했다. 대기업 계열사의 사모 발행 비중은 건수 기준 지난해 상반기 18.3%에서 올해 35.6%로 높아졌다. 올해 상반기에는 대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세 건 중 한 건 이상이 사모 방식으로 소화됐다.
회사채 시장 전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회사채 순발행액은 1조878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0.5% 급감했다. 반면 은행채 발행액은 132조원으로 47.5% 늘었다. 한국은행 집계에서도 대기업 대출은 3조4000억원 증가한 반면 회사채는 2조9000억원 순상환됐다. 공모채 시장에서 조달하기 어려워진 기업들이 은행으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으로 이동하지 않은 자금은 회사채 시장 안에서 다른 조달 경로를 찾았다. 대기업 계열사가 상반기에 발행한 사모 일반사채·영구채·메자닌·P-CBO는 모두 139건, 6조7548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81건, 3조9649억원보다 건수는 72%, 금액은 70% 늘었다.
대기업 전체 발행액에서 공모채 이외의 4가지 조달 수단이 차지하는 비중도 9.5%에서 20.5%로 뛰었다. 대기업이 조달한 금액의 5분의 1이 전통적인 공모채 시장을 벗어난 셈이다.
조달 방식마다 배경은 다르다.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아 부채비율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신 6%대 금리와 콜옵션 등의 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상반기 대기업 영구채 15건의 평균 표면금리는 6.13%였다. 메자닌은 전환권이나 신주인수권 등을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대신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대기업 메자닌 16건의 평균 표면금리는 2.23%로, 이 가운데 13건은 표면금리가 0%였다.
P-CBO는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정책보증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 대기업 계열사는 2024년 상반기 12곳 14건 3175억원에서 올해 20곳 28건 7868억원으로 2년 만에 2.5배가 됐다. 사모 일반사채는 건수가 49건에서 80건으로 늘어난 반면 금액은 1조6445억원에서 1조2816억원으로 줄었다. 건당 발행액이 336억원에서 16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한 번에 소화되지 않는 물량을 잘게 나눠 파는 구조가 자리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