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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반도체의 46년

이세연 기자  2026-09-28 08:02:29

편집자주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장비 국산화에 뛰어든 한미금형

2.1. 곽노권 창업주의 반도체 외길

2.2. 늘어난 제품 라인업, 창업주 열정이 성과로

3. 비전 플레이스먼트로 세계 시장을 열다

3.1. 절단·검사·선별을 한 장비에

3.2. 2005년 코스피 상장

3.3. 일본산 쏘를 걷어내다, 마이크로쏘 내재화

4. 곽동신 체제, 승계에서 오너 경영까지

4.1. 창업주에서 아들로, 곽노권에서 곽동신으로

4.2. 33세 대표의 등장, 곽동신식 경영의 시작

4.3. HPSP로 드러난 투자 감각

4.4. 자사주 매입과 주주환원, 지분을 늘린 오너

4.5. 작품 만드는 경영자, 곽신의 등장

5. HBM 시대를 준비한 TC 본더

5.1. HBM이 뜨기 전 시작한 본더 기술

5.2. 2017년 SK하이닉스와 시작한 HBM TC 본더

5.3. AI 열풍과 HBM3E, 주력 장비로 올라선 TC 본더

6. 고객사가 만든 성장의 궤적

6.1. SK하이닉스, TC 본더를 함께 키운 고객

6.2. 마이크론, 해외 시장을 연 두 번째 축

7. 기술을 둘러싼 분쟁의 역사

7.1. 세메스와 비전 플레이스먼트 특허전

7.2. 한화세미텍과 TC 본더 특허소송

8. TC 본더 다음 승부, 곽동신의 과제

8.1. 와이드 TC 본더와 하이브리드 본더

8.2. HBM 밖으로, 본더의 적용처를 넓히다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9월 28일

1. 개요접기



국내 반도체 산업이 막 태동하던 1980년. 장비는 외국에서 사오는 것이 당연했다. 이 불모지에서 후공정 장비 국산화에 뛰어든 1세대 기업이 한미반도체다.

모토로라 출신 엔지니어 고(故) 곽노권 창업주는 1980년 한미금형을 세웠다. 금형에서 자동화 장비로, 다시 비전 플레이스먼트와 고대역폭메모리(HBM)용 열압착(TC) 본더로 주력 제품을 바꿨다.

경영은 아들 곽동신 회장에게로 넘어갔다. 아버지가 반도체 장비 한 우물에 집중했다면 아들은 본업을 챙기면서도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냈다. HPSP 투자로 '투자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았고 미술 작가로도 데뷔했다. 창업주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한미반도체의 역사에 색을 더했다.

이 문서는 한미금형 설립부터 주요 제품의 개발 과정, 창업주에서 2세 경영으로 이어진 변화, 특허 분쟁과 차세대 장비 전략까지 한미반도체의 성장 과정을 정리한다.
한미반도체 본사 전경.

2. 장비 국산화에 뛰어든 한미금형접기



2.1. 곽노권 창업주의 반도체 외길접기



곽노권 한미반도체 창업주(사진)는 오로지 반도체 하나만 바라본 '반도체 외길' 인생을 살았다. 1938년 태어나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한 그는 이천전기공업을 거쳐 1967년 모토로라코리아에 입사했다. 미국 연수를 갈 수 있다는 말에 지원했다. 반도체 회사인 줄도 모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그곳에서 13년 6개월을 보냈다.

일을 배울수록 창업의 꿈은 커졌다. 당시 국내 업체가 쓰는 반도체 금형과 장비는 외국산이었다. 곽 창업주는 그 빈자리를 사업 기회로 봤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온 그는 1980년 한미금형을 세웠다. 법인 설립일은 12월 24일이었고 작업장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마련했다. 첫 제품은 반도체 패키지 성형에 쓰는 정밀 금형이었다. 1000분의 1㎜ 오차도 품질을 흔들 수 있는 영역이었다. 곽 창업주는 개발이 길어지면 회사 소파에서 잠을 자다시피 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결국 한미금형은 상용화에 성공해 외산 금형을 밀어냈다. 삼성반도체, 현대전자, 아남산업, 금성반도체 등을 고객으로 잡았다. 호탕하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알려진 곽 창업주는 큰 꿈을 숨기지 않았다. 1980년대 초 해외 전시회를 돌며 "작은 회사지만 나는 국가대표"라고 말했다.

2.2. 늘어난 제품 라인업, 창업주 열정이 성과로접기



금형 하나만 바꿔서는 생산라인 전체를 국산화할 수 없었다. 다음 목표는 금형 앞뒤에서 사람이 하던 일을 장비로 옮기는 것이었다. 한미금형은 1985년 3월 금형을 자동으로 기기 위로 올리는 '오토 프레임 로더 시스템'을 양산해 시그네틱스에 첫 공급했다.

몰딩과 마킹, 절단·검사 장비로 제품군이 불어나자 '금형'이라는 이름만으로 회사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한미금형은 1996년 9월 ㈜한미와 한성전자를 흡수합병하고 11월 ㈜한미로 사명을 바꿨다. 2002년 10월에는 지금의 한미반도체가 됐다. 금형회사에서 장비회사로 완전히 넘어왔다는 선언이었다.

곽 창업주는 산업포장과 석탑·동탑산업훈장, 3000만달러 수출탑을 차례로 받았다. 2013년에는 산업훈장 가운데 가장 높은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23년 12월 별세할 때까지 회장과 이사회 의장으로 남았다.

3. 비전 플레이스먼트로 세계 시장을 열다접기



3.1. 절단·검사·선별을 한 장비에접기



몰딩을 마친 반도체 패키지는 자르고 씻고 말린 뒤 검사해야 한다. 예전에는 여러 장비와 작업자가 이 일을 나눠 맡아 시간과 오염 위험이 늘었다.

한미반도체는 흩어진 공정을 한곳에 모았다. 1997년 선보인 '소잉 앤드 플레이스먼트'는 1998년 비전 플레이스먼트로 발전했다. 절단부터 세척·건조, 카메라 검사, 선별·적재까지 한 장비에서 끝냈다.

국산화를 마치자 곧바로 해외 문을 두드렸다. 성수동에서 부천을 거쳐 인천 수출산업단지로 생산거점을 옮겼고 1987년 말레이시아,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무소를 냈다. 국내 시장이 커지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대만과 동남아시아의 외주 반도체 조립테스트(OSAT) 업체가 주요 고객이 됐다. 주문에 맞춰 장비를 계속 고친 경험이 진입장벽으로 쌓였다. 비전 플레이스먼트는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왔다.

3.2. 2005년 코스피 상장접기



한미반도체는 2005년 7월 22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공모가는 8900원이었다. 직전 해 매출은 696억원, 영업이익은 199억원이었다. 매출의 70% 이상이 수출에서 나왔다. 고객은 국내 30여곳, 해외 80여곳에 달했다.

상장 직후 곽노권 창업주는 한층 큰 목표를 내걸었다. 5년 안에 세계 반도체 조립장비 시장의 선두업체가 되겠다고 했다. 당시 연 매출은 8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회사 규모에 비하면 꽤 큰 청사진이었다.

실적도 뒤따랐다. 2005년 792억원이던 매출은 2007년 1157억원으로 늘며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섰다. 2010년에는 약 1700억원까지 커졌고 수출 1억달러도 돌파했다. 그 중심에는 비전 플레이스먼트가 있었다. 곽 창업주가 그렸던 세계 시장 진출을 가장 먼저 현실로 만든 제품이었다.

3.3. 일본산 쏘를 걷어내다, 마이크로쏘 내재화접기



비전 플레이스먼트가 세계 1위에 올랐지만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패키지를 자르는 쏘(Saw) 장치는 일본 디스코 제품을 사용했다. 핵심 모듈의 가격과 공급 일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마이크로쏘(Micro-Saw)를 직접 만들려면 구동부와 스핀들, 냉각·세정, 비전 검사까지 장비 전체를 다시 맞춰야 했다. 단순히 칼날 하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한미반도체는 2021년 마이크로쏘를 자체 개발해 공급을 시작했다. 절단 장치와 검사, 이송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계하면서 원가와 납기도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제품 이름도 '마이크로쏘 앤드 비전 플레이스먼트(MSVP)'로 바꿨다.

1980년에는 외산 금형을 대신할 제품을 만들었고 2021년에는 일본산 쏘를 걷어냈다. 시기는 달랐지만 핵심 기술을 안으로 가져오는 방식은 같았다.

4. 곽동신 체제, 승계에서 오너 경영까지접기



4.1. 창업주에서 아들로, 곽노권에서 곽동신으로접기



곽동신 회장의 경영수업은 빨리 시작됐다. 1974년생인 그는 스물넷이던 1998년 한미반도체에 들어왔다. 오너 2세의 경영수업치고 이른 편이었다. 기획관리 업무를 맡았고 2001년에는 기획관리실 차장으로 일했다.

2007년에는 33세로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아버지는 장기 기술투자와 큰 방향을 잡고 아들은 영업과 제품 포트폴리오를 챙겼다. 곽동신 회장은 2014년 부회장, 2024년 12월 회장이 됐다. 비전 플레이스먼트 중심이던 회사도 그의 시대에 'TC 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 열압착 본딩 장비)' 중심으로 바뀌었다.

자동차를 좋아한 곽 회장은 수입차 딜러 사업에도 공을 들였다. 사업 전에는 업계를 익히려고 수입차 영업사원으로 직접 취직해 약 1년간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반도체와 별개의 현장 경험이었다.

그는 2005년 한미네트웍스를 세워 닛산 딜러 사업을 시작했고 2008년 신호모터스를 설립했다. 신호모터스는 2012년 BMW 공식 딜러가 됐다. 매출은 늘었지만 이익을 남기지 못해 사업을 정리했다. 제품을 만드는 일과 파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배운 시간이었다.

4.2. 33세 대표의 등장, 곽동신식 경영의 시작접기


곽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2007년, 회사는 비전 플레이스먼트 다음 제품을 찾아야 했다. 그는 해외 고객을 늘리면서 레이저, 전자파 차폐, 본딩 등 인접 공정으로 장비군을 넓혔다. 지금 잘 팔리는 장비에 기대면서도 다음 공정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TC 본더가 새 주력으로 올라왔다. 곽 회장은 이 장비에 유독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후발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상당하고 한미반도체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2025년에는 HBM4·와 HBM5에 하이브리드 본더를 쓰는 것을 '우도할계',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격이라고 했다. 설비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공장과 가공설비를 계속 확충했다.

곽 회장은 2018년에는 장비 국산화와 수출 확대에 기여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3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부친 곽노권 창업주에 이어 두 세대가 산업훈장을 받은 셈이다.

4.3. HPSP로 드러난 투자 감각접기



곽동신 회장은 장비만 잘 고른 것이 아니었다. 기업을 고르는 눈으로도 '투자의 귀재'라는 말을 들었다. 한미반도체와 곽 회장은 2021년 6월 고압 수소 어닐링 장비업체 HPSP에 각각 375억원씩, 모두 750억원을 투자했다. 두 투자자가 확보한 지분은 25%였다.

연결고리는 2013년 한미반도체에 투자하며 인연을 맺은 사모펀드 운용사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였다. 후공정 장비회사와 오너가 전공정 장비기업에 함께 돈을 걸었다.

HPSP가 2022년 코스닥에 상장하자 투자금의 가치가 뛰었다. 한미반도체와 곽 회장은 2023년부터 지분을 나눠 팔았고 2026년 1월 마지막 주식까지 정리했다. 투자원금을 뺀 누적 실현수익은 약 4795억원이었다. 회사 몫은 2379억원, 곽 회장 개인 몫은 2416억원이었다. 750억원짜리 판단이 5000억원에 가까운 이익으로 돌아왔다.

4.4. 자사주 매입과 주주환원, 지분을 늘린 오너접기



한미반도체는 HBM 성장기에 자사주 취득과 소각을 확대했다. 2022년 500억원, 2023년 300억원에 이어 2024년에는 수차례에 걸쳐 16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맺었다. 2024년 10월과 2025년 2월에는 자사주 소각도 결정했다.

최대주주인 곽 회장도 2023년부터 개인 자금으로 회사 주식을 꾸준히 사들였다. 2026년 9월에는 7억원 규모의 추가 매입 계획을 밝혔다. 10월 예정분까지 매입을 마치면 누적 투입액은 702억원, 지분율은 33.63%로 높아진다. 최대주주의 지분 확대가 이어지면서 경영권도 한층 안정됐다.
곽동신 회장의 작품 'ENDLESS LOVE'

4.5. 작품 만드는 경영자, 곽신의 등장접기



곽 회장은 오래전부터 미술품을 모아온 컬렉터였다. 필립 콜버트와 야요이 쿠사마 등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해왔다. 감상에 머물지 않고 직접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2026년 8월 '곽신'이라는 작가명으로 첫 공개 개인전 'ENDLESS'를 열었다. 작가로서도 대중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작품에는 곽 회장이 익숙하게 다뤄온 소재가 녹아들었다. 알루미늄을 주 재료로 사용했다. 컴퓨터로 설계한 뒤 CNC 밀링과 산업용 로봇으로 깎아 형태를 만들었다. 달러 기호를 반복한 '슈퍼 리치', 바늘 없는 시계를 형상화한 '포에버 영' 등 부와 시간, 욕망을 소재로 삼았다.

반도체 장비와 자동차 사업에서 접해온 산업용 소재가 미술의 재료가 된 셈이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엔드리스 러브' 연작 5점을 회사에 기증했다. 경영자가 작가로 데뷔하면서 곽 회장의 이력에 또 하나의 색이 더해졌다.

5. HBM 시대를 준비한 TC 본더접기



5.1. HBM이 뜨기 전 시작한 본더 기술접기



HBM은 여러 장의 D램을 수직으로 쌓은 메모리다. 적층된 D램은 실리콘관통전극(TSV)을 통해 위아래로 연결된다. 층수가 높아질수록 칩은 얇아지고 작은 휨이나 열변형에도 수율이 흔들릴 수 있다.

TC 본더는 열과 압력을 가해 D램을 정해진 위치에 붙이는 장비다. 한미반도체가 이 시장에 들어간 것은 생성형 AI 열풍보다 훨씬 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HBM은 지금처럼 큰 시장이 아니었지만 장비 개발을 이어갔다.

5.2. 2017년 SK하이닉스와 시작한 HBM TC 본더접기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와 장기간 공동 연구를 거쳐 듀얼 TC 본더를 개발했다. 2016년 데모 장비가 품질평가를 통과했고 2017년 2월 양산용 장비를 처음 공급했다. 같은 해 두 회사는 이 제품으로 IR52 장영실상을 함께 받았다.

'듀얼'은 두 개의 본딩 헤드를 동시에 움직여 생산성을 높였다는 뜻이다. 당시 외산 장비가 차지하던 TC 본더를 국산화했다는 의미도 있었다. 2017년 9월 시양산에 들어갔고 11월에는 해당 장비를 이용한 HBM2 8GB 양산이 시작됐다.

이후 HBM 세대가 바뀔 때마다 양산라인에서 경험이 쌓였다. 적층 수가 늘고 요구 정밀도가 높아지면서 장비도 함께 바뀌었다. 오랜 기간 고객 생산라인에서 쌓은 경험은 이후 TC 본더 사업을 키우는 밑천이 됐다.
한미반도체 TC본더.

5.3. AI 열풍과 HBM3E, 주력 장비로 올라선 TC 본더접기



시장이 크게 열린 것은 2022년 말부터다. 생성형 AI가 확산되면서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HBM 수요가 급증했다.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업체가 HBM3와 HBM3E 생산능력을 늘리자 TC 본더 주문도 따라 늘었다.

한미반도체는 2023년 하반기부터 SK하이닉스와 대규모 공급계약을 잇달아 맺었다. 2024년 매출은 5589억원, 영업이익은 2554억원으로 1년새 각각 251.5%, 638.7% 늘었다. 오랫동안 회사를 먹여 살린 비전 플레이스먼트의 자리를 TC 본더가 넘겨받았다.

제품은 HBM 세대를 따라갔다. HBM3E 12단용 장비에 이어 2025년에는 HBM4 전용 'TC 본더 4'를 내놨다. 회사는 HBM4의 높은 정밀도 요구에 맞춰 이전 제품보다 본딩 정밀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AI 열풍이 주문을 크게 늘린 것은 맞지만 그 주문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17년부터 쌓은 양산 경험이 있었다.

6. 고객사가 만든 성장의 궤적접기



6.1. SK하이닉스, TC 본더를 함께 키운 고객접기



SK하이닉스는 가장 큰 고객이자 TC 본더를 함께 개발한 파트너였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 양산라인에서 장비 경험을 쌓았고 SK하이닉스는 국산 TC 본더로 HBM 생산을 늘렸다. 이 관계는 HBM3E 12단까지 이어졌다.

오랫동안 이어진 사실상 단독 공급 구도는 2025년 흔들렸다.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을 새 공급사로 들이고 그 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420억원 규모의 TC 본더를 발주했다. 한미반도체는 장비 가격 인상과 유지보수 조건 변경을 요구했고 현장 CS 인력도 한때 철수시켰다.

이후 2025년 5월 한미반도체도 428억원 규모의 추가 수주를 따내면서 거래는 다시 이어졌다. 오랜 협업은 한미반도체가 TC 본더 시장을 선점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반대로 한 고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약점도 함께 남겼다. SK하이닉스가 공급망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고객 다변화의 필요성도 더 커졌다.

6.2. 마이크론, 해외 시장을 연 두 번째 축접기



두 번째 축은 미국 마이크론이었다. 한미반도체는 2024년 4월 마이크론과 226억원 규모의 '듀얼 TC 본더 타이거' 공급계약을 맺었다. SK하이닉스 중심이던 HBM용 TC 본더 고객군이 해외로 넓어진 계기였다.

이후 마이크론향 공급은 계속 늘었다.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 한 곳에 집중됐던 매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고객이 생긴 셈이다.

지원 거점도 고객을 따라 움직였다. 한미반도체는 2025년 10월 싱가포르 우드랜즈에 현지법인을 세웠다. 마이크론이 싱가포르를 HBM 생산 거점으로 키우는 데 맞춰 엔지니어를 현지에 두고 유지보수와 기술 지원에 나서기 위해서다. 장비를 파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고객 생산라인 가까이에서 대응하는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7. 기술을 둘러싼 분쟁의 역사접기



7.1. 세메스와 비전 플레이스먼트 특허전접기



비전 플레이스먼트가 돈을 벌기 시작하자 경쟁은 시장 밖으로 번졌다. 다음 무대는 법정이었다. 한미반도체는 2011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크론을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소송을 냈다. 세크론은 이후 세메스에 합병됐다.

1심은 2012년 한미반도체의 손을 들었다. 문제가 된 장비의 생산·판매를 금지하고 21억8361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5년 서울고등법원도 특허 침해를 인정했다. 구도만 보면 중견 장비사와 삼성 계열사가 맞붙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한미반도체는 2018년 제너셈을 상대로도 특허소송을 냈다. 1·2심에 이어 2021년 1월 대법원에서도 이겼다. 세계 1위 제품을 만든 뒤에는 10년에 걸쳐 법정에서 기술의 경계를 지켜야 했다.
한미반도체 2.5D TC본더.

7.2. 한화세미텍과 TC 본더 특허소송접기



주력 제품이 TC 본더로 바뀌면서 한화세미텍과의 분쟁이 시작됐다. 시초는 퇴직한 기술인력이었다. 한미반도체는 퇴직 후 한화정밀기계로 옮긴 전 직원을 상대로 2021년 영업비밀 사용·공개 금지 소송을 냈다. 법원은 한미반도체의 기술정보를 사용하거나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2024년 5월 항소심에서 확정됐다.

그 해 12월 싸움은 회사 대 회사로 커졌다. 한미반도체는 한화정밀기계 장비의 2개 모듈과 4개 본딩 헤드 구조 등이 자사 특허 2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한화 측은 독자 기술로 개발한 장비라며 맞섰다.

한화정밀기계는 2025년 2월 한화세미텍으로 사명을 바꿨다. 이어 같은 해 5월 한미반도체가 침해를 주장한 특허 2건에 대해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특허 침해 여부를 다투는 동시에 해당 특허 자체의 유효성도 문제 삼은 것이다.

공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10월에는 한화세미텍이 역소송을 냈다. 한미반도체 장비의 일부 부품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이었다. 한미반도체는 이를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반박했다. 2026년 9월 현재 양측의 분쟁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8. TC 본더 다음 승부, 곽동신의 과제접기



8.1. 와이드 TC 본더와 하이브리드 본더접기



한미반도체는 2026년 2월 HBM5·HBM6용 와이드 TC 본더를 공개했다. 하이브리드 본딩의 양산 전환이 늦어지는 동안 기존 열압착 방식의 적용 범위를 더 넓히려는 장비다.

하이브리드 본더 로드맵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인천에 1000억원을 들여 전용 7공장을 짓고 있다. 당초 2027년 말 제품 출시를 목표로 잡았지만 2026년 7월에는 연말 2세대 시제품 공개, 2027년 상반기 공장 가동으로 일정을 앞당겼다.

8.2. HBM 밖으로, 본더의 적용처를 넓히다접기



본더의 쓰임도 HBM 밖으로 넓히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2026년 GPU·가속기와 HBM 등을 인터포저 위에 연결하는 '2.5D TC 본더 40·120'을 공개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미국 테라팹에서 AI 시스템반도체용 패키징 장비 구매주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GDDR과 낸드플래시용 'BOC·COB 투인원 본더'도 내놨다. 글로벌 메모리 고객사의 인도 구자라트 공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HBM에 쏠린 장비군을 시스템반도체와 GDDR, 낸드플래시까지 넓히는 작업이다.

곽동신 회장에게 남은 과제도 이 연장선에 있다. 한화세미텍이 TC 본더 시장에 들어온 만큼 기존 경쟁력을 지키는 동시에 고객과 제품군을 더 넓혀야 한다. 비전 플레이스먼트 다음에 TC 본더를 만들었듯 다시 한번 주력 제품의 바통을 이어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한미반도체의 다음 10년을 가를 대목이다.
  • [1] 반도체 패키지 금형은 칩과 금선 등을 에폭시 수지로 감싸 외부 충격과 수분에서 보호하는 몰딩 공정에 쓰인다. 금형의 치수와 수지 유로가 패키지 외형과 충전 상태를 좌우한다.
  • [2] 1997년 처음 선보인 장비명은 '소잉 앤드 플레이스먼트'였다. 한미반도체는 이 장비를 발전시켜 1998년 비전 플레이스먼트를 출시했다. 현재 제품군은 '마이크로쏘 앤드 비전 플레이스먼트'로 불린다.
  • [3] OSAT는 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 Test의 약자다. 반도체 기업에서 웨이퍼나 칩을 받아 조립·패키징·검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업체를 뜻한다.
  • [4] 어닐링은 반도체에 열을 가해 결정 구조와 전기적 특성을 개선하는 공정이다. HPSP는 고압의 수소 또는 중수소를 활용해 트랜지스터 계면의 결함을 줄이는 장비를 만든다.
  • [5] TSV는 실리콘 다이에 수직으로 미세한 구멍을 뚫고 전도성 물질을 채워 위아래 칩을 연결하는 기술이다. D램 사이의 데이터 이동 경로를 짧게 만들어 대역폭을 높인다.
  • [6] 하이브리드 본딩은 금속 전극과 절연막을 미세 간격으로 직접 접합하는 방식이다. 범프와 접합재를 쓰는 TC 본딩보다 연결 간격과 두께를 줄일 수 있지만 표면 처리와 정렬 조건이 까다롭다.
  • [7] 2.5D 패키징은 여러 칩을 실리콘 또는 유기 인터포저 위에 나란히 배치해 연결하는 기술이다. 칩을 수직으로 쌓는 3D 패키징과 구분된다.
  • [8] BOC는 Board on Chip, COB는 Chip on Board의 약자다. 기판과 칩을 놓는 방향과 공정 순서가 달라 각각 GDDR과 낸드 기반 제품의 패키징에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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