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에 대한 삼성의 또 다른 움직임은 간접투자를 둔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통상 바이오업계에선 오픈이노베이션 즉 개방형 협력을 통해 여러 기업의 역량을 혁신신약 개발에 모으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삼성은 그간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에 삼성이 신수종사업으로 바이오를 지목해 투자한 지는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간접투자 재원을 마련하고 투자처나 파트너사를 발굴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삼성이 그간 바이오를 향한 간접투자를 두고도 보수적으로 움직인 이유는 바이오 성장의 뼈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즉 바이오의약품위탁생산(CMO)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오의약품위탁생산 입찰과 수주 과정에서 클라이언트(발주사)는 수주사에 상당히 엄격한 경업금지조항을 제시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사업 전방위에 걸친 경업금지 조항 때문에 직접 바이오 사업을 확장할 수 없다. 여기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그룹 기조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현재는 조성한 펀드를 통해 상당한 개발 역량을 가진 바이오벤처와 기술 협력 주자를 발굴했다. 간접투자를 통해 지원한 에임드바이오도 향후 협업을 확대할 후보군으로 꼽힌다. 에임드바이오는 장외에서 1135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항체약물접합체(ADC) 치료제 개발 기업이다. 앞서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삼성그룹이 조성한 '라이프사이언스펀드'로부터 투자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글로벌 기술수출 성과도 확보했다.
이밖에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출자한 삼성라이프사이언스펀드는 아데노바이러스벡터(AAV)에 기반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사 '재규어진테라피', '라투스바이오', ADC 개발사 '아라리스 바이오테크', 메신저RNA(mRNA) 및 리퀴드나노파티클(Liquid Nano Particle) 플랫폼을 보유한 '세일바이오메디슨' 등이 있다. 특히 혁신 바이오 신기술 기업을 설립 및 육성하는 창업형 벤처캐피탈사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과 손잡고 투자처를 넓히고 있으며 최근엔 AI 분야로도 보폭을 넓혔다. AI 신약 개발 기업 '제너레이트 바이오메디슨'과 단백질 분석 기업 'C2N'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모두 신약 개발을 부수적으로 지원하는 기업이다.
삼성의 투자는 단순 지분투자에서 펀드 출자, 그리고 AI 및 진단기업까지 해를 거듭할수록 보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앞서 인적분할을 거치면 지금까진 단순 기술 제휴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 등의 당위성을 제시하기도 한층 쉬워진다. 특히 앞서 삼성물산이 제시한 인적분할 지배구조도에 따라 고객사와의 이해상충 문제도 위탁사업부문과 R&D 부문을 완전히 분리하면 원천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 된다. 그간 삼성이 여러 이유로 도외시하던 '오픈이노베이션'에 힘을 실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바이오 생태계의 주류로 자로잡은 오픈이노베이션을 향한 삼성그룹과 삼성바이오의 변화는 삼성물산의 정관변경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조직 개편 등에서도 방향성을 유추할 수 있다.
삼성물산은 2025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의약품 등의 연구개발지원, 수탁사업 및 관련 서비스업 즉 임상대행(CRO)업을 골자로 하는 사업목적을 추가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2025년 바이오연구소 산하에 AI 전담 조직 'AI Lab'을 신설하기도 했다. AI Lab 담당 상무로는 김진한 전 스탠다임 대표를 영입했다. AI 기술을 CDMO 사업에 접목해 자동화된 생산 환경 구축 등에 나설 예정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중심의 신약 개발 등에도 AI를 접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라이프사이언스펀드가 투자한 제너레이트 바이오메디슨의 AI 플랫폼을 활용하면 단백질 구조 설계, 후보물질 발굴 등 신약 개발 과정을 가속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향후 삼성이 그룹 내에서 AI를 통해 발굴한 물질을 CRO를 통해 분석해 검증하고 CDMO 기반 의약품의 생산까지 이어가는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단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는 한 기업이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부터 상업화까지, 즉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엔드투엔드(End-to-End)' 모델을 오픈이노베이션의 정점이자 지향점으로 바라본다.
삼성바이오는 이제 막 '엔드투엔드' 모델을 향한 첫걸음만 뗀 셈이다. 미래가 유망한 후보물질을 발굴했는지, 어떤 파이프라인을 외부에서 도입하거나 개발할 지 등의 청사진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2025년 9월 인적분할 등의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 작업에도 한층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르면 연말을 즈음해 일부물질의 임상을 위한 임상시험계획(IND)을 국내외 인허가기관에 제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