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CFOs View

단통법의 종말, 이통사 AI 전쟁의 서막

KT "가격경쟁 장기화 어렵다, AI 전념할 때"…LG유플러스 "과열 경쟁보다 AI 투자"

고진영 기자  2025-08-26 08:24:18

편집자주

시장 전체를 '숲'으로 본다면, 시장 속 플레이어들인 개별 기업들은 '나무'입니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개별 기업이 숲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창구입니다. CFOs View는 기사 형식으로 담아내기 부족했던 CFO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는 콘텐츠입니다. 금리·환율·제도 등 매크로한 이슈를 비롯해 재무, 인수·합병(M&A), 주가, 지배구조 개편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CFO들의 발언을 THE CFO가 전달합니다.

Topic단통법 폐지 이후 시장 변화와 통신 3사의 대응 전략

Summary

2010년대 초반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출혈경쟁이 극심했습니다. LTE 시대가 열리고 스마트폰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는데요. 통신 3사는 가입자를 끌어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죠. 가장 강력한 무기는 '보조금'이었고요.

당시 시장의 모습은 기묘했습니다. 출고가 100만원을 호가하는 최신 스마트폰이 갑자기 공짜가 되거나 심지어 돈을 얹어주는 마이너스 폰으로 둔갑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달콤한 혜택은 결코 공평하지 않았습니다. 정보의 비대칭이 ‘호갱(호구+고객)’이란 말까지 만들어냈죠.

결국 정부가 칼을 빼 들면서 2014년 10월 단통법'이 시행됩니다. 핵심은 공시지원금 제도였는데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투명하게 보조금을 지급하라는 명령이었죠. 혼란스러웠던 시장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단통법이 시행되자 시장 안정화는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였죠. 어디서 사든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강요된 평화의 이면에서 시장은 역동성을 상실합니다. 높은 보조금이라는 강력한 이동 유인이 사라졌으니 소비자들이 굳이 통신사를 옮길 필요가 없잖아요.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는 체감하기 어려웠고 오히려 ‘모두가 비싸게’ 사는 시대가 됐다는 말입니다.

물론 단통법은 통신사에게 막대한 재정적 이익을 안겨줬어요. 마케팅 비용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단통법은 시장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꿨습니다. 경쟁의 핵심 수단인 보조금을 통제함으로써, 변동성 크고 가입자 이동이 잦았던 시장을 이탈 적고 안정적인 시장으로 변모시켰죠.

끊임없이 논란을 낳던 단통법은 결국 시장 경쟁 활성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폐지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달 22일 마침내 족쇄가 풀렸습니다. 10년간의 정적을 벗어나 야생으로 돌아갈 준비가 된듯 했죠. 하지만 단통법이 사라진 뒤 시장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한 모습이네요.

단통법 규제가 풀린 올 7월 번호이동자 수는 95만6863건으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SK텔레콤의 해킹 사태와 위약금 면제 영향이 컸죠. 유출사고 직후인 5월과 면제조치를 밝힌 7월 번호이동이 눈에 띄게 점프했거든요. 다시 찾아온 경쟁의 기회를 통신 3사가 외면하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자유를 얻은 거인들이 왜 싸우지 않는 걸까요? 원인은 복잡하지만 우선 통신산업의 구조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국내 이동통신 보급률은 이제 인구수를 넘어선 지 오래인데, 포화된 시장에서 더이상 새로운 파이를 키우긴 어렵잖아요. 서로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어도 어차피 제로섬 게임입니다. 성숙한 시장에서 이런 소모적 싸움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죠.

게다가 앞서 통신 3사는 이미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2019년 5G 상용화 초기였는데요. 세계 최초 타이틀과 가입자 확보를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지원금 전쟁을 벌였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천문학적인 마케팅비 지출로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거든요. ‘과열 경쟁은 공멸’이라는 깨달음을 새겼죠. 6G 시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여유는 없습니다.

외부환경 역시 변한건 마찬가집니다. 10년 전 플래그십 스마트폰 가격은 100만원 안팎이었지만 이제 그 두배는 되잖아요. 보조금 지원엔 한계가 있고 단말기 교체 주기는 길어졌습니다. 이미 자급제와 알뜰폰 조합에 눈을 뜬 소비자들이 다시 고가의 요금제로 돌아오길 기대하기도 어렵고요.

그리고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이유. 통신 3사의 전략적 우선 순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통적인 이동통신사업은 성장 정체에 직면했고, 전화와 데이터 제공만으로는 더 이상 기업가치를 높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거든요. 새로운 전쟁터는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통신 3사는 저마다 ‘탈(脫)통신’을 외치며 AI 전환을 선언했는데요. 지금 경쟁의 무대는 지상의 유통망이 아니라 거대언어모델(LLM)이 작동하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AI 시대에서 경쟁은 막대한 자본 투자를 의미하죠. 데이터센터 구축과 GPU 확보, 자체 LLM이나 온디바이스(On-Device) AI 관련 개발은 모두 자금력 싸움이거든요. 보조금에 쓸 재원을 아껴 AI에 투입하는 일이 장기적인 생존과 성장에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셈입니다. 땅따먹기나 할 때가 아니라는 거죠.
SK텔레콤이 구축한 소버린AI용 GPU 클러스터 '해인'

단통법 폐지 이후의 조용함은 국내 통신 시장이 또다른 챕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제 무분별한 현금 살포는 의미를 잃었죠. 그렇다고 전쟁이 끝나진 않았고요.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에요. 보조금은 이제 낡은 무기이며, 훨씬 더 거대하고 치열한 AI 전쟁이 시작된 겁니다.

최근 통신 3사들의 상반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들어보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비롯한 경영진들도 같은 맥락의 태도를 보이고 있네요. 보조금에 대해선 미온적이고 AI 투자엔 적극적이죠.

CFOs View

장민 KT CFO

지금 통신사업자들은 AI에 전념할 때

단통법 폐지 이후 시장에서 우려할 만한 보조금 과열 경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향후 아이폰 등이 출시되면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지만, 장기화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지금 통신 사업자들은 AI, IT 분야에 대한 투자에 전념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무선시장의 경쟁은 장기적으로 그리 치열하게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명희 LG유플러스 CFO

마케팅보다 본원 경쟁력…AX 중심으로 수익 성장 지속

단통법 폐지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LG유플러스는 과도한 마케팅 경쟁보다는 본원적 서비스 경쟁력을 확고히 해 지속 가능한 성장 모멘텀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하반기에도 AX(AI +디지털 전환) 중심의 경영으로 수익 성장을 지속하고 연간 목표를 달성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강진욱 LG유플러스 모바일·디지털혁신그룹장

휴대전화 가격 아닌 차별화된 AI 서비스로 경쟁

단통법 폐지 당일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변화는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단기적으로 마케팅 경쟁은 발생할 수 있지만 과열 경쟁을 방어하면서 디지털 채널 중심으로 번호이동 성과를 관리하겠습니다. 중장기적으론 휴대전화 가격 경쟁이 아닌 차별화된 AI 서비스로 경쟁하기 위해 새로운 영역의 투자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현우 SK텔레콤 AIDC추진본부장

소버린 AI 구축, 기술 자립도 높인다

그간 해외 의존적이었던 AI 기술에 대한 자립도를 높이고자 독자 기술을 기반으로 한 AI 생태계 구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이미 한국형 소버린 AI를 구축해 핵심 플레이어로서 다양한 사업 기회를 만들어내겠다는 비전을 밝혔고, 국가를 대표하는 AI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