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밸류업 정책 기조와 맞물려 자사주 매입·소각, 배당 확대 등이 금융지주의 핵심 경영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 단순히 이익을 많이 내는 금융지주보다 안정적인 자본력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주주환원 정책을 제시하는 금융지주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흐름 역시 나타나고 있다.
◇'얼마 벌었나'보다 '얼마 돌려주나'…달라진 금융지주 경쟁 과거 금융지주 경쟁은 순이익 경쟁이었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이 매년 리딩금융 자리를 두고 경쟁했고,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뒤를 추격하는 구도가 반복됐다. 순이익 증가율과 자산 성장 속도가 주요 평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장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금융지주들이 안정적인 이익 체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이제는 그 이익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금융지주들의 성장률이 둔화하고 은행 중심 수익 구조의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남는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로 부상한 게 보통주자본(CET1)비율이다. CET1비율은 금융사의 손실 흡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본 건전성 지표다. 금융 당국 규제를 충족해야 할 뿐 아니라 배당과 자사주 소각 여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 최근 금융지주들의 컨퍼런스콜에서도 자본비율 관련 질문 비중이 크게 늘었다. 단순 실적보다 목표 CET1비율 수준 유지 가능 여부,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전략, 추가 주주환원 가능성 등이 핵심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은 안정적인 CET1비율을 바탕으로 밸류업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양사는 지난해부터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를 확대하고 중장기 주주환원 목표를 구체화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두 곳 모두 '상한 없는'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KB금융은 연말 CET1비율 13%가 넘는 잉여자본은 이듬해 1차 주주환원 재원으로, 연중 13.5%를 초과하는 잉여자본은 2차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의 밸류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CET1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주주환원 규모도 커지는 구조다.
신한금융은 최근 새롭게 '밸류업 2.0'을 내놨다. △ROE 10% 이상 △주주환원율 50% 이상 △CET1비율 13% 이상을 목표로 한다. 속도감 있게 ROE와 ROTCE를 끌어올리고, 지속 가능한 주주환원 정책을 추진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CET1비율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CET1비율이 바꾼 금융지주 전략 M&A와 사업 전략 역시 CET1비율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최근 금융지주들은 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커지면서 대형 M&A에 이전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외형 확대보다 자본 효율성과 주주환원 여력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은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자본 건전성, 주주환원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우리금융은 최근 적극적으로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1조원을 투입했으며 내년 추가로 1조원 안팎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밖에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하며 보험업에 재진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동양생명의 완전 자회사 편입과 ABL생명과의 합병 검토도 공식화했다.
완전 자회사화 자체가 자본비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으로 분석됐다. 다만 시장에서는 보험업 특성상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데다 향후 합병 과정에서 추가 자본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CET1비율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하나금융도 CET1비율 관리와 성장 전략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있다. 무리한 외형 확장보다는 자본 효율성 중심 전략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경쟁의 핵심이 단순 외형 확대보다 자본 효율성과 주주환원의 지속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순이익 규모만으로는 시장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진 만큼 자본비율 관리 능력이 금융지주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