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의 유상증자는 삼성그룹의 자산배분 관점에서도 주목할 부분이다. 반도체에서 막대한 현금을 창출한 삼성전자가 직접 출자하고 삼성전자 배당의 주요 수혜자인 삼성물산도 최대주주로 자금을 보탠다. 반도체 사업에서 창출된 현금이 직접 또는 배당을 거쳐 바이오 사업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특히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의 인적분할로 바이오 사업의 지배구조를 재편한 이후 처음 이뤄지는 대규모 자본 투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룹이 바이오를 미래 성장축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첫 대규모 지원 대상은 신약이 아니라 위탁개발생산(CDMO)이 됐다.
◇삼성전자·물산 1.8조 배정…전자 특별배당으로 물산 현금유입도 확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와 2대주주는 각각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다. 삼성물산이 43.08%, 삼성전자가 31.22%를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 지분을 합하면 74%를 웃돈다.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3조원대 유상증자에서 삼성전자가 배정받는 물량은 56만7503주다. 이를 전량 청약할 경우 예정발행가 132만2000원 기준 7502억원을 납입해야 한다.
삼성물산 역시 전량 청약을 전제로 약 1조350억원이 필요하다. 두 회사가 예정대로 배정 물량을 모두 소화하면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약 1조7850억원의 자금이 이동한다.
과거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했다. 2022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3조2000억원대 유상증자를 실시했을 당시 삼성물산은 신주 190만4239주를 배정받아 1조2168억원을 납입했다. 삼성전자 역시 138만477주 총 8821억원을 전액 청약했다. 두 회사가 당시 투입한 자금만 약 2조1000억원이다.
출처: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권신고서
이번에도 두 회사가 배정 물량을 모두 청약할 경우 유상증자 이후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합산 지분율은 증자 전 74.30%에서 73.61%로 0.69%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다. 실제 지분율은 구주주 청약 참여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두 회사 모두 자금 부담은 크지 않다. 6월 말 별도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성자산은 41조4573억원에 달한다. 예정된 유상증자 납입액 7502억원은 이 가운데 1.8% 수준에 불과하다. 삼성물산 역시 6월 말 현금성자산이 약 2조3000억원으로 배정액 1조350억원을 자체 보유 현금만으로 소화할 수 있다.
특히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전자에서 유입되는 배당금까지 감안하면 자금 여력은 더 커진다. 삼성물산은 6월 말 기준 삼성전자 보통주 2억9881만8100주, 지분 5.11%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삼성전자의 이익과 현금창출력이 확대될수록 삼성물산으로 유입되는 배당수익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다.
올해는 이 연결고리가 더욱 두드러진다. 삼성전자는 연초 5년 만에 특별배당을 재개한 데 이어 3분기 정규배당을 포함해 약 30조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할 예정이다.
삼성물산이 현재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기준으로 받을 배당금은 약 1조5300억원으로 추산된다.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유상증자에 전액 참여할 때 필요한 1조350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삼성전자가 2024~2026년 주주환원 정책 아래 정규배당과 추가 주주환원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급증한 현금창출력이 있다. 삼성전자 별도 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 순유입액은 2022년 44조7887억원에서 지난해 68조7340억원으로 늘었다. 현금성자산 역시 2021년 말 18조9194억원에서 올해 6월 말 41조4573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결국 이번 유상증자는 삼성전자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직접 7500억원을 출자하는 동시에 삼성전자에서 배당을 받는 삼성물산도 1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구조다. 반도체를 비롯한 삼성전자 사업에서 창출된 현금이 직접 출자와 관계사 배당이라는 두 갈래를 통해 바이오 사업의 성장재원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지배구조 개편 후 첫 대규모 투자, 신약보다 CDMO 먼저
시장이 주목하는 지점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1조원 안팎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두 회사의 재무 여력을 감안하면 이번 증자가 그룹 전체의 유동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삼성그룹이 막대한 현금을 어디에 다시 배치하느냐가 핵심이다. 삼성전자가 AI 메모리 수요 등에 힘입어 현금창출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오 사업에 다시 조 단위 자본을 투입한다는 것은 그룹의 중장기 성장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증자는 지난해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인적분할을 통해 바이오 사업 지배구조를 재편한 뒤 처음 이뤄지는 대규모 자본 확충이다. 분할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순수 CDMO 기업으로,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바이오시밀러와 신약 R&D 사업을 담당하는 구조로 역할이 나뉘었다.
지배구조 개편 이후 그룹의 첫 대규모 자본 투입 대상은 신약이 아닌 CDMO로 정해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번에 조달하는 3조원 가운데 2조7062억원은 스위스 펩타이드 CDMO 기업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에, 나머지 2948억원은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 증설에 투입된다. 사실상 전액이 CDMO 사업의 외형 확대에 사용되는 셈이다.
분할 이후 미래 부가가치가 큰 신약 쪽으로 그룹 바이오 사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자본배분의 첫 선택은 이미 사업성이 검증된 CDMO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존 항체의약품에서 ADC, mRNA에 이어 펩타이드로 모달리티를 확대하는 동시에 폴리펩타이드 인수를 통해 유럽·미국·인도 생산거점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반면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추진하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비만치료제 등 신약 개발사업은 아직 임상 초기 또는 전임상 단계다. 상업화까지 장기간의 연구개발과 추가적인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 이미 매출과 수주, 이익이 발생하는 CDMO와 투자 회수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신약 사이에서 그룹이 우선순위를 어디에 뒀는지가 이번 증자를 통해 드러난 셈이다.
앞서 2022년에도 삼성그룹은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약 2조1000억원을 투입했다. 4년여 만에 다시 두 핵심 계열사가 1조8000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바이오가 삼성그룹의 주요 자본배분 대상이라는 점도 재확인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아직 최대주주 및 2대주주의 청약 등을 내부적으로 예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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