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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 리딩금융그룹이 되기까지

조은아 기자  2026-08-06 09:00:00

편집자주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두 뿌리에서 메가뱅크로

2.1. 서민금융과 주택금융, 두 갈래의 출발

2.2. IMF가 만든 통합 국민은행

2.3. 통합 직후 맞닥뜨린 카드사태

3. 은행을 넘어 금융그룹으로

3.1. 왜 금융지주였나

3.2. KB금융지주 출범과 4대 지주 체제

4. 성장통, 리딩을 내주다

4.1. KB사태와 지배구조 재정비

4.2. 신한에 밀린 비은행

5. 다시 판을 짜다

5.1. 윤종규 체제의 출발

5.2. 첫 M&A 완주, KB손해보험

5.3. 삼수 끝의 증권, KB증권

5.4. 마지막 퍼즐, 푸르덴셜생명

5.5. 리딩금융 탈환

6. 위기 수습에서 승계 완성까지

6.1. 회장과 행장, 다시 역할을 나누다

6.2. 후계 경쟁을 시스템으로

7. 리딩금융의 재정의

7.1. 양종희 체제, 질적 성장

7.2. CET1 중심 경영

7.3. 밸류업과 주주환원

8. KB의 다음 60년

8.1. 성장의 무대를 세계로

8.2. AI가 바꾸는 금융

1. 개요접기



"은행이 너무 많다"

2000년 5월, 이기호 대통령 경제수석은 국내 은행 수가 너무 많다며 통폐합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꺼냈다. 같은 해 11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우량은행 간 합병을 직접 촉구했다. 지금 우량은행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경고였다.

12월 7일 이근영 위원장은 한 발 더 나갔다. 세계 100위권 안에 드는 대형 은행이 최소 두 개는 있어야 한다며,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합병안을 내놓지 않으면 정부가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시장은 이 발언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예고로 받아들였다. 두 은행은 외환위기에서 살아남은 대표 우량은행이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정부가 구상한 '메가뱅크'의 후보로 지목됐다. 이듬해 두 은행은 하나가 됐다. 오늘의 KB금융이 시작된 지점이다.
서울 여의도 KB금융지주 사옥 전경

2026년 2월 KB금융은 시가총액 60조원을 돌파했다. 주가순자산비율(PBR)도 1배를 넘어섰다. 국내 금융지주의 PBR이 오랫동안 0점대에 머물러온 점에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KB금융은 은행과 증권, 손해보험, 생명보험, 카드를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췄고,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축으로 한 자본 관리와 주주환원에서도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2025년까지 3년 연속 금융지주 순이익 1위를 지킨 리딩금융그룹이기도 하다.

그러나 KB금융이 처음부터 리딩금융이었던 것은 아니다. 출발점은 1963년 서민금융을 담당하던 국민은행과 1967년 주택금융을 위해 세워진 주택은행이었다. 두 은행의 합병과 금융지주 전환, 대형 인수합병(M&A)으로 이어진 60여 년은 국내 금융산업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이 문서는 두 은행의 출발부터 오늘의 리딩금융에 이르기까지 KB금융이 사업 기반과 경영 체계를 어떻게 구축해왔는지 살펴보고, 글로벌과 AI를 향한 다음 과제까지 짚는다.

2. 두 뿌리에서 메가뱅크로접기



2.1. 서민금융과 주택금융, 두 갈래의 출발접기



KB금융의 두 뿌리는 정부가 정책 목적에 따라 세운 두 은행이다. 국민은행은 1963년 서민과 영세상공인에게 금융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정책은행이었다. 조흥·상업·제일·한일은행 같은 기존 시중은행에 견주면 후발주자였지만, 대기업이 아닌 일반 국민을 고객으로 삼는 개인금융 전략을 택했다.

국민은행은 학교은행과 어린이예금으로 미래 고객을 확보하고, 예금·대출·결제 기능을 결합한 국민종합통장으로 개인금융의 기반을 넓혔다. 이런 성장세를 바탕으로 1994년 총수신 20조원을 넘어섰고 같은 해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창립 30여 년 만에 국내 최대 소매금융은행으로 자리 잡았다.
국민은행이 1963년 창립되면서 창업식을 가졌다.

주택은행은 국민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1967년 한국주택금고로 출범해 1969년 한국주택은행으로 전환했다. 주택복권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청약예금과 중장기부금 등을 공급하며 주택금융 전문은행으로 입지를 다졌다. 1997년 한국주택은행법 폐지와 함께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뒤에도 외환위기 당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을 유지했다. 1999년 ING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이듬해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해외 시장으로도 보폭을 넓혔다.

두 은행은 성장 전략도 달랐다. 국민은행은 규모에서, 주택은행은 수익성과 자산건전성에서 강점을 쌓았다. 공통점도 있었다. 정부가 세운 정책은행이었지만 민영화와 시중은행 전환을 거쳐 시장 경쟁력을 갖췄으며 외환위기에서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고 부실은행을 인수해 몸집을 키웠다는 점이다. 국민은행은 대동은행과 한국장기신용은행을, 주택은행은 동남은행을 각각 흡수했다.
주택은행(한국주택금고)이 1967년 창립되면서 창업식을 가졌다.

2.2. IMF가 만든 통합 국민은행접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부실은행 정리를 넘어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형 선도은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각각 소매금융과 주택금융에 강점을 지닌 우량은행이라는 점에서 합병의 핵심 후보로 떠올랐다.

합병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두 은행 모두 우량은행이어서 어느 한쪽을 피합병 대상으로 보기 어려웠고, 합병비율과 합병 방식에서부터 통합은행장 인선까지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졌다.

통합은행장 자리를 놓고는 김상훈 국민은행장과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경합했다. 2001년 7월 김정태 행장이 통합은행장으로 선정됐고, 김상훈 행장은 이후 통합은행 이사회 의장을 맡기로 했다. 핵심 인선이 정리된 뒤에도 노조와의 갈등은 남아 있었다. 노조는 점포·업무 중복에 따른 인력 감축을 우려했다. 진통 끝에 두 은행은 2001년 9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승인했고, 11월 1일 통합 국민은행이 공식 출범했다.

통합 국민은행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총자산은 신탁을 포함해 180조원을 넘었고, 두 은행 고객을 합치면 4100만명에 달했다. 국내 최대 은행이자 세계 60위권 은행으로 올라서며 정부가 원했던 초대형 우량은행의 모습을 갖췄다.
KB국민은행장이 새로운 CI가 새겨진 깃발을 흔들고 있다.

2.3. 통합 직후 맞닥뜨린 카드사태접기



통합 국민은행은 출범 2년 만에 첫 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 이후 소비 진작 정책과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회원 확대 경쟁으로 연체율이 급등하면서 2003년 카드업계 전반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국민은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카드 부문의 부실이 커지자 국민은행은 국민카드를 은행으로 흡수합병했다. 카드사업을 은행의 자본력과 리스크 관리 체계 안에서 안정화하는 쪽을 택했다. 카드사태는 외형 확대에 앞서 건전성과 리스크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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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행을 넘어 금융그룹으로접기



3.1. 왜 금융지주였나접기



통합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 은행이 됐지만, 종합금융그룹은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금융산업의 경쟁 구도는 은행 간 경쟁에서 금융그룹 간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우리·신한·하나금융이 잇따라 금융지주 체제를 갖추고 증권·보험·카드를 아우르는 종합금융서비스를 확대하는 동안, 국민은행은 여전히 은행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었다.

전환의 계기는 자본시장통합법이었다. 예금과 대출 중심이던 금융시장이 투자상품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은행·증권·보험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하나의 금융상품만으로는 고객을 붙잡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2007년 기업설명회에서 금융지주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지주회사 체제의 실익은 대형 인수합병에 있었다. 은행법은 은행의 자회사 출자에 제한을 두고 있어 대형 금융회사 인수에 한계가 있었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자본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었다.
KB금융지주는 2008년 9월 29일 KB국민은행 명동본점 15층에서 공식 출범식을 열었다.

3.2. KB금융지주 출범과 4대 지주 체제접기



금융지주 전환은 조직의 형태만 바꾸는 작업이 아니었다. 지주 회장과 국민은행장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새 금융그룹을 누가 이끌지도 정해야 했다.

2008년 5월 국민은행은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했다. 초대 회장 자리를 놓고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경쟁했다. 강 행장은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는 방식을, 황 전 회장은 그룹과 은행을 분리하는 방식을 지지했다. 회추위는 같은 해 7월 황 전 회장을 초대 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비은행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성과 M&A 역량을 높이 평가한 결과였다.

2008년 9월 29일 KB금융지주가 공식 출범했다. KB국민은행은 KB금융의 주력 계열사로 편입됐고, KB금융은 KB투자증권, KB생명보험, KB자산운용 등을 거느린 금융그룹으로 새 출발했다.

우리·신한·하나에 이어 KB금융이 출범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은 4대 금융지주 체제로 재편됐다. 황영기 회장은 출범식에서 5년 안에 자산 600조원 규모의 아시아 10위, 세계 50위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은행 중심에서 종합금융그룹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황영기 초대 회장이 KB금융지주 출범 기념사를 하고 있다.

4. 성장통, 리딩을 내주다접기



4.1. KB사태와 지배구조 재정비접기



KB금융이 출범한 뒤 맞은 가장 큰 시련은 2014년 이른바 'KB사태'였다. 발단은 KB국민은행의 주전산 시스템 교체 문제였다. 기존 IBM 시스템을 유닉스 기반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두고 이건호 KB국민은행장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정면으로 충돌했고, 기술적 판단을 둘러싼 논쟁은 경영권과 의사결정 권한을 둘러싼 갈등으로 번졌다. 금융감독원이 검사에 착수했고, 결국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중징계를 받고 물러났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의 회장과 은행장이 잇따라 물러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룹의 리더십은 사실상 공백에 빠졌고,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로 거론됐다. KB금융은 2015년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해 지주 이사회의 역할과 사외이사 운영, 계열사 경영 관리 체계를 손질했다. 지배구조위원회와 그룹경영관리위원회도 신설했다. 그룹에는 큰 상처였지만 조직을 움직이는 제도를 다시 짜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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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신한에 밀린 비은행접기



실적 경쟁에서는 비은행 부문의 열세가 뚜렷했다. KB금융은 국내 최대 은행을 보유했지만 증권과 보험의 경쟁력이 약했다. 반면 신한금융은 은행·카드·증권·보험에서 고르게 이익을 내며 오랜 기간 리딩금융 자리를 지켰다. 은행 실적만으로는 금융그룹 간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KB금융에는 은행 중심 성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그룹의 체질을 바꾸고 비은행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신한금융을 넘어설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 전환은 2014년 말 취임한 윤종규 회장 체제에서 본격화된다.

5. 다시 판을 짜다접기



5.1. 윤종규 체제의 출발접기



2014년 11월 취임한 윤종규 회장은 KB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다. 2002년 국민은행에 재무담당 부행장(CFO)으로 영입됐으나, 2004년 국민카드 합병 회계 처리 문제로 징계를 받고 물러났다. 2010년 KB금융지주 부사장으로 복귀했고, 2014년 KB사태로 회장과 은행장이 잇따라 물러난 뒤 새 회장으로 선임됐다. 회계와 재무에 밝은 '숫자에 강한 경영자'라는 평가가 이후 그의 자본 관리·인수합병 전략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취임 당시 KB금융의 당면 과제는 KB사태로 흔들린 조직을 정상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 회장은 조직 수습에 머물지 않았다. 은행만으로는 리딩금융을 되찾기 어렵다고 보고 자산관리와 투자금융을 비롯한 비은행 사업 확대에 나섰다. 이후 9년에 걸친 임기 동안 KB금융은 손해보험과 증권, 생명보험을 차례로 보강했다.
KB금융그룹 회장 겸 KB국민은행장 취임식에서 제4대 회장으로 선임된 윤종규 회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5.2. 첫 M&A 완주, KB손해보험접기



KB금융은 2014년 3월 우리파이낸셜을 인수해 KB캐피탈을 출범시킨 데 이어 손해보험으로 눈을 돌렸다. 손해보험은 자동차·장기·기업보험 등 다양한 상품을 은행 고객 기반과 연계할 수 있어 그룹 내 시너지가 큰 사업이었다.

LIG손해보험 인수는 임영록 회장 시절 시작돼 윤종규 체제에서 마무리됐다. 2014년 11월 취임한 윤 회장은 가격 재협상과 금융당국 승인 등 남은 절차를 맡았다.

당시 LIG손해보험은 시장 점유율 13%대로 삼성화재·현대해상·동부화재와 함께 손보업계 '빅4'로 꼽히던 대형 손보사였다. LIG그룹이 계열사 LIG건설의 기업어음(CP) 사건 피해 보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매물로 내놓자, 2014년 본입찰에는 롯데그룹과 동양생명 등 5개사가 참여했다.

롯데그룹이 더 높은 가격을 써냈지만, KB금융이 2014년 6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KB금융과의 시너지가 크다는 판단에 더해, 롯데의 인수에 반대한 LIG손보 노조의 입김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그룹 12번째 계열사인 KB손해보험이 서울 역삼동 KB손해보험 사옥에서 출범 기념식을 열었다.

인수가 곧바로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계약 체결 이후 LIG손해보험 미국 법인의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가격 협상이 9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2015년 3월 윤종규 회장과 매각 측의 회동을 계기로 협상이 타결됐고, KB금융은 지분 19.47%를 6450억원에 사들였다. 당초 계약 가격을 6850억원에서 6450억원으로 낮췄고, 매각 측이 지연이자 250억원도 받지 않기로 하면서 실질 인하 폭은 650억원이 됐다.

LIG손해보험 인수는 KB금융에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2006년 외환은행, 2012년 ING생명 등 대형 금융회사 인수가 잇따라 무산된 뒤 마침내 성사시킨 대표적인 M&A였기 때문이다. 인수와 함께 KB금융은 은행 다음으로 자산이 큰 자회사를 확보했고, 금융지주 총자산 순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LIG손해보험은 KB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꿔 그룹의 핵심 비은행 계열사로 자리 잡았고, 2017년에는 KB금융이 잔여 지분까지 사들여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KB손해보험은 자동차보험과 장기·일반보험을 은행 고객 기반과 연계하며 그룹의 핵심 수익원으로 성장했다. 2025년 순이익은 7782억원으로 전년 대비 7.3% 감소했지만 비은행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순이익을 냈다.

5.3. 삼수 끝의 증권, KB증권접기



KB금융의 체질을 가장 크게 바꾼 인수는 증권이었다. KB국민은행은 국내 최대 리테일 은행이었지만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WM) 경쟁력은 부족했다. KB금융은 증권사 인수에 거듭 도전했으나 우리투자증권에 이어 2015년 대우증권 인수전에서도 미래에셋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기회는 곧바로 다시 찾아왔다. 2016년 3월 현대증권 매각 본입찰에서 KB금융이 한국투자금융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우리투자증권과 대우증권에 이은 삼수 끝의 성공이었다.

현대증권 인수는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KB금융은 먼저 현대상선 등이 보유한 지분 22.56%를 1조2500억원에 인수했고, 현대증권 자사주 7.06%도 추가로 확보했다. 이어 나머지 지분 70.38%를 KB금융 주식과 교환하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현대증권을 완전자회사로 만들었다. 교환비율은 현대증권 1주당 KB금융 0.1907312주였다.

이 과정에서 현대증권 노조와 소액주주가 반발했다. 상장사인 현대증권을 상장폐지하고 비상장사인 KB투자증권과 합치는 방식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주식교환은 예정대로 승인됐고, 현대증권은 2017년 KB투자증권과 합쳐져 통합 KB증권으로 출범했다.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합병으로 탄생한 'KB증권'이 성공적인 통합과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는 출범식을 진행했다.

현대증권의 자산관리 역량과 KB투자증권의 기업금융 역량이 결합되면서, KB금융은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초대형 증권사를 단숨에 확보했다. 다만 통합 초기에는 현대증권 출신과 KB투자증권 출신, 외부 영입 인력 간의 융화가 과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KB증권은 은행과의 복합점포 운영과 자산관리 공동영업, 기업금융 협업을 확대하며 그룹 시너지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자본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증권의 이익 기여도도 가파르게 커졌다. KB증권의 순이익은 2024년 5857억원으로 전년 대비 50.3% 급증한 데 이어 2025년에도 15.1% 늘어난 6739억원을 기록했다. 2년 만에 순이익이 73%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5.4. 마지막 퍼즐, 푸르덴셜생명접기



손해보험과 증권을 확보한 KB금융에 남은 과제는 생명보험이었다. 기존 KB생명보험은 자산 규모 9조원대로 시장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 마침 미국 푸르덴셜이 알짜 생보사로 꼽히던 한국 법인을 매물로 내놨고, KB금융은 MBK파트너스·한앤컴퍼니 같은 사모펀드와 경쟁한 끝에 2020년 인수자로 선정됐다. 인수 가격은 지분 100%에 2조3400억원이었다.

다른 생보사 가치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어서 고가 논란도 나왔지만, 윤종규 회장은 생보사 인수 의지를 강하게 밝혀온 터였다. 푸르덴셜생명은 자산 규모가 21조원에 이르는 데다 고액자산가 대상 영업과 종신보험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갖춘 우량 생보사였다.

KB금융은 이후 KB생명보험과 푸르덴셜생명을 통합해 KB라이프생명을 출범시키며 생명보험 체계를 일원화했다. 통합 KB라이프생명은 자산 규모 30조원대의 중대형 생보사로 올라섰다. 손해보험과 생명보험, 증권을 모두 갖추면서 은행·증권·손해보험·생명보험·카드로 이어지는 종합 금융 포트폴리오가 완성됐다.
푸르덴셜생명이 KB금융그룹 자회사 편입을 기념하는 출범식을 진행했다.

5.5. 리딩금융 탈환접기



손해보험과 증권, 생명보험을 보강하면서 그룹의 수익원도 다변화됐다. 비은행 부문의 이익 기여도는 2023년 33%에서 2024년 40%로 높아졌다. 은행과 증권이 함께 운영하는 복합점포를 늘리고, 자산관리(WM)와 기업투자금융(CIB)을 그룹 단위로 운영하는 등 계열사 간 협업도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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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금융 타이틀은 이 과정에서 몇 차례 바뀌었다. 신한금융은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오랜 기간 1위를 지켜왔지만, 비은행을 강화한 KB금융이 2017년 그 자리를 처음으로 빼앗았다.

신한금융의 반격도 빨랐다. 신한금융은 2018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로부터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를 약 2조3000억원에 인수하며 생명보험을 보강했고, 이를 발판으로 리딩금융 자리를 되찾았다.

KB금융은 2020년 푸르덴셜생명 인수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신한금융을 다시 앞섰다. 이후에도 경쟁은 이어졌다. 신한금융이 2022년 다시 앞섰지만, KB금융은 2023년 1위를 되찾았다. 2024년에는 당기순이익 5조782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금융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연간 순이익 5조원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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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기 수습에서 승계 완성까지접기



6.1. 회장과 행장, 다시 역할을 나누다접기



윤종규 회장이 바꾼 것은 그룹의 외형만이 아니었다. 2014년 KB사태는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의사결정 권한을 놓고 충돌하면서 벌어진 지배구조의 위기였다.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경영을 정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주와 은행의 관계, 최고경영자 승계 방식까지 다시 설계해야 했다.

첫 단계는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윤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국민은행장을 겸직했다. 분열됐던 지휘체계를 하나로 모아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후 은행 경영이 안정을 되찾고 비은행 계열사가 늘어나자 다시 역할을 분리했다. 2017년 허인 행장이 취임하면서 윤 회장은 지주 경영에 전념하고, 은행장은 국민은행을 독립적으로 이끄는 체제가 자리 잡았다. 위기 때는 지휘체계를 통합하고, 안정된 뒤에는 지주와 은행의 전문경영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허인 KB국민은행장이 2017년 11월 취임했다.

6.2. 후계 경쟁을 시스템으로접기



윤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분야는 후계 구도였다. 2021년 말 KB금융은 양종희·허인·이동철 부회장과 박정림 총괄부문장이 4개 비즈니스그룹을 나눠 맡는 '3인 부회장·1인 총괄부문장' 체제를 가동했다. 허 부회장은 개인고객·자산관리·중소상공인 부문을, 이동철 부회장은 글로벌·보험을, 양종희 부회장은 디지털·IT를 맡았다. 박 총괄부문장은 자본시장과 기업투자금융을 담당했다. 주요 사업을 지주가 직접 조율하는 동시에, 차기 회장 후보들이 그룹 차원의 경영 경험을 쌓도록 한 구조였다.

후보자들에게 익숙한 분야만 맡기지도 않았다. KB금융은 이후 부회장들의 담당 업무를 바꿔 은행과 비은행, 디지털과 글로벌 등 서로 다른 사업을 경험하도록 했다. 계열사 대표 시절의 성과만으로 차기 회장을 정하는 대신 그룹 전체를 이끌 역량이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경영 현안 주제 발표와 'Future Group CEO Course', 이사회 워크숍 등 내부 후보자 육성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후보자들이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주고, 이사회가 장기간 성과와 리더십을 지켜보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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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스템은 2023년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서 실제로 작동했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내부와 외부 후보를 함께 심사하고 단계적으로 후보군을 압축했다. 2020년 한 차례였던 후보자 인터뷰를 두 차례로 늘리고 외부 기관을 통한 평판 조회도 도입했다. 외부 후보에게는 더 긴 인터뷰 시간과 내부 자료를 제공해 정보 격차를 줄였다. 윤 회장도 4연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후계 경쟁의 결과를 이사회에 맡겼다.

최종 후보로는 양종희 부회장이 선정됐다. 과거 KB사태처럼 회장과 행장, 이사회가 충돌하거나 외부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지 않은 채 승계 절차가 마무리됐다. 양 부회장의 선임은 윤 회장이 구축한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이 실제 승계로 이어진 결과였다. 최고경영자가 물러난 뒤에도 그룹이 흔들리지 않고 다음 리더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면서, 위기 수습으로 시작한 윤종규 체제는 승계 시스템의 완성으로 마무리됐다.

7. 리딩금융의 재정의접기



7.1. 양종희 체제, 질적 성장접기



2023년 말 양종희 회장이 취임하면서 KB금융의 경영 전략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윤종규 체제가 대형 인수합병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한 시기였다면, 양종희 체제의 과제는 이미 갖춰진 경쟁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였다. 은행·증권·손보·생보·카드 등 주요 업권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더 이상 외형 확대가 절실한 단계는 아니었다.

시장의 평가 기준도 달라져 있었다. 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변동성이 커지면서, 공격적인 성장보다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그 성과를 주주에게 환원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이 2023년 11월 취임했다.

7.2. CET1 중심 경영접기



이 변화의 축에는 보통주자본(CET1) 비율이 있었다. CET1 비율은 금융회사의 손실 흡수 능력과 자본 여력을 보여주는 건전성 지표다. KB금융은 이를 단순한 규제 지표가 아니라 투자와 자산 성장, 주주환원의 범위를 결정하는 자본 배분 기준으로 활용했다.

KB금융은 2024년 10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면서 위험가중자산이익률(RoRWA) 중심의 경영 관리 체계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무리하게 자산을 늘리기보다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수익성을 높이고, 자산 증가율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수준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수익성이 낮은 자산은 줄이고 한정된 자본을 수익성이 높은 사업에 배분함으로써 성장과 건전성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구상이었다.

자본 배분 원칙도 CET1 비율을 중심으로 다시 짰다. 연말 CET1 비율 13%를 초과하는 잉여자본은 이듬해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하고, 연중 13.5%를 넘어서는 자본은 추가 환원에 투입하는 구조다. 미리 정한 환원율에 맞춰 자본을 사용하는 대신 건전성을 유지하고 남은 재원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자본이 쌓이는 규모에 따라 환원 규모가 결정되므로 주주환원의 예측 가능성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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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밸류업과 주주환원접기



양종희 체제의 출범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밸류업'이 화두로 떠오른 시기와 맞물렸다.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추진하면서 금융지주의 경쟁 기준도 순이익 규모에서 자본 효율성과 주주환원, 기업가치로 넓어졌다. KB금융은 CET1 비율을 중심으로 구축한 자본 관리 체계를 밸류업 전략으로 연결했다.

KB금융은 2025~2027년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이상과 CET1 비율 13% 이상을 유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에 도달할 때까지 연평균 1000만 주 이상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안정적인 자본비율과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주당가치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성과는 목표치를 웃돌았다. 2025년 ROE는 10.86%, CET1 비율은 13.79%를 기록했다. 주주환원 규모는 2024년 2조200억원에서 이듬해 약 3조600억원으로 확대됐고, 같은 기간 총주주환원율은 39.8%에서 52.4%로 뛰었다. 많이 번 만큼 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자본 여력에 따라 환원 규모가 결정되는 체계를 실제 성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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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뒷받침한 것은 탄탄한 이익 체력이었다. KB금융은 2024년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순이익 5조원 벽을 넘었고, 역대 최대 기록은 이듬해 다시 쓰였다. 2025년 당기순이익은 5조8430억원으로 전년보다 15.1% 증가했다. 신한·하나금융을 앞서며 3년 연속 리딩금융 자리를 지켰다. KB국민은행도 3조8620억원의 역대 최대 순이익을 내며 4년 만에 리딩뱅크를 되찾았다.

시장도 응답했다. KB금융 PBR이 1배를 돌파하면서 국내 금융지주의 기업가치가 재평가 국면에 들어섰다. 과거 리딩금융의 기준이 총자산이나 순이익 규모였다면, 이제는 기업가치와 자본 효율성, 주주환원 수준까지 함께 평가받는 시대로 옮겨갔다.

8. KB의 다음 60년접기



8.1. 성장의 무대를 세계로접기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예금과 대출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성장 방식은 한계가 뚜렷해졌고, 가계부채 관리 강화와 부동산 시장 변화도 은행의 성장 여력을 제약하고 있다. 국내 리딩금융의 지위를 넘어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려면 해외에서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KB금융이 주목한 곳은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시아였다. 캄보디아에서는 2009년 KB캄보디아은행을 설립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2020년에는 현지 최대 소액대출기관인 프라삭 지분 70%를 인수했고, 이듬해 잔여 지분까지 사들여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2023년 두 법인을 합병해 상업은행인 KB프라삭은행을 출범시켰다.
KB국민은행은 캄보디아 1위 소액대출은행 프라삭(Prasac)을 인수하며 아시아 소매금융 네트워크 확장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프라삭이 캄보디아 전역에 구축한 영업망에 KB의 은행·디지털 금융 역량이 결합되면서 KB프라삭은행은 동남아시아 사업의 핵심 축으로 성장했다. 소액대출 중심이던 사업 영역도 예금과 기업금융, 결제 등으로 넓어졌다. 2025년 순이익은 1520억원으로 전년보다 15.2% 증가했다. 다만 캄보디아의 경기 둔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로 금융권 전반의 건전성 부담이 커진 만큼, 외형 성장과 부실 관리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더 긴 정상화 과정을 거쳤다. KB국민은행은 2018년 부코핀은행 지분 22%를 인수해 2대 주주가 됐고, 2020년 지분을 약 67%까지 늘려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성장 잠재력을 겨냥한 투자였지만, 경영권 인수는 곧 대규모 정상화 작업의 시작이기도 했다. 기존 부실자산에 코로나19 충격까지 겹치면서 적자가 이어졌고, KB국민은행은 여러 차례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본을 확충해야 했다.

KB국민은행은 자본을 투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KB뱅크 인도네시아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에 나섰다. 부실채권의 회수와 매각을 추진하고 점포와 인력 구조를 재편하는 한편, 고위험 여신을 줄이고 우량자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짰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현지 우량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금융을 확대하고 주택담보대출과 리테일금융도 강화했다. 모바일뱅킹과 QR결제 등 현지 고객을 겨냥한 디지털 서비스도 넓혔다.
KB국민은행은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의 최대주주 지위와 경영권을 확보하며 KB손해보험, KB국민카드, KB캐피탈과 함께 현지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할 기틀을 마련했다.

경영권을 확보한 지 5년 만인 2025년, KB뱅크 인도네시아는 현지 회계기준으로 인수 이후 첫 연간 흑자를 냈다. KB금융 연결 기준으로는 여전히 적자가 남았지만, 순손실 규모를 전년보다 70% 이상 줄이며 정상화에 속도를 냈다. 브랜드는 2024년 이미 'KB Bank'로 바꿨고, 2025년에는 법인명도 'PT Bank KB Indonesia Tbk'로 변경했다. 브랜드와 법인명에서 '부코핀'을 모두 지우며 KB 체제로의 전환을 마무리한 셈이다.

KB프라삭은행의 이익 성장과 KB뱅크 인도네시아의 손실 축소에 힘입어 KB국민은행의 해외법인 합산 실적도 2025년 흑자로 전환했다. 다만 해외사업의 이익 기여도와 네트워크는 여전히 신한금융과 하나금융 등 경쟁 그룹보다 약하다. 균형 잡힌 국내 포트폴리오를 완성한 KB금융에 남은 뚜렷한 빈자리다. KB프라삭은행은 건전성 부담을 관리해야 하고, KB뱅크 인도네시아는 KB금융 연결 기준에서도 흑자 전환을 이뤄야 한다. 두 법인의 안착이 해외사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바꾸는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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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AI가 바꾸는 금융접기



금융산업은 창구 중심 영업에서 인터넷뱅킹으로, 다시 모바일뱅킹으로 진화해왔다. 이제 인공지능(AI)이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 AI는 고객 상담을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신용평가와 이상거래 탐지, 자산관리, 리스크 관리, 내부통제까지 금융회사의 거의 모든 업무로 확산되고 있다.

KB금융은 AI를 미래 핵심 경쟁력으로 정하고 그룹 차원의 전략인 'KB with AI'를 추진하고 있다. 2025년에는 지주와 8개 주요 계열사가 함께 금융권 최초의 에이전틱 AI 기반 그룹 공동 플랫폼 'KB GenAI 포털'을 열었다. 현업 직원이 필요한 AI 에이전트를 직접 개발해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진행된 '2026년 상반기 그룹 AI·데이터 혁신 세미나'에서 KB금융그룹 양종희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활용 범위도 구체화했다. KB국민은행은 금융상담과 프라이빗뱅킹(PB)·기업금융을, KB증권은 자산관리와 상담 지원을, KB손해보험과 KB국민카드는 보험·카드 상담을 위한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있다. 투자 리서치와 시황 분석 요약, 기업 분석과 맞춤형 제안서 작성에도 AI를 적용한다. KB금융은 WM과 개인·기업금융 등 17개 업무 영역에 90여 개의 AI 에이전트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AI의 확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정보 보호와 정보보안은 물론 AI의 판단을 설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KB국민은행이 AI 거버넌스를 마련한 것도 활용 확대와 책임 있는 관리를 병행하기 위해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의 속도보다 고객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서 갈린다.
  • [1] 1970년 국내 최초로 학교은행 제도를 도입했고, 1982년에는 예금·자동이체·자동대출을 하나로 묶은 국민종합통장을 개발했다.
  • [2] 1992년 출시한 차세대주택종합통장은 학자금·결혼자금·주택자금을 하나로 묶은 장기 저축상품으로 출시 한 달 만에 100만 계좌를 돌파했다.
  • [3] 국민은행은 1998년 대동은행을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인수하고 한국장기신용은행을 합병했다. 주택은행은 1998년 동남은행을 P&A 방식으로 인수했다.
  • [4] 합병은행 신주는 주택은행 1주당 1주, 국민은행 1주당 약 0.592주가 배정됐다.
  • [5] 국민카드는 1987년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고, 흡수합병 이후 2011년 KB국민카드로 다시 분사하기 전까지 은행 조직 안에서 운영됐다.
  • [6] LIG손해보험 자회사인 LIG투자증권은 인수 대상에서 분리돼 별도로 처리됐다.
  • [7] 현대그룹은 해운업 위기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증권을 매물로 내놨다.
  • [8] 기초 매매대금 2조2650억원에 거래종결일까지의 이자 750억원을 더한 금액이다.
  • [9] 오렌지라이프의 전신인 ING생명은 2012년 KB금융이 지분 100% 인수를 추진했다가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포기했던 매물이다.
  • [10] 국내 금융주는 2010~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 회복 국면에서 일시적으로 PBR 1배를 넘어선 적이 있으나 이후 다시 1배 아래의 저평가 국면으로 돌아섰다. KB금융은 2026년 2월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시가총액 60조원을 돌파하며 PBR 1배를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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