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보험사가 국내 시장에서 잇따라 발을 빼고 있다. 성장 둔화와 치열한 경쟁, 규제 환경에 부담을 느껴서다. 반면 국내 금융계는 이들이 내놓은 보험사를 인수해 보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데 활용했다. 오렌지라이프와 푸르덴셜생명, PCA생명은 국내 자본 아래에서 중요한 전략 자산으로 부상했다. 주요 인수 사례를 점검해 외국계 보험사 M&A가 어떻게 국내 금융사의 보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는지 짚어본다.
신한금융은 현 신한라이프의 한 축이 된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를 인수해 생명보험 사업을 업계 대형사 반열로 끌어올렸다. 기존 신한생명만으로는 시간이 걸릴 외형 확대를 인수합병(M&A)으로 단축했다. 수익성과 자본 여력이 탄탄한 우량사를 그룹 안으로 들였다. 비은행 강화와 보험 대형화를 동시에 노린 승부수였다.
다만 거래 과정은 공격적 베팅과 거리가 있었다. 2조원이 넘는 자금을 쓸 의지는 분명했지만 MBK파트너스가 원하는 몸값에는 선을 그었다. 협상 장기화도 감수했다. 애초 3조원 안팎의 몸값이 거론됐지만 신한금융은 2조3000억원 수준에서 거래를 성사했다. 신한금융의 가격 협상 원칙은 수의 협상이 결렬된 뒤 공개 매각으로 전환한 롯데손해보험 인수전에서도 참고할 만한 하다.
◇1년간 이어진 가격 협상, 3조 몸값서 2.3조로 접점
신한금융은 지난 2018년 9월 5일 임시 이사회에서 오렌지라이프 인수안을 의결하고 같은 날 MBK파트너스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오렌지라이프 지분 59.15%를 2조2989억원에 사들였다. LG카드 이후 그룹 최대 규모의 비은행 M&A였다. 약 1년간 가격을 두고 밀고 당긴 끝에 성사된 빅딜이었다.
신한금융그룹 본사. 출처: 신한금융
신한금융은 오렌지라이프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매도자의 가격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았다. 2018년 초 MBK파트너스로부터 오렌지라이프 데이터룸 실사와 배타적 협상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MBK가 기대한 약 3조원 수준의 몸값과 간극이 크자 신한금융은 협상권이 만료될 때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배타적 협상권이 사라지면 다른 원매자가 뛰어들 수 있었지만 신한금융은 '오버페이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협상은 수개월간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측의 가격 눈높이는 다시 좁혀졌다. MBK가 처음 기대했던 가격은 약 3조원으로 알려졌지만 막판에는 주당 4만7000원대로 협상 범위가 낮아졌다. 신한금융은 자살보험금 관련 추징세와 임원 스톡옵션 등 1200억원 안팎의 부대비용을 가격에 어떻게 반영할지도 따졌다. 거래 성사 자체보다 적정 가격과 추가 비용을 끝까지 따진 결과 지분 59.15%의 최종 인수가를 낮출 수 있었다.
오렌지라이프 자체의 매력은 신한금융이 협상 테이블을 떠나지 않은 이유였다. 당시 오렌지라이프는 높은 자본 여력과 안정적인 이익 창출력을 갖춘 데다 총자산 31조원대의 중대형 생보사로 이미 상당한 사업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2018년 상반기 말 두 회사의 총자산을 합치면 62조원을 넘어 생명보험 업계 상위권으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그룹 차원에서는 은행 의존도를 낮추고 비은행 수익 기반을 키우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조용병 당시 회장 체제에서 대형 M&A 필요성은 컸지만 전략적 필요성이 곧 가격 양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인수 의지는 강하게 가져가되 원하는 가격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으로 대형 딜을 마무리했다.
◇흡수보다 강점 보존, 단계적 PMI로 통합 완성도 높여
신한금융은 오렌지라이프를 품은 뒤에도 합병부터 서두르지 않았다. 일정 기간 두 회사를 별도로 운영했다. 이후 양사 통합을 총괄한 '뉴라이프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IT와 재무, 인사, 상품 등 공통 업무를 하나씩 맞춰갔다. 유관 부서를 같은 공간에 배치하는 코로케이션(colocation)과 양사 임직원 교차 인사까지 활용했다. 법인 통합 이전부터 실무 결합을 진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피인수 회사의 강점을 없애지 않는 인사도 인수후통합(PMI)의 특징이었다. 통합 신한라이프에는 오렌지라이프 출신 최고투자책임자(CI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주요 인력이 중용됐다. 신한생명의 조직에 오렌지라이프를 단순 흡수하기보다 경쟁력이 검증된 기능과 인력을 새 회사에 남기는 쪽을 택했다.
영업채널도 한쪽 체계로 곧바로 일원화하지 않았다. 옛 오렌지라이프 조직은 FC1, 신한생명 조직은 FC2로 나눠 운영하고 양측 출신 임원을 각각 배치했다. 서로 다른 조직의 장점을 없애지 않고 고객층과 채널을 넓히는 방식이었다.
신한라이프는 지난 2021년 7월 총자산 71조원대 규모로 출범하며 자산 기준 업계 4위권에 올라섰다. 통합 과정에서 인사와 보상 체계를 둘러싼 진통도 있었지만 전산과 인사 제도를 차례대로 합치며 운영체계를 하나로 묶었다. 오렌지라이프 인수는 가격을 좇아 거래를 서두르지 않고 피인수 회사의 강점도 훼손하지 않는 신한금융식 M&A와 PMI의 선례로 남았다.
오렌지라이프의 전신은 네덜란드 ING그룹 계열 ING생명이다. ING그룹은 2013년 ING생명을 MBK에 매각했다. MBK는 이후 오렌지라이프로 사명을 바꿔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재매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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