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1999년 검색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네이버는 주로 인수합병(M&A)을 통해 국내 최대 인터넷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네이버는 매 시기 전혀 다른 회사를 인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일관된 전략이 존재한다. 검색 이용자를 오래 머물게 할 서비스를 비롯해 플랫폼 경쟁력을 높일 기술, 글로벌 확장을 가능하게 할 네트워크, 이용자 데이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생태계를 확보하면서 서비스를 고도화했다는 점이다.
네이버 M&A의 시작은 출범 직후 한게임과의 합병이었다. 검색 이용자를 모은 네이버와 수익 모델을 보유한 한게임의 결합은 오늘날 네이버 사업 확장의 원형으로 평가되곤 한다. 이후 네이버는 검색 기술 확보를 위해 첫눈을 인수했고 모바일 시대를 대비해 미투데이와 윙버스를 품었다. 일본에서는 검색 대신 메신저를 선택해 라인을 키웠고 소프트뱅크와의 경영통합을 통해 글로벌 플랫폼 전략의 새 장을 열었다.
2010년대 들어 네이버의 M&A는 금융과 콘텐츠, 커머스로 사업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미래에셋그룹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네이버파이낸셜을 출범시켰고 왓패드와 문피아를 인수하며 글로벌 IP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어 포시마크와 왈라팝 투자를 통해 북미와 유럽 C2C 시장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우버와 컨소시엄을 구축하고 배달의민족 인수까지 검토하면서 로컬 커머스와 물류 영역으로 외연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 문서는 네이버의 출범과 성장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진 M&A의 역사를 통해 네이버 경쟁력의 원천을 살펴본다.
지금으로부터 27년여 전 네이버와 한게임 간 합병 딜은 두 기업에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1999년 이해진 창업자 주도로 출범한 네이버의 전신 네이버컴은 검색 기술력을 앞세웠지만 시장 지위는 불안정했다. 당시 국내 인터넷 시장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야후코리아 등 선발 사업자가 장악하고 있었다. 검색 시장도 지금처럼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네이버컴의 1999년 매출은 18억원 정도였다.
반면 김범수 창업자가 구축한 한게임은 이용자 체류시간과 수익모델을 갖고 있었다. 고스톱과 포커 등 웹보드 게임을 기반으로 빠르게 이용자를 모았고 유료화도 빨랐다. 네이버컴이 검색으로 이용자를 끌어왔다면 한게임은 그 이용자 시간을 매출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였다. 두 회사가 마주한 문제는 달랐지만 결합 논리는 분명했다. 네이버컴은 수익모델이 필요했고 한게임에는 더 큰 플랫폼과 기술 인프라가 필요했다.
2000년 4월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해진 네이버컴 창업자와 김범수 한게임 창업자는 양사 합병을 발표했다. 거래는 한게임만을 대상으로 한 단순 합병이 아니었다. 네이버컴은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인터넷마케팅솔루션 업체 원큐, 검색솔루션 업체 서치솔루션을 함께 묶었다. 당시 거래 규모는 약 1200억원으로 평가됐다. 해당 합병 딜은 국내 인터넷 시장 최대 규모 M&A 사례로 꼽히면서 눈길을 끌었다.
2000년 4월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진 당시 네이버 창업자와 김범수 한게임 창업자가 두 회사의 합병을 발표하고 있다.
합병 거래는 주식 스와핑 방식으로 이뤄졌다. 당시 한게임 기업가치는 625억원, 원큐는 192억원, 서치솔루션은 400억원으로 산정됐다. 한게임 주식 1주당 네이버 2.59733주, 원큐 1주당 1.61333주를 발행하는 방식이었다. 서치솔루션에는 네이버 주식 15%를 넘기고 지분 40%를 받아 관계기업으로 편입하고 추가 매입을 거쳐 완전 자회사화했다. 현금 보유량이 적었던 네이버 입장에선 주식 거래가 용이했을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현재 네이버의 전신격인 NHN이다. 검색 포털 네이버와 온라인 게임 한게임이 한 회사 안에 들어오면서 NHN은 검색과 게임이라는 두 사업 축을 갖게 됐다. 검색은 이용자 유입을 만들었고 게임은 수익을 만들었다. 한게임이 없었다면 네이버가 닷컴버블 붕괴 이후 적자를 버티며 검색 점유율 경쟁을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시장 관계자는 "서로가 수요를 채워준 결과"라고 평가했다.
네이버컴과 한게임 간 합병은 두 창업자의 동맹이기도 했다. 이해진은 검색을 대표했고 김범수는 게임을 대변했다. 두 창업자 모두 서울대와 삼성SDS를 거친 한국 인터넷 1세대 창업자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었다. NHN 출범 이후 김범수 창업자는 이해진 창업자와 함께 2001년 9월부터 2004년 1월까지 NHN 공동대표를 맡았고 이후 해외사업을 담당했다. 이해진 창업자는 대표직을 맡다가 이사회 의장직을 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역할은 달라졌다. 초기에는 한게임이 네이버컴의 수익성을 떠받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검색광고 시장이 열렸고 검색 서비스는 광고와 결합해 핵심 수익원으로 부상했다. 반대로 게임은 웹보드게임 규제 리스크와 해외 확장 과제에 노출됐다. 사업적으로도 결이 달랐다. 검색은 장기 기술투자와 데이터 축적이 핵심이었고 게임은 콘텐츠 흥행과 이용자 과금, 규제 대응이 중요했다.
당시 관련업계에서는 NHN 내부 무게중심이 네이버컴 쪽으로 이동했고 한게임 출신 경영진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해석도 적지 않았다. 김범수 창업자는 NHN 대표를 맡다가 NHN 미국법인 대표로 보직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났다. 당시 언론 매체들은 네이버컴 쪽 경영진과 한게임 쪽 경영진 간 경쟁 구도와 조직 개편, 한게임 창업 멤버들의 이동 등이 김범수 창업자의 이탈 배경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김범수 창업자는 2011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이가 안 좋아서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전혀 그런 게 아니다"라며 "안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또 "NHN에 크게 기여할 수 없다는 답답함 때문에 떠날 결심을 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NHN이 검색 중심 플랫폼 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게임 창업자 김범수의 역할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아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NHN의 고민은 검색 기능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NHN은 이미 국내 검색 포털 1위 사업자 지위에 올라서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인터넷 시장에서는 구글이 검색 알고리즘을 앞세워 급부상했다. 국내에서도 '검색은 결국 기술 싸움'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NHN은 지식인과 블로그, 카페, 뉴스 등 내부 콘텐츠를 검색 결과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강점을 보였지만 위기감도 안고 있었다.
그 시점에 등장한 회사가 '첫눈'이었다. 첫눈은 네오위즈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자 훗날 게임 업체 크래프톤을 창업한 장병규 현 크래프톤 의장이 2005년 6월 설립한 검색 전문회사였다. 첫눈은 한국의 구글을 지향했다. 회사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검색 인력 밀도는 높았다. 당시 첫눈은 전체 직원의 65%가 검색분야에 풍부한 경력을 가진 인력으로 구성돼 있었고 고유 랭킹 알고리즘 서비스를 갖고 있었다.
2006년 6월 최휘영 NHN 대표(오른쪽)와 장병규 당시 첫눈 대표가 지분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NHN은 2006년 6월 첫눈 지분 100%를 350억원에 인수했다. 설립 1년 남짓 된 회사에 베팅한 금액으로는 크다는 평가가 따랐다. 상용화된 대형 서비스나 안정적 매출을 사들인 거래가 아니었다. NHN은 "해외 검색시장 진출과 검색 기술 역량 강화"를 인수 목적으로 밝혔다. 최휘영 당시 NHN 사장은 첫눈 인수를 통해 "양사 기술진이 네이버를 업그레이드하고 해외시장 진출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첫눈 인수를 구글 견제용 딜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네이버가 국내 1위에 오른 뒤에도 검색 기술 경쟁력을 사기 위해 금액을 투입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었다. 첫눈은 독립법인 형태를 유지하되 통합 개발팀을 꾸리는 방식이 검토됐다. 장병규 대표도 첫눈 사이트를 도전적 검색 서비스를 시험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장 대표는 첫눈을 매각한 이듬해 크래프톤 전신인 블루홀을 설립했다.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NHN의 관심은 네이버 검색 바깥으로 이동했다. 당시는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되기 전이었지만 모바일과 소셜이 새로운 이용자 접점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때다. 스마트폰 보급 열기가 확산되기 직전 네이버는 이 전환기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비교적 소규모의 인수 건을 잇달아 단행했다.
대표 사례가 유무선 연동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 미투데이 인수다. NHN은 2008년 12월 미투데이 지분 전량을 약 22억원에 인수했다. NHN은 서비스와 브랜드, 대표이사와 인력을 유지하면서 모바일 기능 개선, 전용 요금제 개발, 지인 네트워크 확보를 통해 미투데이를 모바일 SNS로 특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목표는 미국 트위터와 같은 유무선 커뮤니케이션 사이트로 진화하는 것이었다.
미투데이 인수는 네이버가 모바일 SNS를 자체 포털 서비스의 부속 기능이 아니라 별도 서비스로 키워보려 한 시도이기도 했다. 네이버는 PC 웹에서 검색과 카페, 블로그를 장악했지만 모바일에서는 관계망 기반 서비스가 더 중요해질 수 있었다. 미투데이는 짧은 문장, 실시간 소통, 지인 네트워크라는 점에서 기존 네이버 블로그와 다른 속성을 갖고 있었다. 당시 시장에서는 트위터(현 엑스)가 존재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2009년 2월에는 여행정보 사이트 윙버스를 인수했다. 윙버스는 여행 후기와 맛집, 숨은 명소 등 이용자 참여 기반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NHN은 윙버스를 기존 네이버 여행 서비스와 결합해 사용자 참여 기반의 생생한 여행 경험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단순 여행상품 중개나 국가별 기본정보가 아니라 실제 여행자가 작성한 현장형 콘텐츠를 네이버 안으로 가져오려는 전략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미투데이와 윙버스는 핵심 독립 플랫폼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미투데이는 모바일 SNS 경쟁에서 밀렸고 윙버스는 별도 서비스보다 네이버 내부 콘텐츠 자산으로 흡수되면서 2013~2014년 관련 서비스가 모두 종료됐다. 다만 두 딜을 통해 NHN이 모바일 시대를 앞두고 무엇을 준비했는지 엿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편 두 기업의 인수가 결과적으로 네이버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후 네이버는 인적분할을 통해 네이버와 한게임으로 분리됐다. NHN의 사명은 네이버가 됐다. 이후 네이버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최대 성과는 라인이다. 라인은 일본에서 직접 만든 서비스다. M&A를 통해 구성한 사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M&A와 사업 재편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유는 라인 출시 이후 소프트뱅크·야후재팬과의 경영통합으로 이어졌고 해외 플랫폼 전략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일본 사업은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네이버는 2000년 9월 한게임재팬을 설립하며 일본에 진출했고 같은 해 11월 옛 네이버재팬을 세워 검색시장에 도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 검색 시장은 이미 야후재팬이 장악한 상황이었다. 네이버는 2005년 8월 네이버재팬 서비스를 종료했다가 2007년 11월 재설립하며 일본에 재진출했다. 라인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우회 전략이었다.
성공 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현지 통신망과 일상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과 지인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메신저 수요가 커지는 계기가 됐다. 네이버는 지진 발생 약 3개월 뒤 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본 검색시장을 뚫지 못한 네이버가 메신저라는 다른 입구로 사용자 접점을 확보했다.
라인은 2016년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 증시에 동시 상장했다.
라인은 검색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으로 일본 사용자를 붙잡았다. 라인은 메신저를 통해 일본인들이 매일 쓰는 서비스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이후 스티커, 게임, 광고, 뉴스, 결제, 금융으로 확장했다. 검색 포털이 아니라 생활 인프라형 모바일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성장 방식도 네이버 본체와 달랐다. 네이버가 검색과 정보 축적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면 라인은 감정 표현과 관계망을 중심으로 기반을 다졌다.
2016년 라인은 뉴욕과 도쿄 증시에 동시 상장했다. 네이버가 국내 포털 사업자라는 인식을 넘어 글로벌 모바일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시점이다. 라인은 일본과 동남아 시장에서 네이버가 직접 확보한 거의 유일한 대규모 해외 이용자 기반이었다. 그러나 라인의 다음 국면은 독자 성장보다 동맹이었다. 일본에서 야후재팬이라는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네이버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라인 진출 다음 국면은 소프트뱅크·야후재팬과의 통합이었다. 네이버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 자회사 Z홀딩스는 네이버와 2019년 12월 경영통합 계약을 체결했다. 이 거래는 단순 합병이 아니라 지배구조를 새로 짜는 대형 플랫폼 재편이었다.
통합 구조는 복잡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5 비율로 합작법인을 보유하고 합작법인이 Z홀딩스를 지배하며, Z홀딩스 산하에 라인과 야후재팬, 야후쇼핑, 조조, 금융서비스 등이 들어가는 구조가 추진됐다. 일본과 아시아 최대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고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와 경쟁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 기업을 만들겠다는 명분이었다. 통합의 의미는 네이버가 단독 플랫폼 확보 경쟁을 포기했다는 데 있다.
통합의 의미는 네이버가 시장 현지 최강자와 손을 잡았다는 데 있다. 야후재팬은 포털과 커머스, 금융에서 강했고 라인은 메신저와 모바일 이용자 기반이 강했다. 소프트뱅크는 일본 내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라인을 통해 확보한 일본 이용자 기반을 더 큰 플랫폼 생태계와 결합하는 선택이었다. 시장 관계자는 "라인의 일본 사업 성공 이후 다른 사업들이 안착하면서 글로벌 경영이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 동업은 이후 불편한 지배구조 이슈를 남겼다. 라인과 야후재팬 통합은 Z홀딩스가 라인 지분 전량을 사들이고 네이버 측과 소프트뱅크 측이 50%씩 출자한 A홀딩스가 Z홀딩스를 지배하는 형태였다. 이후 2023년에는 Z홀딩스가 라인과 야후재팬을 합병해 라인야후로 새롭게 출발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네이버 해외 자회사에 대한 경영권 방어력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라인 관련 거버넌스 통합 과정은 네이버가 처음으로 글로벌 플랫폼 지배구조의 복잡성을 본격적으로 경험한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검색·광고·쇼핑을 단일 지배력 아래 운영했지만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와 동등 지분 관계를 맺고 사업을 해야 했다. 라인야후 개인정보 유출과 일본 정부 행정지도 이슈 이후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간 자본관계 재검토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 구조의 연장선이다.
네이버 사업사에서 금융 파트를 빼면 2010년대 후반 이후 플랫폼 확장을 설명할 수 없다. 그만큼 네이버 사업에서 금융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눈에 띄는 점은 네이버가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회사를 직접 인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네이버페이를 키우고, 네이버파이낸셜을 분사하고, 미래에셋과 지분을 교환한 뒤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규제산업 금융에 플랫폼 방식으로 들어간 셈이다.
첫 포석은 2017년 미래에셋대우(현 미래에셋증권)와의 전략적 제휴였다.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는 디지털금융 사업 공동 추진을 위해 손잡았다. 두 기업은 상대방 자사주를 5000억원씩 매입해 수년간 보유키로 했다. 미래에셋대우는 네이버 주식 56만3063주, 지분율 1.71%를 매입했고, 네이버는 미래에셋대우 주식 4739만3364주, 지분율 7.11%를 취득해 3대 주주에 올랐다. 금융회사에 투자한 첫 사례였다.
당시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는 AI 등 기술과 금융 콘텐츠 결합을 통한 신규 서비스를 공동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기술과 이용자 접점을, 미래에셋은 금융상품과 금융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구도였다. 이는 이후 네이버파이낸셜 투자로 이어지는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네이버가 금융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금융당국이 핀테크 육성과 관련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2019년에는 네이버파이낸셜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미래에셋그룹은 네이버 금융사업 전문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에 8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미래에셋은 이 투자로 네이버파이낸셜 지분 30%를 확보하는 안을 의결했다. 투자 규모는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 사상 최대 규모로 평가됐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여 간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에 투자된 금액만 총 5800억원으로 이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현 미래에셋증권)는 2017년 7월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사진 왼쪽은 미래에셋대우의 최현만 전 수석부회장, 오른쪽은 네이버의 한성숙 전 대표.(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네이버의 금융 전략은 직접 라이선스를 사들이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쇼핑과 검색, 결제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외부와 손을 잡아 사업 접점을 만들었다. 네이버페이는 쇼핑 결제에서 출발했지만 포인트, 후불결제, 대출비교, 보험, 증권 계좌 연계 등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금융상품 제조는 기존 금융회사가 맡고, 네이버는 이용자 인터페이스와 데이터, 결제 흐름을 쥐는 구조였다.
이 대목은 네이버 M&A사에서 특히 중요하다는 평가다. 네이버는 규제 리스크가 큰 금융업에서 전통 금융사를 직접 인수하는 대신 자회사 분사와 전략적 투자 유치를 통해 금융 플랫폼을 만들었다. 대형 M&A만으로 성장한 회사가 아니라 지분 교환, 투자 유치, 분사, JV 등 다양한 구조를 활용해 플랫폼 외연을 넓혀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카카오가 직접 라이선스를 취득해 금융 시장에 진출한 것과 차이가 있다.
2020년대 들어서면서 네이버의 대형 딜은 콘텐츠와 커머스로 이동했다. 콘텐츠의 핵심은 웹툰이었다. 네이버웹툰은 한국에서 시작해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했지만 웹툰 플랫폼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원천 IP 공급망이 필요했다. 웹소설은 웹툰으로 전환하기 좋은 원천 콘텐츠였고 영상화·게임화까지 이어지는 IP 밸류체인의 출발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M&A 시도가 일어났다.
2021년 1월 네이버는 캐나다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 인수를 발표했다. 왓패드는 2006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 웹소설 플랫폼이다. 네이버 인수 당시 월간 이용자 수는 9000만명, 누적 콘텐츠는 10억편에 달했다. 이용자 상당수가 북미 10~20대 여성층이었다는 점도 중요했다. 네이버웹툰 핵심 이용자층과 상당 부분 겹쳤기 때문이다.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사실도 키포인트였다.
왓패드 딜은 처음부터 네이버만 바라보고 진행된 거래가 아니었다. 당시 인수 후보군으로는 페이스북,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이 거론됐다. OTT와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원천 스토리 확보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네이버가 왓패드를 인수했다는 것은 단순히 해외 웹소설 플랫폼 하나를 산 것이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과의 IP 공급망 경쟁에서 주요 자산을 선점했다는 의미도 있다는 게 시장의 설명이다.
네이버는 2021년 1월 19일 이사회에서 왓패드 지분 전량 인수를 결의했다. 투입 금액은 약 6억달러, 우리 돈 6900억원 안팎이었다. 네이버는 이번 인수로 웹툰과 웹소설 분야에서 각각 세계 1위 플랫폼을 보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미 7200만명의 글로벌 이용자를 확보한 네이버웹툰과 왓패드를 결합해 해외 IP 사업을 가속화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창작자와 독자 커뮤니티 전체를 사들인 셈이다.
왓패드는 이미 IP 검증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용자 반응을 기반으로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골라 출판과 영상화로 연결할 수 있었다. 대표작인 '애프터'는 영화 시리즈로 제작됐고 '키싱 부스' 역시 글로벌 영상 콘텐츠로 확장됐다. 네이버가 주목한 것도 이 지점이었다. 웹툰 플랫폼은 성공작을 예측하기 어렵다. 왓패드는 어떤 이야기가 북미 시장에 먹히는지를 데이터로 보여주는 실험장이었다.
왓패드가 북미 웹소설 커뮤니티였다면 문피아는 국내 웹소설 생태계의 핵심 자산이었다. 네이버는 2021년 문피아 지분 56.3%를 약 1700억원 규모로 인수해 지배력을 확보했다. 문피아 인수는 왓패드와 함께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네이버는 해외에서는 왓패드, 국내에서는 문피아를 확보해 웹소설 양축을 쥐려 했다. 네이버웹툰 입장에서는 원천 IP 플랫폼 자체를 지배하는 편이 유리했다.
이 거래는 카카오와 CJ그룹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진행됐다. 2021년 국내외 웹콘텐츠 시장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플랫폼 확보전을 벌였다. 네이버가 왓패드를 인수하자 카카오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출범 이후 북미 웹툰 플랫폼 타파스와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 인수를 추진했다. 네이버가 카카오와 CJ그룹을 제치면서 문피아 상 인기 소설을 웹툰화할 수 있는 IP 사업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게됐다.
콘텐츠 딜의 본질은 IP 전쟁이다. 검색과 쇼핑은 이용자 접점이 중요하지만 콘텐츠는 흥행작이 중요하다. 플랫폼이 커질수록 더 많은 작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고, 흥행 IP를 드라마·영화·게임으로 확장해야 한다. 네이버의 왓패드·문피아 인수는 웹툰 플랫폼이 원천 스토리 공급망까지 수직계열화하려는 시도였다. 다만 수천억원 규모의 인수 가격을 정당화하려면 반복적 흥행과 글로벌 수익화가 필요하다.
네이버 M&A 역사상 가장 논란이 컸던 거래는 포시마크다. 네이버는 2022년 10월 북미 미국의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기업 포시마크 인수를 발표했다. 포시마크 기업가치는 주당 17.9달러, 순기업가치 12억달러로 평가됐다. 포시마크가 보유한 현금 5억8000만달러에 대한 대가를 포함한 총 인수대금은 16억달러였다. 포시마크 인수 당시 환율을 반영, 우리 돈으로 1조6700억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포시마크는 단순 중고거래 플랫폼이 아니라는 게 네이버 측의 설명이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을 사고파는 동시에 서로를 팔로우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커뮤니티형 서비스였다. 네이버는 이 구조가 자사 쇼핑·광고 기술과 결합할 경우 북미 C2C 시장의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쇼핑라이브, 쇼핑 검색, AI 추천, 광고 플랫폼 등 네이버의 기술을 포시마크에 접목한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다만 시장의 반응은 냉정했다. 2022년은 글로벌 금리 상승과 기술주 밸류에이션 하락이 겹친 시기였다. 포시마크 역시 상장 이후 주가가 부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가 조 단위 자금을 들여 북미 중고 패션 플랫폼을 사들이자 투자자들은 인수 가격과 수익성, 시너지 가능성을 따졌다. 네이버가 국내 검색·쇼핑·결제에서는 강하지만 북미 커머스 운영 경험은 제한적이라는 점도 부담 중 하나로 거론됐다.
거래 구조는 미국식 합병 방식으로 설계됐다. 네이버는 포시마크 발행주식 전량을 주당 17.90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클래스 A·B 보통주와 관련 파생증권은 모두 현금으로 청산됐다. 포시마크는 나스닥에서 상장폐지됐다. 네이버는 인수목적법인 프로톤 페어런트와 자회사 프로톤 머지 서브를 설립했고, 머지 서브를 포시마크에 흡수합병시킨 뒤 존속법인으로 포시마크를 남기는 구조를 택했다.
2023년 10월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오른쪽)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포시마크 사내 설명회에서 직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포시마크는 네이버의 커머스 전략을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한 거래였다. 국내에서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 쇼핑검색, 브랜드스토어, 네이버페이로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네이버 쇼핑의 직접 진출이 쉽지 않았다. 포시마크는 이미 북미 판매자와 구매자 커뮤니티를 갖고 있었다. 그 위에 검색, 추천, 광고, 라이브커머스, 이미지 인식 기술을 붙이면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
이 거래는 최수연 대표 체제의 첫 대형 해외 M&A라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컸다. 포시마크는 최수연 대표 취임 이후 처음 인수한 해외 C2C 커머스 플랫폼이다. 네이버는 포시마크의 발견형 소셜커머스 모델에 라이브커머스와 스마트렌즈 등 네이버 기술을 결합해 마이크로 커뮤니티를 육성하고 온라인 C2C 패션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포시마크는 2023년 1분기 네이버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포시마크는 갑자기 나온 거래가 아니었다. 네이버는 이미 국내외 C2C·리셀 시장에서 포석을 깔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크림을 키웠고, 유럽에서는 유럽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 지분을 확보했다. 포시마크는 이 흐름의 북미 완결판에 가까웠다. 네이버는 2021년 2월 왈라팝에 1억1500만유로, 155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 이상을 확보했다. 2023년 추가 투자로 지분 30.5%를 보유해 단일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 흐름을 보면 네이버의 커머스 M&A는 단순히 포시마크 하나에 조 단위 자금을 베팅한 사건이 아니다. 국내 크림, 유럽 왈라팝, 북미 포시마크를 통해 지역별 C2C 거점을 확보하려는 전략이었다. 네이버가 검색과 쇼핑, 결제에서 축적한 기술을 글로벌 중고거래·리셀 플랫폼에 붙이겠다는 구상이다. 왈라팝은 스페인 중고거래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진 유럽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소개됐다.
문제는 각 지역 C2C 플랫폼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크림은 한정판 스니커즈와 리셀 문화에서 출발했고, 포시마크는 패션 중고거래와 소셜 커뮤니티가 결합된 모델이다. 왈라팝은 지역 기반 중고거래 성격이 강하다. 네이버가 이들을 하나의 글로벌 커머스 포트폴리오로 묶으려면 기술뿐 아니라 현지 이용자 문화와 판매자 생태계 운영 역량이 필요하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네이버의 다음 대형 M&A 후보로 거론된 곳은 배달의민족이었다. 2026년 5월 시장에서는 네이버가 우버와 함께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 지분 확보를 검토 중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배달의민족 최대주주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JP모건을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네이버는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공시했다.
배민 검토는 네이버 M&A사의 흐름에서 돌출된 사건이라기보다 커머스 전략의 연장선에 가깝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쇼핑검색, 스마트스토어, 브랜드스토어, 네이버페이를 통해 온라인 커머스 접점을 장악했다. 여기에 배달의민족이 가진 음식 배달 인프라와 지역 상점 네트워크, 즉시배송 역량이 결합되면 네이버 커머스는 검색·쇼핑·결제에서 배달·장보기·로컬 물류로 확장될 수 있다.
배민이 갖고 있는 자산은 단순 배달앱 트래픽이 아니다. 네이버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오프라인 소비 데이터와 실시간 주문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네이버는 지도, 플레이스, 예약, 리뷰, 쇼핑, 페이를 통해 오프라인 사업자 접점을 넓혀왔지만 실제 음식 주문과 배달 수행 데이터는 제한적이었다. 배민을 통해 소비 패턴을 확보하면 네이버의 로컬 검색과 관련 데이터가 훨씬 촘촘해질 수 있다.
우버와의 컨소시엄 구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네이버가 배민을 단독으로 인수하는 방식은 재무적 부담과 규제 리스크가 크다. 배달 플랫폼은 공정거래, 수수료, 라이더 산업재해, 개인정보, 소상공인 갈등 등 정치·사회적 리스크가 집중되는 산업이다. 단독 지배보다 지분 투자나 전략적 제휴, 컨소시엄 형태가 더 현실적인 카드로 거론된다. 딜리버리히어로가 희망하는 매각가는 최대 8조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1] 이해진 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1990년대 중반 '한국형 검색엔진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네이버를 창업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KAIST 전산학 석사를 거쳐 삼성SDS에 재직했다. 사내벤처로 검색엔진 기 '웹글라이더'를 개발한 경험이 있다. 네이버컴 설립 자본금은 약 5억원 수준이었다.
[2] 한게임을 창업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SDS에서 유니텔 구축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 김 창업자는 1990년대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시작되면서 PC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온라인 게임 플랫폼 채널 구축을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3] 작년 한해 네이버의 연결기준 영업수익은 약 12조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2.1%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조2082억원으로 11.6% 확대했다. 네이버는 서치플랫폼과 커머스, 핀테크, 콘텐츠, 엔터프라이즈 등 총 5개 서비스를 영위하고 있다. 작년 한해 각 사업 영역 매출 비중은 서치플랫폼(34.6%), 커머스(30.6%), 핀테크(14.1%), 콘텐츠(15.8%), 엔터프라이즈(4.9%) 수준이다.
[4] 당시 국내에서는 트위터와 싸이월드, 미투데이 등 국내외 SNS 플랫폼 기업들이 주도권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던 시기였다.
[5] 네이버와 한게임의 인적분할 작업은 이해진 이사회 의장의 글로벌 플랫폼 전략과 이준호 공동 창업자의 게임 사업 독립 의지가 맞물린 결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평가가 있다. 일본 시장에서 라인이 크게 성공하자 글로벌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6] 당시 일본 인터넷 시장은 야후재팬과 라쿠텐, 소프트뱅크 등 현지 사업자 영향력이 상당했다. 네이버가 단독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보다 연합 전략을 펼치는 것이 과거의 실패 경험 등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7] 2024년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행정지도를 통해 보안 체계 강화와 네이버 의존도 축소, 자본관계 재검토 등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라인야후는 네이버 클라우드와 시스템 위탁 관계를 단계적으로 종료하고 기술 개발 부문 독립 작업에 착수했다. 다만 네이버 측은 소프트뱅크와 함께 각각 5:5로 보유한 A홀딩스 지분 구조 개편은 단기간 추진이 어렵다는 입장이었고 지금까지 양사 지분율에는 변화가 없는 상태다.
[8] 은행 혹은 증권사를 인수할 경우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금융규제가 적용되는 만큼 전략적 제휴 방식이 효율적이었다는 평가다. 당시 문재 정부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시행으로 이른바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도입,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일정 기간 규제 예외 상태에서 시험할 수 있게 허용했다. 아울러 개인 신용정보 활용 범위 확대와 마이데이터 사업 허용 내용을 담은 데이터 3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9] 네이버웹툰은 2004년 포털 경쟁 심화 속에서 검색 이용자 체류시간을 늘리고 자체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당시 다음이 강풀 작가 등을 앞세워 웹툰 시장을 선점하자 네이버는 신인 작가 발굴과 온라인 최적화 만화에 집중하는 차별화 전략을 택했다. 이후 '도전만화'와 '요일제 연재 시스템', '마음의 소리' 등 흥행을 계기로 웹툰 생태계를 구축했고 이는 훗날 네이버의 글로벌 IP 사업과 웹툰엔터테인먼트 성장의 출발점이 됐다.
[10] 2025년 말 기준 네이버 연결대상 종속회사는 94개, 비상장 계열사는 47개다.
[11] 시장에 따르면 현재 네이버 컨소시엄의 배달의민족 인수는 실제 M&A 프로세스로 넘어가고 있다. 네이버 우버 외 전략적 투자자 역할이 클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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